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직업공무원과 정책 전문성
[홍승희 칼럼] 직업공무원과 정책 전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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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면 추구하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만큼 많은 정책들이 변하기 마련이다. 그로 인한 다소의 혼란 또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런 집행상의 혼란과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적 보완은 집권자들이 아니라 같은 분야에서 꾸준히 일해 온 공무원들의 몫이다. 집권세력으로서는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공무원 사회를 흔히 무사안일, 복지부동하는 집단이라고 평한다. 책임질 일은 하지 않고 그저 지시받은 대로만 움직이며 세월만 가길 기다린다는 대중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대중적 인식이 억울한 공무원들이 물론 대다수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 고위직 공무원들 중엔 그저 눈치만 보며 자리 지키기에 골몰하거나 시류에 편승하며 한자리 차지하는 데만 열중하는 공무원들이 분명히 적잖게 존재한다.

이는 국민을 향한 일종의 사보타주 즉 태업이다. 공무원 노조는 극력 반대하면서도 공무원들의 그런 태업은 묵인하는 문화가 정치권 안에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는 굳이 어느 특정 정파적 특성이 아니다.

두어 달 전 제주도로 취재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당시 제주도에선 올레길 차량통행을 늘릴 도로 확장공사 강행 문제로 꽤 시끌벅적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이 문제를 우연히 공사 중인 현장을 지나게 됨으로써 직접 목격했다. 고즈넉한 올레길 만의 매력이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 안타까웠다.

아마도 제주도 특별자치정부로서는 관광객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제주도를 계속 ‘개발’하겠다는 의욕으로 시작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욕심이 제주도만이 관광상품을 망치는 일이라는 의심은 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지금 제주도는 그 개발의 망령을 쫓다보니 잔뜩 늘려놓은 숙박시설들이 경영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필자가 묵었던 민박집엔 우리 일행밖에 없었던 기억도 난다.

물론 여름철 성수기가 되면 사정이 달라지기야 하겠지만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사라진 제주의 그 많은 숙박시설들이 여름 한철만 보고 유지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중국인 투자는 열심히 유치했지만 이제 그 자금들도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오히려 부실금융만 쌓여간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미 어족자원 고갈로 어업도 죽어가는 제주도로서는 관광사업만이 지역의 주된 사업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관광산업에 목을 매는 입장이니 사계절 산업으로서의 관광사업을 지켜가기 위한 다양한 테마 개발이 절실할 터다.

제주도만의 특성을 잊고 그저 개발의 망령만을 쫓는 제주의 어설픈 정책실행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지자체들 여기저기서 그런 개발난맥상들을 찾다보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중앙의 공무원들이 그런 지자체들을 흉볼 처지도 아니다. 새로운 정책이 나올 때마다 수많은 빈틈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사회에서는 그런 정책을 채택한 정권의 문제일 뿐 공무원 사회의 잘못은 없다는 식으로 발뺌을 할 수 있지만 그건 직업공무원으로서의 직무유기일 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역할을 노예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자기비하일 뿐이다.

최근 조현병 환자의 방화 및 폭력난동으로 인해 적잖은 사망자와 중상자가 나온 사건을 두고 일각에서는 조현병 환자의 강제입원을 막도록 한 새로운 인권법이 문제라고도 한다. 그 법에 구멍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성적 판단을 기대하기 미흡한 환자 본인의 동의를 요구하는 것은 환자 가족이나 이들에게 엄청난 재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법의 방향성이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강제입원이 남발될 경우의 위험성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분명 그런 구멍을 메꾸는 법제정의 길을 그 분야 베테랑들이 몰랐을 리 없었다는 점이다. 충분한 보완대책이 필요함을 알면서도 관련 공무원들은 입을 닫은 건 아닌지 궁금하다.

‘어떤 일을 했느냐’ 보다 ‘어느 자리를 누렸느냐’로 한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잣대를 다시 점검해볼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게 무사안일, 복지부동 대신 소신있는 공무원을 길러내는 확실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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