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현대중공업 '빅딜'에 밀려난 대우조선의 하도급 갑질
산은-현대중공업 '빅딜'에 밀려난 대우조선의 하도급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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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지난달 28일 대우조선에 의결서 전달"
공공입찰 제한, 결합심사 등 국내 변수부터 넘어야
23일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폐업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날 오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으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으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2년 반에 걸친 조사 끝에 대우조선해양의 하도급 갑질 행위에 대해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을 결정했다. 불공정 행위가 공식 인정됐다는 데에 하청업체들은 안도했지만 매각 건이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전환됐다.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의 '빅딜'이 조명되면서 대우조선은 한 발 물러났고 공정위 제재에 따른 피해 보상 등은 자취를 감췄다.

지난달 28일 공정위가 의결서 작성을 완료하면서 하청업체 피해대책위원회는 의결서 내용을 각 선사에 배포하겠다고 나섰다. 매각 건으로 대우조선과 산은이 서로 회피하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해외 반독점심사 이전에 하도급법 위반으로 인한 벌점 누적, 공정위 기업결합승인 등 국내 변수도 곳곳에 산적해있다. 

◇ 2017년 대법원 판결과 다른 이번 제재···갑질 '행위'에 초점

대우조선이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 제재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3년 공정위는 2008~2009년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지급한 혐의로 대우조선에 과징금 267억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2017년 대법원에서 무혐의로 종결된 바 있다. 같은 해 공정위는 1차 조사 결과 18개 하청업체에 1143건의 서면발급 누락 사실을 밝혔지만 과징금은 2억600만원에 그쳤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제재는 세 번째로, 공정위는 현재 2016년 이후 하도급 갑질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하청업체들은 2017년 대법원 패소건과 이번 공정위 제재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갑질 행위 자체가 문제였다는 점과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대우조선이 반박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못한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윤범석 대우조선 하청업체 갑질피해대책위원장은 "2013년 공정위는 직권조사를 통해 원청이 기성금을 2%씩 경감하는 방식으로 업체를 쥐어짠 내용을 수치상 증명을 했는데 대법원은 이 부분을 오히려 경영상 재량으로 판단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면서 "그러나 이번에는 피해 규모가 얼마냐는 것보다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라는 데 초점을 맞췄고, 원청에서 반박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을 포함해 조선 3사의 하도급 갑질 행태는 △선시공 후계약 △단가 후려치기 △기성금 미지급 △일방적인 공사종료 등 비슷하다. 대우조선의 조사 결과가 비교적 빨리 발표된 이유는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피해를 본 업체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는 25개 업체들 중 20곳이 해양플랜트 사업을 맡고 있다. 해양플랜트의 경우 각 프로젝트별 견적을 낼 때 원가와 시수(작업 물량을 노동 시간 단위로 변환한 것)가 달라진다. 공정 특성상 원청이 원가 기준을 확실하게 공지해야 했지만 저가로 진행되는 등 체계 자체가 엉망이었다는 지적이다. 

윤 위원장은 "해양플랜트 저가 수주가 가능하려면 시스템 부분, 즉 작업 공수(맨 아워)를 줄여야 한다. 예를 들면 10명 투입 시 100만원을 받아야 된다고 가정했을 때 당초 견적 금액이 아닌 80 정도로 계약하는 식"이라면서 "한 업체에 대금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다른 업체를 투입해 작업을 진행하는 이른바 돌려막기도 빈번했다"고 토로했다.

2017년 대법원 패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공정위는 이번 과징금 산정 기준을 '수정 추가 기성(주무 변경으로 인한 공사대금)' 미지급으로 인한 피해만을 산정했다. 확실한 부분을 내세워 향후 진행될 수도 있는 법정 공방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해양플랜트 공정에서 월별 기준 '본 기성'과 '수정 추가 기성'의 비율은 60대 40이다. 윤 위원장은 "한 달 기성이 10억원이라면 4억원이 수정 추가 기성인데 4억에서 5%만 하청에 줬다는 이야기는 결국 원청이 3억8000만원을 가져갔다는 것"이라면서 "관련 자료를 대우조선이 가지고 있지 않아 변론이 불가하다는 것이 공정위 측이 대책위에 설명한 내용"이고 말했다.

