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미술관 '바바라 크루거' 작품 고른 이유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바바라 크루거' 작품 고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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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감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려던 작가 의도 보여주겠다"
신축 개관 1주년 기념 아시아 첫 개인전··12월29일까지 42점 전시
26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기자들이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 '무제(영원히)'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김현경 기자)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26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내 높이 5m, 너비 28m 전시 공간에 흑백 문구가 가득한 작품이 들어섰다. 문구가 사람 키보다 크고 폭도 넓은 탓에 관람자들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야 네 벽과 바닥에 적힌 문구를 정확히 볼 수 있다. '관람자'가 아니라 '행위자'로서 작품을 보도록 한 셈이다. 이 작품 이름은 '무제'(영원히). 개념주의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대표작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신축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는 바버라 크루거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기도 하다. 이달 27일부터 12월29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선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선보인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 42점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첫 한글 신작 '무제(충분하면 만족하라)'와 '무제'(제발 웃어 제발 울어)도 공개된다. 

미국 출신 크루거는 그림과 글을 병치한 광고 형식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상징적 서체와 간결하고 강렬한 메시지를 통해 동시대 사회의 메커니즘과 대중매체 속 권력, 욕망, 소비주의, 젠더, 계급 문제를 비판적으로 담아낸다. 

무제(영원히)도 사회구조와 권력에 대한 통찰로 만들어졌다. 크루거 생각은 벽 한쪽에 적힌 문구를 통해 알 수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마력을 가진 거울 같은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크루거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에서 인용한 글귀다.

하양과 검정이 교차한 바닥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가져온 문장 '만약 당신이 미래의 그림을 원한다면, 인간의 얼굴을 영원히 짓밟는 군화를 상상하라'으로 채워져 있다. 크루거가 문학 작품을 직접 차용한 예외적인 작업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쪽은 "관람자는 거대한 텍스트에 둘러싸여, 이 속을 거니는 몰입적인 경험을 통해 능동적으로 사유하고 질문하는 행위자가 된다"고 설명했다. 

크루거 작품엔 눈과 관련된 것도 종종 보이는데, 그가 말하는 눈은 '세상을 인지하는 창'이다. 눈은 '미디어가 얼마나 우리 삶을 위협하는지 알려주는 장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눈을 감는 그림에선 정보와의 접점에서 멀어지거나 차단된다는 걸 보여준다. 

김경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큐레이터는 "작가는 젊은 시절부터 주요 잡지에 영화와 텔레비전, 대중매체에 대한 평론을 하며 이런 것들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끊임없이 설명해왔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미디어로부터 통제당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전시된 바버라 크루거의 '무제(당신의 몸은 전쟁터다)' (사진=김현경 기자)

낙태 금지에 반대하고 여성의 선택권 보장을 촉구하기 위해 미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던 1989년, 크루거가 내놓은 홍보 포스터 '무제'(당신의 몸은 전쟁터다)도 전시된다. 이 같은 작업물로 보듯 크루거는 '페미니즘' 영역에서 주로 소개돼왔다. 그러나 미술관 측은 '그의 작품 세계를 하나로 범주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김 큐레이터는 "한국에서 '페미니스트' 작가로 분류됐지만, 그는 특정 범주(카테고리)에 들어가기보단 우리와 너, 나의 관계 혹은 불합리한 구조에 질문하게 하는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개관 1주년을 기념해 바바라 크루거 전시회를 연 까닭은 무엇일까. 일각에선 화장품 회사이기 때문에 여성을 위한 것에 중점을 두지 않았겠냐는 질문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 큐레이터는 "작가가 제기하는 질문에 영감을 받고, 관람자들이 새로운 시각을 찾아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사는 당대의 주요 이슈에 대해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발언해온 크루거 전시를 통해 깨어 있는 감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미술관 쪽은 "작가의 작품들은 우리의 무뎌진 비판의식을 흔들어 깨우고, 삶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자극을 준다"며 "이를 통해 관람자들은 나 자신을 삶의 주체로 되돌려놓는 유의미한 질문과 해석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6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열린 바바라 크루거 전시회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김경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큐레이터(왼쪽 둘째)가 작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현경 기자) 

■ 바바라 크루거는

바바라 크루거는 현대 미술계에서 영향력있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힌다. 40년간 흑백 사진에 문구를 합친 시각언어로 세상과 소통해왔다. 현재 미국 로스엔젤레스와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1945년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985년 뉴욕시 파슨스 디자인학교에 들어가 다이안 아버스와 마빈 이스라엘로부터 사진과 시각매체의 효과적인 전시방법에 대해 배웠다. 졸업 후 잡지 '마드모아젤'과 '하우스앤가든', 사진 잡지 '애퍼처' 편집 디자이너로 10년간 일하며 고유의 시각언어 기틀을 다졌다.

작품 활동은 1969년께 시작했지만, 흑백 사진에 붉은 사진틀, 문구 결합은 1981년부터 본격화됐다. 옛날 잡지나 사진도감에서 찾은 그림을 가공해 그 위에 함축적 문구를 중첩하는 작업을 주로 했다. 권력과 통제, 대중매체와 자본주의, 성 역할 고정관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나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와 같은 직관적인 슬로건으로 많은 패러디와 오마주를 낳았다.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뿐만 아니라 도심 옥외 광고판과 버스 카드, 잡지, 신문, 포스터를 통해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미술계에선 매체에 경계 없는 활동과 대중과의 소통이 크루거를 독보적 위치에 자리매김하게 했다고 본다. 2005년 제51회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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