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표이사 물러나도 경영권 안 놓겠다는 조양호 회장
[기자수첩] 대표이사 물러나도 경영권 안 놓겠다는 조양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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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대표이사 물러나도 대한항공은 내 것."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주주들의 '엄중한 경고'는 '단순한 경고'에 불과했다. 명예는 실추됐지만 오히려 '법적 책임'과 '권한'이 분명한 등기이사에서 물러나 막후에서 대한항공 경영권에 입김을 마음껏 불수 있게 됐다.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조 회장이 연임할 경우 '기업 가치 훼손' 등 이유로 그를 대표이사 자리에서 끌어내렸지만, 조 회장과 대한항공은 사내이사 재선임이 부결된 것뿐 경영권 박탈은 아니라며 대한항공 경영 의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의 최대 주주로서 경영권 개입이 가능한 데다,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의 임기가 오는 2021년까지여서 조 사장 뒤에서 막후 경영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최대 지배주주로 '권한'은 행사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상왕(上王)'에 오른 것이다.

다만 상법(401조의2 제1항)은 회사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이사에게 업무집행을 지시한 자(업무집행자), 이사의 이름으로 직접 업무를 집행한 자(무권대행자), 이사가 아니면서 명예회장·회장·사장·부사장·전무·상무·이사 기타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해 회사의 업무를 집행한 자(표현이사) 등 세 가지 경우로 나눠 비등기 임원에게도 법적 책임을 부여한다.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명백한 위법행위 입증 내지는 법리적 판단을 해야 하지만 녹록지 않다는 게 법조계 일각의 의견이다. 이런 까닭에 조 회장의 '무소불위(無所不爲) 성(城)'은 여전히 견고하다.

재계와 시민단체 등은 이번 조 회장의 대표이사 박탈을 두고 '자본시장의 촛불혁명'으로 정의했다. 국민과 주주들로부터 신뢰 잃은 재벌총수는 설 자리도 없다는 것을 '엄중 경고'한 것.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는 시발점이 됐다는 것에 경제계와 시민사회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를 계기로 시장에선 주주 행동주의에도 힘이 더 실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여전히 조 회장 손아귀에 있다. 언제든 다시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그다.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화 '욕심 많은 오 부자' 이야기는 부자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인색하게 굴었던 오 부자를 징치(懲治)하려고 대사(大士)가 '진응수(眞應水- 혈의 앞 또는 옆에 있는 샘물)'를 막게 해 화병으로 죽게 했다는 징치담이다.

이 설화가 주는 교훈은 과욕이 부른 처참한 결과쯤으로 볼 수 있다. 그간 조 회장과 그의 일가족은 여러 위법행위로 재판을 받거나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납품업체로부터 기내 면세품을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중계 수수료 196억원을 받은 혐의 등 총 270억원 규모의 횡령과 배임으로 재판 중이다. 그의 부인과 두 딸인 현아·현민은 '땅콩회항', '물컵 갑질', '운전사 폭행·폭언' 등으로 법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주주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고 내쳐진 조 회장을 '경영인'으로 불러주기도 머쓱하다. 욕심 많은 오 부자 설화에 나오는 진응수는 조 회장에게는 주주의 '엄중한 경고'와 다르지 않다. 지금 조 회장이 해야 할 행동은 경영 의지 피력보다는 무너진 주주 신뢰 회복에 '진정성 있는 행동'이 절실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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