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硏 "방폐물 핵종분석 재평가 필요"···원안위 조사 변수되나
원자력硏 "방폐물 핵종분석 재평가 필요"···원안위 조사 변수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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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운영·관리 기본 무너져···책임 공방 예고
상반기 중 원안위 특별감사 결과 발표 예정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지난해 원자력계를 뒤집어놨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핵종분석 오류에 대해 최근 원자력연구원이 문제를 인정함으로써 새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전체 발전소 방폐물 분석에도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가운데 이달 내 발표가 예상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특별감사 결과에 이목이 쏠린다.

이번 사태를 두고 원자력 관련 국가기관들은 '각자도생' 분위기다. 일부는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해결 방안도 민간이 제시하면서 기관별 책임론은 불거질 전망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고사하고, 쓰레기 분리수거조차 제대로 못한 셈이다. 수십년간 미뤘던 사안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면서 중·저준위 관리 체계 기본부터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10년 넘게 몰랐던 분석 오류 원인 

자료=원자력안전연구회
자료=원자력안전연구회

지난 12일 작성된 원자력연구원 '척도인자 전알파 분석 데이터 재평가 결과 보고' 자료에는 2004~2008년 척도인자 산출에 사용된 전알파 데이터 검토 결과 방폐물 분석 시 '테프론(기계·자동차·반도체 등의 부품에 사용되는 화학섬유)' 코팅 플란쳇(용기)을 사용하는 경우 방사능이 과소평가 될 수 있다고 기재돼있다. 

척도인자 산출에는 SUS(스테인레스 재질) 용기를 사용해 전알파 측정 효율식을 구했지만 실제 방폐물 분석시 테플프 코팅 용기를 사용했다는 것. 척도인자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 결과 전알파 분석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연구원의 설명이다. 

일반적인 기준 시료 용기(왼쪽)와 테프론 코팅 용기. 자료=원자력안전연구회
일반적인 기준 시료 용기(왼쪽)와 테프론 코팅 용기. 자료=원자력안전연구회

지난 13일 경주에서 열린 원자력안전연구회 설명회에서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테프론 용기 밑바닥에 깔려있던 방사능은 위쪽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테프론 성분에 포획된다"면서 "10년 넘게 분석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테프론 간섭 여부조차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연구원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1년간 연구원은 척도인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일부 확보된 자료를 통해 개별 알파 분석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특정 시기의 원 데이터 자료 공개를 요청했더니 자료가 없다는 답만 반복했다"면서 "환경방사성 물질도 교차분석을 하는데 원전 방폐물은 관리의 기본조차 안한 셈"이라고 강조했다. 

자료 부재를 주장했던 연구원이 이달 초 입장을 바꾼 이유는 지난 4월 취임한 신임 원장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연구원은 자신들의 기관에서 발생한 945드럼만 원안위에 자진 신고한 후 해당 폐기물에 대해서만 분석 오류를 인정해왔다. 올해 2월 안전연구회에서 전체 방폐물 분석이 잘못됐다는 기술적 근거를 제시했고, 경주에는 민관합동조사단이 발족됐다. 

2015년 8월부터 방폐장에서 처분 가능한 중·저준위 폐기물은 드럼에 담겨져 경주로 옮겨지고 있다. 처분장 인수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한 필수 작업은 드럼 내 방사성 핵종과 농도 측정이다. '원자력법 시행규칙 제 98조'에 따라 폐기물 처분을 원하는 기관은 핵종과 농도, 방사능량, 폐기물 형태 등을 인수기관인 원자력환경공단에 제출해야 한다. 해당 이력을 전제로 규제기관은 방폐장 처분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 

총 16개의 방사성 물질을 분리해 저장기간과 처리방식을 결정하되 방페물 인도기준에 따라 전체 방사능량 95% 이상을 구성하는 핵종을 밝혀야 한다. 특히 세슘137과 요오드129, 코발트60 등 13개 핵종과 전알파에 대해서는 방사능 농도도 측정해야 한다. 핵종마다 알파와 베타 감마선 등 방출하는 방사선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콘크리트, 금속 등 차폐물질과 두께는 물론, 반감기에 따라 저장 기간과 보관 구역이 달라진다. 

드럼 내 핵종 재고량 산정은 원전 운영의 기본으로 처분장 설계와도 직결된다. 방폐장에 어떤 핵종이 얼마만큼 처분될 수 있는지 기준치를 계산한 후 차폐 구조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재고량 평가 방법은 파괴·비파괴 혹은 직접·간접 측정 평가로 나뉜다. 직접 측정은 드럼을 모두 개봉해 시료를 채취한 후 검출이 까다로운 알파와 베타선까지 측정하는 방식으로, 파괴 측정 형태인 방사화학분석 등이 있다. 간접 평가는 감마선만 계측기로 측정한 후 척도인자를 이용해 알파와 베타의 비율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연구원 방폐물에는 두 가지 방식이 모두 적용됐고, 각 원전 방폐물의 경우 척도인자를 이용해 분석되고 있다. 척도인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알파·베타 농도 분석을 위한 샘플 데이터가 필요하고, 원전 방폐물에서 시료 채취 후 핵종분석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된다. 시료 채취와 분석을 담당하고 있는 국내 유일 기관은 원자력연구원이다. 원전 운영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연구원에 시료 채취 등 용역을 맡겨왔다.

