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초부터 무너진 핵쓰레기 관리 체계
[기자수첩] 기초부터 무너진 핵쓰레기 관리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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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핵발전에는 우라늄 채굴부터 농축·운송과 발전소 가동을 거쳐 폐로·방사성폐기물 처리까지 전 과정이 포함된다. 핵분열로 발생하는 열에너지가 전기로 전환되는 단순 발전 과정만 뜻하지 않는다. 타고 남은 연탄재조차 정해진 방식에 따라 처리하고 있지만 고(高)선량 방사선을 내뿜는 사용후핵연료는 여전히 임시 공간에 쌓아두고 있다. 이를 두고 핵발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발전소에서 나오는 방폐물은 비단 폐연료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원자력연구원이 중·저준위 방폐물 핵종분석 오류를 내면서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논하기 이전에 중저준위 관리부터 다시 점검해야할 판이다. 화장실(경주 방폐장)을 만들어놓고도 변기에 넣어서는 안 될 쓰레기를 버리는 식이다. 10만년 동안의 안전을 우려하기 전에 당장 300년 미래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다. 

중저준위방폐물은 핵종 재고량 평가를 통해 드럼에 담겨 경주로 옮겨진다. 세슘137, 요오드129 등 각 핵종들은 알파·베타·감마선 등 방출하는 방사선 종류가 다르다. 차폐 물질은 물론, 반감기에 따라 저장 구역과 보관 기간도 달라진다. 재고량 평가 방법은 파괴·비파괴 혹은 직접·간접 측정 평가로 나뉜다. 연구원 방폐물에는 직접·간접 평가 방식이 모두 이용됐고, 발전소 방폐물 분류에는 감마선만 계측기로 측정한 후 '척도인자'를 이용해 알파와 베타선 비율을 추정하는 간접 방식이 적용된다.

척도인자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알파·베타선 농도 분석을 위한 샘플 데이터가 필요하고, 각 방폐물에서 시료를 채취해야만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시료 채취와 분석이 가능한 국내 유일 기관은 원자력연구원이다. 척도인자 개발을 위해 수행된 방사능 분석이 정확한지 여부가 핵심이지만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현재 척도인자가 유효하지 않은데도 이를 바탕으로 폐기물이 방폐장에 처분되고 있다는 문제가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최근 기자는 국내 원자력전문가로 구성된 원자력안전연구회를 통해 한국수력원자력의 척도인자 자료 일부를 확보했다. 해당 자료에는 2015년 이전 원전 폐기물 가운데 알파핵종 분석 오류를 보여주는 그래프 4개가 포함돼있다. 2004~2008년 척도인자 개발 단계에서 전알파 분석값(Gross Alpha)은 알파방사능 핵종분석 값을 합쳐놓은 수치(Alpha Sum)보다 약 70배 높게 분석됐다. 반면 2009~2014년 1·2차 주기적 검증 과정에서는 오히려 6~7배 낮게 평가되는 등 '불만족' 결과가 도출됐다. 최소 2016년 보정 수치 적용 전 인허가 받은 척도인자가 적용된 방폐물은 잘못 분석된 것이다. 

한수원 측은 "결과적으로 척도인자는 보수적으로 설정됐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렇다면 1·2차 주기적 검증에서 나온 결과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6~7배 낮게 '비보수적'으로 평가됐으니 문제가 있다고 해석해야 할까. 핵종 측정값을 정확하게 산출한 후 척도인자 적용 시에만 보수적으로 해야하는데도 결과만 보수적으로 나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핵발전은 과학의 결정체임을 강조하면서 폐기물 분류는 왜 비과학적으로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해당 사안을 취재하면서 황당했던 점은 기술적인 문제보다 관계 기관들의 안일한 태도였다. 취재 과정에서 한수원 등은 문제가 된 방폐물의 '원데이터(raw data)'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내부적으로 자료 유무의 여부조차 확인되고 있지 않다는 말도 나왔다. 규제기관 제출 목적으로 알파핵종 분석 그래프에 사용된 원데이터를 구하기 위해 수소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발전소 폐기물 데이터임에도 외부에 접촉해 구하려고 했다는 점도 의문스러웠다. 이 과정에서 한수원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데이터 일부를 제출했지만 원본 자료가 아예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더 힘을 받았다. 원본 데이터가 아예 소실됐다면 최악의 경우 방폐장 지하에 처분된 폐기물을 모두 꺼내야 한다. 

한수원 관계자는 "개별알파 측정값을 보유하고 있는 건 맞지만 해당 그래프는 수많은 데이터 가운데 작성자가 어떤 값을 사용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전알파·개별 알파값 분석 그래프와 관련해 유사한 데이터값 2~3개를 원안위에 제출한 상태"라고 말했다. 해당 답변도 뒷맛이 여전히 개운치 않다. 그렇다면 측정값 데이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제기관에는 모든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말인지. 이를 두고 또 다른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연구원 방폐물만 조사 대상임을 강조했던 원안위는 최근 한 발 물러나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해 원안위는 연구원 방폐물은 직접 측정 방식으로 폐기물 분류를 했고, 원전의 경우 간접 측정을 이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원전 방폐물 오류 가능성은 처음부터 봉쇄하고 나섰다.

그러나 최근 원안위 관계자는 "원전 방폐물도 분석 오류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 인지는 하고 있다"면서 "진행 중인 검사에서 필요사항이 확인될 경우 특별검사를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원자력안전연구회는 "원자력 산업의 기초가 무너진 것"이라면서 "원자력연구원의 도덕적 해이가 만방에 드러났는데도 원안위가 발표한 규제 강화 안에는 중저준위 방폐물은 언급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핵종분석 오류는 연구원 폐기물 무단반출 조사에서 불거졌다. 지난 2017년 4월부터 약 6개월 간 원안위는 해당 사안에 대해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까지도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 과거 조사에서는 왜 밝히지 못했냐는 지적이 일면서 조사 은폐·축소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조사를 지휘했던 방사선방재국장은 현 원안위원장이다. 현재 실시 중인 조사에서 규제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가운데 3월 출범 예정인 사용후핵연료 재검토 공론화위의 향배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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