◇ '공공입찰 제한' 가능성 높지만···"누산 벌점 산정까지 6개월 소요"

대책위에 따르면 그동안 대법원 판례만을 내세웠던 대우조선의 태도는 공정위 첫 번째 심의와 두 번째 심의에서 달라졌다. 8월 심의에서는 하청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12월 재심의에서는 책임은 원청에 있지만 해양플랜트 특성상 프로젝트마다 개별성을 띄기 때문에 양해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왜 태도가 달라졌을까. 공정위 심의 진행 과정에서 대우조선이 제출한 변론 자료가 부실했을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심의에서는 기성 관련 자료를 아예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위원장은 "당시 공정위에서 '시간 벌려고 자료 제출 시간을 달라고 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원청은 '자료를 더 찾아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법률 대리인인 '광장이' 제출한 변론 자료를 살펴보면 결론 부분에 "벌점이 누락될 경우 잠수함 건조 등 방위사업청 입찰 참가가 제한돼 수천 억 원 이상의 손실 예상 및 잠수함 건조 사업에 악영향. 최대한 선처를 요청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여기서 '벌점'이란 하도급법 위반 시 부과되는 벌점을 뜻한다. 

공정위는 하도급 위반 업체의 3년 간 누산(벌점 경감까지 고려한 누계) 벌점이 5점이 넘으면 해당 업체의 공공입찰 참여 금지를, 10점이 넘으면 영업정지를 요청할 수 있다. 제재 내용에 따라 △경고 0.25점 △시정명령 2점 △과징금 2.5점 △검찰 고발 3점 등으로 구분된다. 대우조선의 경우 기존 서면 미교부로 인한 과징금 2.5점에 이번 검찰 고발로 3점이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에 따르면 제재 내용 가운데 가장 벌점이 높은 항목 한 개만 누적 벌점에 포함된다. 행정 절차를 거쳐 최종 누산 점수가 5점이 넘으면 공공입찰 참여 금지가 요청되고 방위 사업 부문을 영위하고 있는 대우조선은 일정 기간 동안 군함을 수주할 수 없게 된다.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과 관계자는 "의결서가 전달된 시점을 기준으로 3년 내 누적 벌점이 5점 이상일 경우 해당 기업에 통보를 하고, 벌점 경감 신청 등의 과정을 거쳐 점수가 확정되면 위원회에 입찰 참가 제한 요청 안건을 올린다"면서 "단순 기본 벌점은 5점 이상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누산 점수는 위원회 결과가 나와야만 점수를 공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 상정 기간을 포함해 누산 벌점 공개까지는 일반적으로 5~6개월의 기간이 소요된다. 공정위 제재 결과가 나온 이상 벌점 관련 행정 처리를 매각 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문제다. 최소 반 년 동안 공공입찰 제한 가능성이라는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이번 대우조선 매각이 폐쇄적 혹은 너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양사 결합이 이익이라면 이 같은 내용을 해결한 후 매각 절차를 밟아도 늦지 않다는 것. 

산업은행 관계자는 "하도급법 위반 결과가 나온 후 대우조선 측에 연락해 벌점 관련 내용은 인지하고 있었고, 매각 자체에 영향을 끼칠 만큼 큰 변수는 아니기 때문에 매각 절차를 개시했다"면서 "공공입찰 제한이 이뤄지더라도 입찰 제한 기한이 정해져있고, 방산은 수시로 선박 발주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공정위로 쏠린 눈 

국내에서 넘어야할 또 하나의 관문은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다. 현대중공업이 신고를 하면 진행되지만 아직까지는 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다. 심사 결과가 나오려면 4개월 정도 소요된다. 다만 심사 과정에서 보정 자료 제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체 심사 기간은 길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결합 여부를 결정짓는 일반적인 요인은 시장 지배력이다. 공정위 기업결합심사과 관계자는 "결합 결과에 따라 경쟁 제한 효과가 발생하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본다"면서 "경쟁 제한 발생 외에도 기업결합 후 가격인상 요인과 담합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게 되는데 각 사의 시장 점유율을 '어떤 기준'으로 산정할 것인가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결합 건도 우선 양사의 내부 자료부터 받아봐야 따져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공정위가 결합 심사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하청업체 대책위는 공정위 의결서 내용을 발췌해 외국 선주에 발송한다는 계획이다. 산은과 대우조선 등이 피해 구제에 나서주길 강력 요구하는 차원에서다. 

대우조선 관계자는 "지난 4일 공정위 의결서는 전달받았다"면서 "구체적인 의결서 내용을 검토한 후 행정소송 여부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 관계자는 "산은이 대주주이긴 하지만 실제 경영 권한은 없기 때문에 하청업체 피해 구제 관련은 대우조선 측이 해답을 내놓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 "다만 상황의 특수성을 감안해 내부적으로 개입 여부에 대한 고민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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