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시대와 가치관의 어긋남에 대해
[홍승희 칼럼] 시대와 가치관의 어긋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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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를 대화로 풀어가라고들 하지만 살아가다보면 종종 생각의 바탕이 아예 달라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대를 만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순탄한 대화 자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게 개개인 사이에서 벌어지면 그냥 피하고 말게 되지만 공적 관계에서 그런 상황이 되면 마냥 피할 수만도 없어서 일이 진전되지 못하고 질척대는 경우도 나온다. 어쩌면 지금 한국의 정치 상황도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답답할 때가 많다.

물론 최근 여야 원내대표들 사이에 치맥회동도 있었고 어떻게든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노력에 시동이 걸린 듯해 일단 기대를 안겨준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더라도.

반면 북미회담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서로의 입장, 기대치가 근본적으로 달라 접근이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강자와 약자의 위치가 워낙 명확한 국제관계에서 서로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고 해봤자 현실성을 바라기도 어려워 우리로서는 그저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가족들 사이에서도 이런 답답한 상황들은 흔히 벌어진다. 이제껏 내가 네게 어떻게 했는데 네가 나에게 서운하게 하느냐는 원망이나 비난들.

그런 감정의 충돌들 속에는 산업화, 도시화된 사회의 일부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 세대와 농촌공동체 속에서 오랜 시간 이어져온 가치를 우선하는 그 선배세대들의 서로 서운한 감정들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경우들이 많다. 이는 도시와 농촌이라는 차이를 넘어 빠르게 산업화를 이룬 한국사회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갈등의 인자들이다.

시댁도 친정도 저마다 7~8남매나 되는 대가족 속에서 특별히 대접받을 것도 없이 자수성가하듯 그렇게 삶을 일궈온 한 이웃 부부의 얘기다.

남편은 직장 때문에 제주도에 내려가 지내며 한 달에 한두 번 얼굴보기도 힘들고 아내는 혼자 아이들 키우며 가사도우미로 바쁘게 산다. 그런데 간신히 변두리에 아파트 한 채 장만했다는 이유만으로 시골에서 올라오는 친척이며 친구들은 언제든 상경하면 이 집에서 묵는 걸 당연시 한다. 지난해에는 큰 수술을 받고 몇 달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도 받았지만 한 달 만에 일하러 다니기 시작한 이 여성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집에 조카를 머무르게 하라는 시누이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갖은 비난을 다 받았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남편의 직장인 제주도 최고급 호텔에 며칠씩 무료 투숙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다른 친척으로 인해 결국 그 비용은 그들 부부의 카드결제로 끝난다. 자식 취업부탁을 하면서도 무리한 부탁이라는 생각도 없는 것 같다고 하소연도 했다.

가족이니까 혹은 친척이니까 그만한 편의는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인식은 도시생활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사고방식이지만 여전히 지역공동체, 대가족공동체의 가치관을 내재화시키고 있는 세대들에게는 이런 일이 문제될 것이라는 생각조차 없는 듯하다.

굳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에 비해 저마다가 가진 가치관이 그 변화를 따라가는 속도는 천차만별이어서 하나하나 말로써 풀어나가기도 어렵다. 결국 누군가 마음 약한 이들이 그 부담을 옴팡 뒤집어씀으로써 표면상으로는 ‘평화’가 유지된다. 당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결코 평화일 수 없을 터다.

또 하나. 지방도시에 사는 한 모자의 얘기다. 연로해 이제는 끼니 차려먹기도 버거운 어머니는 동네 친구들 모두 들어간 요양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자식들에게 말하지만 혼자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들은 ‘자식들이 있는 데 엄마가 왜 거길 가냐’며 반대한다.

이 경우 효심일까, 이기심일까. 물론 자식은 어머니를 요양원 보내는 게 불효라 여길 수 있지만 결국 어머니는 혼자 된 아들 끼니 챙겨주는 일도 힘에 겨워하니 함께 사는 게 효도인지도 아리송하다.

도시 노인들은 요양원 가는 걸 끔찍하게 여기는 경우도 많지만 자식들 다 떠난 농촌에선 혼자 사는 노인들이 때 되면 요양원 가는 걸 당연시하는 분위기라고도 한다. 동네 요양원에 들어가 동네친구들끼리 함께 지내는 게 힘들게 혼자 사는 것보다 낫다는 얘기다.

농촌 사회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다만 그 변화가 부문별로 들쭉날쭉한 것일 뿐.

어느 사회나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의 차이로 인한 갈등은 존재한다. 다만 우리 사회가 너무 빠르게 변했기에 그 속도 폭의 차이가 지나치게 큰 것일 뿐.

다만 그런 사회적 갈등을 풀어내는 정치 대신 이용하는 정치만 보는 것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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