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5년, 한국금융 어떻게 변했나
국민의 정부 5년, 한국금융 어떻게 변했나
  • 이양우
  • 승인 2002.12.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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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하기 아닌 더하기 행진'-덩치 키우기용 합병 전략 뿐
차별화는 실종...국제경쟁력 키울 질적 변화 소홀

경영권만 관심, 마케팅등 영업 전략 고민 흔적 안보여


국민의 정부 5년은 IMF와 더불어 시작됐고 극복을 위한 과정은 금융권을 손보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따라서 금융권으로서는 지난 5년간이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었다. 그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

외형적 수치만 놓고 보면 일단 정부의 IMF체제 극복 과정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지난 5년간 성장률과 외환보유고, 실업률, 물가 등 주요 거시지표는 상당 수준 회복됐다.

또 비록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했지만 기업과 금융부문의 구조개혁은 5년 동안 많은 것을 변화시켰고 국내외 시장에서 어느 정도 신뢰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 금융기관 3분의1 문닫아

YS정부 마지막해인 97년초, 한보사태를 시작으로 이미 금융불안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다.

몇개월간 잠복했던 금융시장 불안은 그해 7월15일 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을 체결하면서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주식자금이 무더기로 빠져나가고 기업들이 쓰러져갔다.
10월 들어 기아처리가 지연되면서 금융기관에 이어 국가 신용등급이 일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해외자금 조달이 완전히 중단됐고 외환수급 불균형을 겪는 금융기관이 속출했다. 11월 정부의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 확대조치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은 빠른 속도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발을 빼고 떠났다.

환율상승 압력도 속도를 더해갔다. 11월 17일부터 나흘 연속 외환거래가 중단되는 위기를 겪으며 정부는 21일 밤 드디어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다.

이후 사상 처음으로 여에서 야로 정권이 바뀌면서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듬해 98년 4월, 정부는 금융감독위원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금융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이후 2002년 11월 말까지 15개 은행과 28개 종금사, 8개 증권사와 7개 투신사, 15개 보험사와 423개 신용협동조합 등 632개 부실금융기관이 정리됐다. 97년 말과 비교해 전체 금융기관의 30%가 문을 닫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2차례 공적자금이 조성돼 지난 8월말까지 157조원이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투입됐다. 그래서 금융권 부실채권 규모는 98년 3월 112조원에서 올 3월말 현재 33조7천억원으로 줄었다.

은행 당기순익도 98년 12조5천106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3조5천722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금융 구조조정은 대규모 부실을 단기간에 털어내고 건전성을 회복했다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대규모의 공적자금 수혈에 의한 것이며 금융기관들 자체의 경쟁력 강화나 다양한 수익원 창출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따라서 금융기관들이 최근 몇 년간 보여준 실적 호전을 자체 구조조정의 산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 합병에만 집착 잘못된 조합

그동안 정부는 금융구조 조정을 금융기관 숫자 줄이기로 보고 오로지 합병과 퇴출에만 전념해 왔다.

사실 금융기관 과다 현상은 6공화국 말기인 90년대 초반 정부가 금융시장 대외 개방에 대비해 일차적으로 국내 경쟁을 유도한다는 명분 하에 은행을 비롯한 종금 등 금융기관을 마구 설립인가해 줄 때부터 시작됐다.

국내 경제 규모는 일정한데 이 파이를 나눠 먹을 입만 늘려놓은 꼴이 됐으니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관의 부실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뒤늦게 금융기관 숫자를 줄여 파이에 손대는 입을 덜고자 했다. 결과는 그동안 이 시장에 과잉투입된 금융인들만 비명 한번 못지르고 퇴출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정부가 소위 자발적인 은행 합병을 유도한다면서 가시적인 실적과 시간에 쫓긴 나머지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두개의 대표적 소매은행을 합병함으로써 가장 비효율적인 조합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소매은행과 도매은행, 국내영업에 강한 은행과 국제영업에 강한 은행의 통합이 이루어져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명분에 쫓긴 나머지 소비자 금융에 강한 두 은행을 합쳐서 덩치만 키워놓았을 뿐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공룡의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금융구조 조정이 은행들의 질적 변화 대신 단지 덩치 키우기에만 매달려온 꼴이다. 환골탈태함으로써 곱하기 성장을 해야 할 시기에 단지 점포수만 늘리는 합병으로 더하기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실수는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다. 하나은행의 서울은행 합병이나 신한, 제일은행의 조흥은행 합병 시도도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더구나 차별화·전문화 전략은 아예 실종됐다. 시장규모는 그대로인채 파이를 키울 생각은 못하고 상대적으로 없어지는 금융기관의 파이를 나눠 차지한 것을 남은 금융기관이 성장하고 경영 실적이 좋아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놓고 과연 은행들이 건전해졌다고 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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