[홍승희 칼럼] 일본 대응법
[홍승희 칼럼] 일본 대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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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디어를 보면 너나없이 일본 달래기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대화를 하라, 한국 정부가 대안을 제시하라는 말은 실상 백기들라는 말을 우아하게 포장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은 그간의 경험으로 바로 이런 미디어 여론을 예상하고 행동하고 있다. 한국의 재계와 미디어 여론은 늘 일본이 강경하게 나오면 한국정부의 양보를 요구했고 역대 정부는 또 그런 여론에 등 떠밀리듯 일본이 원하는 떡을 던져줬다.

반복되는 이런 한일관계를 보노라면 한국인 누구나가 익히 알고 있는 전래동화 하나가 떠오른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며 고개고개마다 나타나 떡을 다 뺏어먹고는 끝내 떡장수 엄마까지 잡아먹는 것에 끝나지 않고 집까지 찾아가 어린 남매를 잡아먹으려 드는 호랑이 얘기.

일본이 한국을 향해 해야 할 사과는 하지 않고 때마다 한국경제의 급소를 치고 들어오는 일이 반복돼 왔다. 또 그럴 때마다 한국 정부는 당장의 경제적 타격을 해소하는 데 급급해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할 시간조차 벌지 못한 채 일본의 의도에 끌려 다니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재계조차 그런 반복을 당연시하며 과도한 일본제품 의존을 리스크로서 관리하지 못했다. 그리곤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한국 정부의 양보를 요구할 뿐 스스로 리스크 관리에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번 삼성전자가 겪고 있는 위기이자 한국 경제가 겪는 어려움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적 기업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일본의 반도체 소재 단 세 가지의 수출을 막겠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에 심각한 위기상황에 놓이도록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쌓아온 실적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지만 그동안 소재산업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투자를 뒤로 미룬 채 당장 눈앞의 이익만 쫓느라 일본 리스크를 너무 소홀히 취급한 결과다. 결국은 한국 정부가 또 다시 무릎을 꿇든지 해서라도 어떻게든 해결해 줄 거라는 습관적 생각을 해온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비용효율만 너무 중시하다보니 스스로 그 덫으로 걸어 들어간 꼴이 됐다.

물론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해보고자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 면담에 빠지면서까지 서둘러 일본으로 날아간 것은 이번 사태가 이제까지보다 훨씬 위급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의존도가 큰 재벌기업들일수록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뒤늦게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는 게 답답하다.

삼성이 처음 반도체에 투자를 시작하던 당시의 과감한 투자 정신은 어느 새 삼성그룹 초기의 미곡상회 수준의 오로지 이익 하나만 생각하는 장사꾼의 자세로 되돌아 가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일본이 손들어버린 반도체 생산 공정을 낚아챈 당시의 과단성 있는 결정이 오늘날의 삼성그룹 자체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인데 그런 판단력이 시들어버리고 해오던 것 조금 더 발전시키는 데만 치중하는 안일함에 빠져든 것은 아닌지 삼성의 수뇌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듯하다.

어떻든 지금 한일 관계는 단순히 일본의 경제적 습격 이상으로 뒤숭숭하다. 일본은 한국 정부의 신경을 건드리는 제안을 미디어를 통해 툭툭 던지면서도 막상 한국 정부의 대화 요청은 거부하고 있다. 일단은 뒤로 미룬다지만 시간을 다투는 경제 기습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대화 거부요, 전쟁 선포일 뿐이다.

일본은 이제 우리가 달래야 할 대상에서 벗어났다. 명백한 전의를 갖고 전쟁준비를 마친 상대를 달래려 해봐야 우리 쪽의 피해만 더 늘어나고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든다 해도 결국은 일본이 깔아놓은 판 위에서 춤추는 꼴 밖에 안 된다. 전시 상황에서도 가능하면 대화의 채널을 열어둬야 하지만 상대가 거부하는 데 매달리기만 해서는 상대의 페이스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우리가 일본을 향해 쓸 무기가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소재산업의 일본 의존도가 지금처럼 높은 상황에서 이 말은 맞을 것이다. 또한 우리보다 월등한 국부를 가진 일본이 그동안 국제사회에서도 우리보다 앞서 발언권을 높여 왔으니 국제 여론전에서도 우리는 불리하다. 그런 일본이 가장 껄끄러워 하는 일은 뭘까.

재팬패싱에 민감한 일본을 다루려면 일단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질을 막겠다고 나서야 하고 그러자면 미국을 잘 설득해야 할 텐데 그 방법을 더 고민해 볼 일이다. 우선 국내의 입싼 정치인들부터 문제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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