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 1호기 저출력 제어봉 조작 오류···원전 운영 또 '구멍'
한빛 1호기 저출력 제어봉 조작 오류···원전 운영 또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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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력 상태에서의 위험성에도 경각심 가져야"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 원전 (사진=연합뉴스)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 원전.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지난 10일 전남 영광 한빛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 제어봉 오류가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원전 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1분 만에 원자로 출력이 운전 제한 범위를 넘어섰지만 바로 가동 중지를 하지 않은 사업자와 규제기관의 안일한 태도가 맞물려 논란은 증폭됐다. 

5% 출력치를 초과했을 경우 즉시 발전소를 정지해야 하지만 12시간이나 지연됐다는 점이 이번 사태의 문제다. 저출력 상태에서의 제어봉 조작은 과출력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교훈삼아 경각심을 가져야 함에도 관계 기관들의 안전불감증이 또 다시 불거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 1968년과 2019년의 공통점은 '저출력'과 '제어봉'

사고 발생 전 체르노빌에서는 특별한 실험이 계획됐다. 원자로 가동이 중단될 경우 관성으로 도는 터빈이 만들어내는 전력이 얼마나 오랫동안 공급가능한지 알아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고 전날인 4월 25일 오전 1시부터 4호기는 출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상 출력의 반 정도 줄였을 무렵 키예프의 전력 공급 요청으로 실험은 잠시 중단됐다. 저출력 상태의 지속으로 원전 내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을 무렵 작업자의 제어봉 삽입 실수로 출력이 당초 목표치인 720MW에서 30MW까지 떨어진다. 제어봉은 원자로 출력을 조절하는 장치로, 원자로 내 삽입될 경우 출력이 감소하고 인출되면 출력이 상승한다. 자동차의 브레이크 혹은 엑셀과 비슷한 셈이다. 

제논135가 축적되면서 출력이 상승하지 않자 관리자는 단기간에 출력을 높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규정상 최소 30개의 제어봉을 남겨둬야 했지만 6개만 남기고 모두 제거됐다. 실험 도중 원자로 정지를 방지하기 위해 비상노심냉각장치를 꺼둔 것도 화근이 됐다. 제어봉 제거 후 출력은 급상승했고 장기간 저출력으로 유지되던 탓에 냉각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냉각수가 증기로 변하면서 초고온 상태가 된 원자로는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3분 결국 폭발했다. 출력이 1만%로 폭증하는 시간은 단 7~8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저출력 상태에서 제어봉을 기준 이상으로 제거한 행위는 안전 규정을 위반한 조치였다. 이는 한빛 1호기 사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만 체르노빌 모델은 원자로 출력이 올라갈 경우 온도 상승과 동시에 기포도 생성된다는 점에서 양(+)의 보이드(반응도) 계수를 가지는 반면 한빛 원전 등 경수로는 출력이 올라가면 온도가 떨어지는 음(-)의 보이드계수를 가진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체르노빌 사고가 인재(人災)로 발생했듯이 이번 사고도 사업자의 안일함과 규제기관의 감독 소홀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재가동을 앞둔 한빛 1호기에서는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제어봉 측정시험이 실시됐다. 오전 10시 30분 제어봉을 인출하자마자 1분 만에 원자로 출력이 18%까지 상승했고, 이 과정에서 보조급수펌프가 작동했다. 보조급수펌프는 주급수펌프가 기능을 상실할 경우 증기발생기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원자로 출력과 냉각재 온도가 올라가자 증기발생기 수위 상승으로 주급수펌프 가동이 정지됐다. 10시 32분 발전팀이 제어봉을 다시 삽입했고 10시 33분부터는 1% 이하로 감소, 11시 2분부터는 0%를 유지했다는 것이 표면적인 사실이다. 

문제는 열출력이 5% 내에서 제어가 되지 않았다는 점과 열출력이 제한치를 초과했는데도 약 12시간이 경과한 오후 10시 2분에 가동을 정지했다는 것이다. 웨스팅하우스형 원자로 운영 기술 지침서와 한빛 1호기 수동정지 관련 기술 지침에 따르면 열출력 5% 초과 시에는 설계기준 초과 방지를 위해 즉시 가동을 중지해야 한다. 

◇ 제어봉 조작 오류는 인출 범위 계산 실수?

