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유가 어디까지 오르나···주식시장·산업 여파는?
[초점] 유가 어디까지 오르나···주식시장·산업 여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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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쓰오일의 원유정제시설 모습 (사진=에쓰오일)
에쓰오일의 원유정제시설 모습 (사진=에쓰오일)

[서울파이낸스 김호성 박조아 기자] 미국이 이란 제재를 강화하면서 유가가 급등세다. 최근 2거래일간 조정을 받긴 했지만, 작년 12월 말 배럴당 42.50달러대에 머물렀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급속히 상승해 이달 65달러를 넘어섰다. 

일부 연구기관 및 증권사들은 이같은 유가 급등에 제한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어 관심이 모아진다. 유가 상승으로 인한 영향에도 산업계는 물론 주식시장 역시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달 22일(현지시간) 미국 행정부는 8개국(중국, 인도, 한국, 터키, 일본, 대만, 그리스,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한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에 대한 한시적 예외조치(SRE, significant reduction exeptions)를 연장하지 않기로 발표했다.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조치는 사실상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로 만들어 경제적 봉쇄를 가하겠다는 목적으로, 이와 같은 미국의 압박 기조는 지난해 5월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5월 이란과의 기존 핵협정(JCPOA)에서 탈퇴하고,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새로운 협정이 필요하다는 미국의 요구를 이란은 거부해 왔다. 이에 미국은 이란에 대해 자동차, 귀금속, 철강에 이어 에너지 분야로까지 제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란 강경파는 이와 같은 미국의 조치에 반발하며, 전세계 원유 물동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미국은 항모 파견 등 군사적 조치를 암시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란에 대한 제재, 석유 패권을 놓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주로 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그리고 러시아간 긴장이 팽팽해진 가운데 산업계와 금융시장은 유가의 향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상승 압력 제한적"…작년 고점 돌파시 폭락 가능성

작년 12월 24일 이후 서부텍사스산원유 가격 흐름 (자료=한국석유공사)
작년 12월 24일 이후 서부텍사스산원유 가격 흐름 (자료=한국석유공사)

일부 에너지전문가들은 이란의 원유를 수입지못하도록 하는 미국의 조치에 유가가 오르겠지만, 상승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 행정부가 예고한 5월 2일 기점으로 이란 원유 수입 전면 금지가 적용되더라도 미국의 조치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는 미국의 금융시스템 상에 노출될 우려가 없는 기타 통화를 통해 이란 원유를 수입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따라 수입 금지 조치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국가는 중국과 인도를 제외한 6개국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이란을 압박하기 위한 '선언적' 의미에 그칠 것이라는 해석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는 이란의 으름장 역시 미국의 제재를 완화하기 위한 일종의 액션에 그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호르무즈해협의 제해권을 갖고 있는 미국과 맞설 경우 이란 정권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셈법상으로도, 유가 폭등은 사실상 자신의 지지 기반을 떨어뜨리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몬타나, 텍사스, 오클라호마, 노스다코타 등 정통적 공화당 지지 지역의 경우 유가 상승의 수혜를 받는 지역이다. 유가가 하락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약해질 우려는 크지않다는게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미 마음이 굳혀져 있는 소위 '집토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지역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락을 결정짓는 미시건,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플로리다 등 소비 지역이다. 자동차, 화학 등 제조산업이 몰려 있는 '러스트벨트'이면서 대통령 선거에서의 표심이 변동할 수 있는 소위 '스윙스테이트'이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유가 급등은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지고, 부동산 하락까지 불러올 수 있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언제든 등을 돌릴수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핵협상을 유도하기 위해 이란에 경제 봉쇄를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유가가 폭등할 수준의 압박을 가하기는 쉽지 않다는게 에너지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이에 따라 이란 보다 더 관심이 높아지는 산유국은 사우디아라비아다. OPEC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그간 유가 관리를 위해 러시아와 함께 감산 정책에 공조해 왔지만, 이란 제재의 부작용인 유가 상승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증산 요구에 부응할 수 밖에 없다는게 에너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주요 기관들은 "유가의 하방이 막혀 있다 하더라도 상방에 대한 제한은 있을 것"이라는 예상하고 있다.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이 지난해 연간 기준 최고가 수준으로 오른 10월 초순 배럴당 80달러선을 깨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를 감안해 추산하면 현재 WTI 가격 대비 15% 수준의 상승 여력이 있다는 전망이다.  

