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안위, 정보 공개 제도 '악용'···원전 규제 '사각지대' 심화
원안위, 정보 공개 제도 '악용'···원전 규제 '사각지대'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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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령의 하극상?···"원안법 103조2와 시행령 146조2는 서로 충돌"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사진=김혜경 기자)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사진=김혜경 기자)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1978년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뒤 3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국에는 독립된 규제기관이 없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설립됐지만 안전이 아닌 원전 수출 등 진흥 목적에 치중되면서 출범부터 논란이 일었다.

원자력계에 '핵마피아'라는 오명이 따라다니는 이유 중 하나는 정보 독점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규제기관의 의무 중 하나가 적극적인 정보 공개로 폐쇄성을 개선하는 것이지만 원안위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위원들이 아닌 사무처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정보 공개 제도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25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정보공개의무를 적시한 원자력안전법 제103조의2는 지난 2015년 6월 22일 의원입법으로 신설된 조항이다. 제1항은 "위원회는 공공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원자력이용시설에 대한 건설허가 및 운영허가 관련 심사결과와 원자력안전관리에 관한 검사결과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다만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단서조항 외 나머지 정보는 적극 공개하라는 것이 입법 취지다. 

2014년 12월 39일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대표 발의로 103조2를 포함해 다수의 조항이 신설됐다. 원자로 및 관계시설의 원자력안전관리 현황과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해 공공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해당 조항이 신설된 배경에는 당시 월성 1호기 수명연장과 관련해 원안위가 수명연장 심사보고서를 사업자의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국수력원자력이 비공개했던 자료 일부가 당시 해킹 사건으로 외부에 공개되자 한수원 측은 일반자료라고 언급했고,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공개 가능했던 일반 문서조차 일반인들에게는 영업비밀을 이유로 비공개했다고 꼬집었다. 즉 정보 공개 시 영업비밀을 남용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신설된 조항이 원안법 103조의2다. 

사진=법령정보센터
원안법 제103조의2. (사진=법제처 법령정보센터)

원자력 관련 규제 법무를 담당하고 있는 장군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노조지부장은 "기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 9조에는 사업자의 영업상 이익을 위해 정보공개를 제한토록 하고 있어 특별법인 원안법 103조의2를 신설했다"면서 "문제는 원안위 사무처에서 시행령 하위규정 제146조의2를 신설하면서 정보공개법상 사업자 영업비밀 보호를 목적으로 정보공개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해 상위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원안법 시행령 146조의2. (사진=법제처 법령정보센터)
원안법 시행령 제146조의2. (사진=법제처 법령정보센터)

2016년 6월 21일 신설된 원안법 시행령 제146조의2는 상위법인 원안법 103조의2에서 규정한 정보공개의 대상정보와 방법을 나열하고 있다. 주목할 조항은 8호다. 8호는 "원안법 103조의2에 따라 정보를 공개할 때 해당 정보에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가 포함돼 있는 경우 같은 법 14조에 따라 제외하고 공개해야한다"는 내용이다.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보유한 정보는 공개가 원칙이지만 9조에서 비공개 대상 정보를 규정하고 있다. 법인·단체·개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내용 등이다. 다만 영업비밀이라도 사업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위해로 생명 보호가 필요한 정보는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심사보고서조차 정보공개법을 근거로 비공개된 바 있다. 

장 지부장은 "103조2의 단서조항인 '국가의 중요 이익에 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정보를 적극 공개하도록 규정했음에도 정작 하위규정인 시행령에서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자료의 공개를 제한하고 있다"면서 "단서조항 제한 범위를 넘어 시행령에서 확대될 경우 원안법 취지에 위배된다고 시행령 제정 전 의견서까지 보냈다"고 말했다. 

한국의 법체계는 헌법-법률-시행령-시행규칙-조례순으로 구성된다. 법률에 해당하는 원안법은 대통령령으로 분류된 시행령보다 상위규정이다. 시행령이란 법률 시행에 필요한 세부 규정을 정해놓은 법규 명령이며, 쉽게 말해 해당 법의 하위법인 셈이다. 상위법의 내용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만 유효하기 때문에 위임받지 않은 사항을 정하는 건 위법으로 풀이된다. 원안법 103조2와 정보공개법상 영업비밀이 포함된 시행령은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시행령이 상위법에 위배됨으로써 규제기관이 오히려 사업자 편을 들고 있다는 것이 장 지부장의 설명이다. 

이른바 '시행령의 하극상'으로 볼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 이 같은 현상은 비단 원안법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도 숱하게 지적돼왔다. 국회의원이 입법한 내용을 두고 정부기관에서 시행령을 이용해 상위법의 취지를 축소하거나 왜곡할 수 있어 문제가 발생한 적도 여럿이다. 위법한 시행령에 대해서는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해당 부처에 행정입법 검토를 요구하거나 국회가 상위법을 개정하는 방법이 있다. 헌법이념과 상위법을 위반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원안위 안전정책과 관계자는 "정보공개는 기본적으로 공공기관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를 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규정된 내용을 만약 공개해야 한다면 원안법에 별도 규정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정보공개법상 비공개로 분류되지만 원안법에 따라 공개해야 한다'고 명시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은 현행법상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103조2 단서조항 내용은 안보 측면에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영업비밀은 당연히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시행령이 상위법은 무력화시킨다는 내용은 전혀 걱정할 부분이 아니다. 과거에 비해 정보공개법은 발전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다만 원안위는 기존 원안법에도 정보공개의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현재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원자력안전 정보공개 및 소통에 관한 법률안'이 보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정보 공개 범위를 넓히겠다는 법안 취지와는 다르게 일각에서는 해당 법률로 인해 오히려 공개 범위가 축소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근거는 제5조 원자력안전정보공유센터 설립과 6조 1항 3호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상 사업자의 영업상 이익에 반하는 정보공개를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장 지부장은 "해당 법률안에는 공공기관 정보공개법상 규정된 영업비밀을 빼고 상법상 사업자를 보호하는 법률을 포함시켰다"면서 "부정경쟁방지 관련법은 정보공개법상 법률보다 영업비밀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원안법 시행령보다 정보 공개에 더 제한이 가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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