1분 사이 원자로 출력이 18%로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고 당일 제어봉이 의도치 않은 수준으로 인출된 이유로는 △운전 미숙 △인출범위 계산 오류 △점검 부실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원안위는 무자격자의 제어봉 조작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어봉 계산 실수가 원인이라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사고 당일 제어봉 위치를 교정하기 위해 100스텝(단계) 이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 

제어봉은 위치 편차가 발생할 경우 교정을 하게 된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본다면 계측부에서 100스텝 맞춰보자는 제안을 했을 것이고, 100스텝을 움직이면 출력이 급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발전부에서는 확인 차 노심과에 문의를 했을 것"이라면서 "노심과의 답변을 받은 후 100스텝 인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100스텝 인출 과정에서 원자로 출력이 급증하자 제어봉을 완전히 인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도로 집어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분은 현재 무자격자 제어봉 조작 논란과 함께 구체적인 지시 주체, 당일 부서 간 대화 내용 등 향후 조사에서 밝혀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소장은 "윗선에서 100스텝 인출하라고 지시했는데 정비원이 지시 내용을 어기고 200스텝을 인출한 상황은 아니지 않나"면서 "원안위가 책임 회피를 위해 무자격 정비원이 제어봉을 조작했다는 내용만 강조하는건 아닌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한수원 관계자는 "현재 조사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왜 원자로 출력이 18%로 급증했는지 구체적인 전후 상황은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수원에서 근무 중인 한 직원은 "사실 관계 문제와 책임 전가, 회사의 안일한 대응 등이 문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사내 분위기는 좋지 않다"면서 "이번 사고도 예전처럼 몇몇 직원에게 독박을 씌우고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저출력 상태의 위험성···뒤늦게 수동 정지한 이유는?

저출력 상태에서 제어봉 인출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정상 출력 때보다 노심에 가해지는 영향력이 크다. 2004년 한국원자력학회에서 발표된 'RETRAN을 이용한 저출력에서의 제어봉 인출 사고 분석' 논문에도 "사고가 발생시 저출력 혹은 미임계 조건이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반응도 첨가를 일으키기 때문에 노심출력·온도·열속·압력 등의 상승은 전출력에서의 반응보다 큰 경향이 있다"는 내용이 기재돼있다. 

출력 100%와 출력 0%를 비교했을 때 동원되는 핵연료 수는 후자가 적다. 100%에서 시간당 1% 상승한다면 0%에서는 초당 1%로, 출력이 급증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저출력 상태에서의 위험성을 인지하는 것은 원전 운영의 기본이다. 저출력이 발전소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아직까지는 연구 중인 단계다. 규정에 기재된 조치를 바로 적용하지 않고 왜 수동 정지까지 12시간이나 걸렸을까.

원안위는 사고 당일인 10일 오전 10시 31분 한빛 1호기의 보조급수펌프가 자동 기동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후 원자력안전기술원 전문가를 현장에 파견했고, 열출력 제한치 초과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 규제기관의 설명이다. 업계에 따르면 통상 사고 발생 시를 기준으로 이날 오후 2~3시에는 사실 관계와 관련 법령 위반 여부를 인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기술적인 내용을 잘 모르는 원안위가 즉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묻느라 가동 중지 결정까지 10여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면서 "저출력에서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위험한 상황으로 변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사고 당시 원자력안전법, 기술 지침 등 관련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발전소 정지 결정까지 시간이 걸린 것"이라면서 "원자로 출력이 유지된 상태로 시간이 흘렀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은폐 목적이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고 해명했다. 출력이 0%인 상태였으니 가동 중지와 다름없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 소장은 "경수로는 온도 상승 시 출력이 천천히 올라가다가 일정한 선에서 정지하지만 문제는 출력이 18%까지 급증한 그 자체"라면서 "냉각 능력은 제로 파워에 맞춰져 있다가 출력이 급증하면 핵연료가 과열될뿐만 아니라 열도 천천히 제거된다. 핵연료 손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즉각 수동 정지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수동 정지 지연과 관련해 사고 초기 열출력과 중성자(원자로)출력 등의 개념 혼선을 이유로 들었다. 이를 두고 사업자와 규제기관의 의견이 엇갈렸거나 중성자 출력값 18%와 한수원이 사후 평가한 열출력값 3.55%를 둘러싼 판단 능력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원안위의 특별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사고 당일 적절한 통제 업무를 수행했는지 여부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원전 인접 지역에서는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박응섭 한빛원전민간감시기구 센터장은 "사고 발생 3일 뒤인 13일이 되어서야 열출력 범위 초과로 수동 정지했다는 설명을 들었다"면서 "특히 이번 사고로 지역민들은 원전에 대한 찬반 여부를 가리지 않고 사업자와 규제기관을 질타하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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