이같은 예상을 깨고 지난해 고점 이상 수준으로 추가 상승하더라도 곧바로 폭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선박을 통해 운송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수급에 대한 실시간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단, 의외의 변수에 대한 경계심은 존재한다. 조철근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OPEC과 러시아 등 'OPEC+(플러스)'가 6월 회의에서 어떤 시그널을 발표할지에 주목해야 한다"며 "공급측의 문제가 OPEC이 감산을 종료하면서 해결된다 하더라도 미중 무역갈등이 어떻게 결론나는지에 따라 추가적인 유가 흐름이 변동될 가능성은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조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유가는 불확실성에 오르겠지만, OPEC+가 감산을 줄이고 생산량을 늘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 만큼 명확한 시그널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소폭 상승에 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석유·정유·조선株 호재

이번 유가 급등은 석유·정유 업종과 조선 업종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란 제재가 발생했던 지난 23일 SH에너지화학은 전날보다 55원(4.7%) 오른 1225원에 거래를 마쳤다. 극동유화(2.58%), 한국석유(4.53%), 미창석유(1.37%), 흥구석유(29.81%)등이 큰 폭으로 올랐다. 같은 기간 현대중공업(5.83%), 대우조선해양(2.6%), 현대미포조선(2.64%) 등 조선주도 상승했다.

이후 어닝시즌을 맞아 기업 실적에 대한 우려와 국내총생산(GDP)가 10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는 소식에 정유 및 조선업종 역시 조정을 받긴 했지만 증권가에서는 추가 상승 여지가 남아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유 석유화학업계는 유가 상승에 따른 석유제품 가격 인상과 마진 확대 수혜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 상승에 따른 석유제품 단가 상승은 수출경기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저물가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현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유가 상승은 조선업종 내에서 특히 해양플랜트 부문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요인"이라며 "단기적으로 조선 회사의 주가 상승 요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증시전문가들은 미국이 유가 안정을 위해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유가 상승세가 단기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연구원은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선다 하더라도 정유업체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성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유가 하락은 단기적으로 정유사들의 재고평가손실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도 "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했을 때 수요 측면에서 부담인 점을 고려하면 재고평가 손실로 인한 부정적 효과보다는 원가 부담 감소와 수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국내 산업계 관심은 이란산 초경질유

SK인천석유화학(사진=SK이노베이션)
SK인천석유화학(사진=SK이노베이션)

산업계는 국내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S-Oil 등 국내 정유 기업들이 이란 문제가 다시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해 5월부터 시나리오를 세워 대비해 왔는 점에서 큰 여파는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3년 전체 수입 물량에서 이란산 원유 비중이 13% 수준에 달했지만, 지난해 5%대로 줄였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올해 2월 기준으로는 원유 수입 물량 가운데 이란산 비중이 8.6%로 상승했지만, 중질유에 대한 수입 다변화를 하면서 언제든 비중 조절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석유화학 업계가 이번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조치로 인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SK인천석유, 한화토탈, 현대케미칼 등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티엔, 스타이렌 등의 원료인 납사(나프타, naphtha)를 많이 추출할 수 있는 초경질유(콘덴세이트)를 주로 수입한다. 초경질유의 대부분은 이란산이라는 점에서, 수입 대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간 이란산 초경질유를 수입해 국내에서 추출해서 사용해 왔지만, 수입 대체가 어려울 경우 납사 자체를 수입해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는 곧 가격경쟁력 하락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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