연구원과 한수원 등은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척도인자 개발을, 이후부터는 유효성 검증을 진행한 바 있다. 척도인자 개발을 위해 수행된 방사능 분석이 정확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유효하지 않은 척도인자를가 사용됐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충분한 시료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데이터를 부풀렸고, 이로 인해 알파 핵종분석 자체에 오류가 발생했다는 점이 문제다. 통계적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10개 이상의 시료 측정값이 필요하지만 확보된 데이터는 3~4개로 나타났다. 샘플 부족으로 통계 처리가 불가능할 경우 시료를 다시 채취해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지만 데이터 3개를 3배로 부풀려 계산했다는 것이다. 

자료=원자력안전연구회
자료=원자력안전연구회

알파핵종 분석 오류의 경우 2004~2008년 개발 과정에서의 전알파 분석값(Gross Alpha)이 플루토늄239 등 알파방사능 핵종분석 값을 합쳐놓은 값(Alpha Sum)보다 약 70배 높게 분석됐다. 그러나 2009~2014년 1·2차 주기적 검증 단계에서는 전알파 분석값이 오히려 6~7배 낮게 분석되는 등 비보수적으로 측정됐고, 1차 검증에서 불만족 결과가 도출됐지만 2009년 척도인자 인허가를 신청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안전연구회는 연구원이 제공한 개별시료 중량과 측정값 자료를 토대로 테프론 용기 보정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자료 부재 시 현재 방폐장에 옮겨진 2만여 드럼을 모두 꺼내야 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지만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것.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적용된 척도인자도 문제다. 특정 방폐물의 실제 방사능 수치는 1인데 100으로 평가될 경우 당초 설계와는 달리 실제 처분장에 저장될 수 있는 드럼 수가 달라진다. 현재 선량이 낮은 저준위부터 처분되고 있는데 추후 각 발전소에 보관중인 중준위 폐기물은 지하에 처분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측정값이 발견될 때마다 척도인자를 조정하거나 선량이 높은 폐기물의 경우 척도인자를 적용하지 말고 직접 분석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 부랴부랴 실시한 방폐물 분석···무지와 안일함이 빚어낸 촌극 

그동안 폐기물 분석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던 점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충분한 시료 분석을 통한 척도인자 준비가 필요했지만 뒤늦게 실행에 옮긴 탓이 컸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각 기관들의 책임 회피와 안일함도 이번 사태에 한 몫했다. 

원자력연구원은 전문연구기관으로서 핵종분석 오류라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다. 연구원 내부에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기본 업무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셈이다. 사업적 측면에서는 분석 용역을 맡긴 한수원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해 일부 문제가 있음을 밝혔지만 전체 폐기물을 대상으로 분석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나온 이상 파장이 예상된다. 

한수원은 용역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과 주기적 검증 미보고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연구원의 분석이 정확한지를 비롯해 척도인자 관리 상황을 확인했다면 조기에 해결할 수도 있었다는 것. 또 1만명이 넘는 한수원 직원 가운데 방폐물 담당은 50여명에 불과해 향후 원전 해체 등 다수의 폐기물 발생 시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자력환경공단은 처분사업자로서 폐기물 관리에 실패했다. 인수검사 시 폐기물 발생기관의 분석값을 참고는 하되 검증할 의무가 있다. 환경공단도 기술과 측정 장비가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이 문제다. 핵종분석 관련 전문 인력은 3명 정도라는 것이 공단 측 설명이다. 소극적인 대응을 두고 공식 발표 전까지 공단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공단 관계자는 "연구원 자진신고 이후 해당 사안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간부급이 반년전 원전 방폐물에도 문제가 있다고 인지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폐기물을 받는 입장에서 연구원과 한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언급할 말이 적을 뿐"이라고 말했다. 

원안위가 주기적 검증만 제대로 실시했어도 최소 5년 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동일 기관의 분석으로 문제가 발생했는데 연구원 폐기물만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행위도 책임 회피라는 지적이다. 연구원이 수행한 핵종분석에 대해 처분기관 등이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 문제였다면 규제기관은 무엇을 했냐는 것. 원안위 관계자는 "조사가 거의 마무리돼 6월 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며, 원전 방폐물이 조사 대상에 포함됐는지 여부도 추후 함께 공개하겠다"면서 "연구원이 작성한 문서에 대해서는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태에 대한 대책도 민간 주도로 제시된 가운데 중·저준위 방폐물 관리도 미흡 상황에서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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