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경제 발목 잡는 좌파 타령
[홍승희 칼럼] 경제 발목 잡는 좌파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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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홍남기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매체에 쓴 글에서 유척(鍮尺)이란 오래된 단어를 사용해 관심을 끈다. 조선시대 암행어사에게 임금이 하사해 암행 나갈 때 마패와 함께 필수품으로 지참하고 다니며 도량형을 속여 백성들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들을 색출하는 도구였다.

홍 부총리는 그런 유척정신을 오늘날 경제를 운용하는 지침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정확성과 공정성의 잣대를 오늘 우리 시대에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 속에는 유척이 있기 전에 임금의 그릇이 되는지를 재는 금척(金尺)이라는 현재로서는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자가 있었다. 하늘이 임금이 될 자에게 내려주는 금척으로 세상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다스리라는 천명의 상징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꿈속에서 이 금척을 받았다는 설화를 그로써 역성혁명으로 얻은 권좌의 정당성을 내세운 것이다. 즉, 하늘이 세상을 다스릴 잣대를 내렸으니 적법한 임금이라는 의미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든 경제정책이든 중요한 것은 바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을 만드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했음을 보여주는 옛 얘기다. 그리고 이는 모든 국민들이 바라는 세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작금의 정치권에서는 그 잣대가 너무 많다. 광복 이후의 분단과 청산되지 못한 식민 잔재에 더해 한국전쟁, 그리고 잇단 독재 정권의 등장은 우리 사회를 판단하는 잣대가 집권세력 따로, 국민 따로따로인 상황을 만든 탓이다.

물론 민주주의란 다양성이 생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 척도는 있게 마련인데 요즘 정치권을 보면 그런 상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똑같은 단어가 서로 달리 쓰이는 경우도 흔하게 본다.

‘민생’이 정부 여당의 민생이 다르고 야당의 민생이 다르다. 국회에선 수많은 민생법안들은 검토조차 안 된 채 계속 잠들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래서야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하는 일부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법안 마련의 권리는 입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도 있건만 정부가 마련한 법안 몇 개 상정하는 문제로 몇 달씩 문제를 빚다가 급기야 패스트트랙이라는 긴급처방으로 법안 상정을 하다 보니 또다시 길거리 정치에 삭발, 단식까지 재등장한다.

그러면서 다른 어느 당도 아닌 자유한국당에서 현 정부를 좌파독재라며 독재타도를 외친다. 그저 황망하다는 생각만 든다. 그렇게 해서 골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는 볼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형성해 나가는 데는 심각한 장애를 야기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야 과연 수권정당이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물론 나중 일은 나중이 되어서 생각하겠다는 모습이지만 그렇게 국민 여론을 딱 갈라 갈등하게 만드는 것이 적어도 국가의 미래를 위한 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금 미국에서는 헤지펀드의 투자 대가들 사이에서 통화이론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라고 한다. 원래는 국제경제학계와 미국 정치권 내에서 벌어졌던 논쟁인데 급기야 금융시장의 거물들이 대리전을 벌이는 형태로 옮겨져 대중의 관심도 모으는 모양이다.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설립자 레이 달리오가 “미국 경제가 또다시 위기에 빠지면 이 이론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변호하고 나선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 : MMT)에 대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최고경영자 래리 핑크가 한마디로 ‘쓰레기’라고 일축하면서 그 논쟁은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기존 통화정책이 낙수효과를 유발하지 못하고 자산가격을 높여 고액자산가만 도왔다고 비판하는 달리오는 과도한 인플레이션만 없다면 정부가 재정적자 규모에 얽매이지 말고 필요한 만큼 통화를 발행해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MMT를 인용해 주장한 것이다.

기존 상식을 뒤집는 이런 주장도 한국에 들어오면 필시 ‘좌파=빨갱이’ 등식에 거론조차 힘들어질 것이다. 실상 박정희 정부가 선택한 불균형 성장 이론도 당시로서는 ‘좌파’ 프레임에 걸렸음직 했으나 아마도 요즘 좌파 논란을 즐기는 정치인들에겐 상관없는 일일 터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라는 시쳇말이 딱 어울린다. 국민이 원하는 잣대가 모든 정치인의 눈에 띌 날은 올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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