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인선도 개입···강성 노조에 휘청이는 은행권
CEO 인선도 개입···강성 노조에 휘청이는 은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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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주 행장 용퇴···KEB하나銀 노조 연임 반대 선봉
CEO 연임·취임 초기 '길들이기'용 퇴짜놓기 일상화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3연임 문턱 바로 앞에서 용퇴로 선회한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하나은행 노동조합에 대한 섭섭함을 이례적으로 내비쳤다. 은행장 후보에 선출되기도 전에 옛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인사·임금·복지제도 통합을 무난하게 이끈 공로를 폄하하고 연임 반대 목소리를 높인 것에 대해 서운함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권 일부에선 아직 1심 판결도 나지 않은 함 행장의 채용비리 의혹을 겉으론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노조의 정치 '실리'를 챙긴 것 아니냐는 가시 돋힌 비판이 나온다. 최고경영자(CEO)의 연임 이슈가 걸려 있거나 CEO가 새로 취임하는 금융사 일수록 노조의 '기선제압'식 발목잡기가 그 어느 때보다 심해지기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금융권 노조 정치화 =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 금융산업은 세계 금융선진국과 비교해 노조의 입김이 강하다. 확실한 소유주(오너)나 지배주주가 부재한 탓에 안 그래도 지배구조 리스크에 취약한데, 최근 들어 노조까지 힘 과시에 나서면서 리스크가 더 심화되고 있다. 하나은행의 경우 노조가 인사 문제까지 결부되며 권력화된 도구로 다시 떠올랐다는 지적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CEO로서는 세력이 큰 노조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며 "대부분 CEO들이 취임 후 첫 행보로 노조위원장과 면담을 하는 것도 노조 달래기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해가 바뀔수록 노조의 정치화가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친노동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 들어 노조의 힘은 점점 더 세지고 있다. 연초부터 KB국민은행은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 불발로 노사가 극한 대립을 하며 19년 만에 총파업을 감행하기도 했다. 국민은행은 금융권에서도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어 '귀족노조', '직원 돈 잔치' 등 노조를 향한 거센 비판이 나왔지만 결국 사측은 노조의 요구사항 일부분을 수용해 줬다.

시중은행의 노조위원장에서 금융노조 집행부를 거친 후 상위 조직인 한국노총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궁극적으로 국회의원 자리를 노리는 케이스가 재탄생할 가능성도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지주 한 관계자는 "일부에선 현재 금융노조 사무총장을 지내고 있는 유주선 전 신한은행 노조위원장을 향후 금노위원장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거론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노조위원장이 이른바 출세 코스로 통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는 것이다.

KB국민은행 노조가 8일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박시형 기자)
KB국민은행 노조가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박시형 기자)

◆'노동이사제'로 눈 돌리는 은행 노조 = 사측과 노조의 샅바 싸움이 올해 들어선 금융사 경영 개입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 노조와 IBK기업은행 노조가 먼저 노동이사제 추진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달 25일 공모를 통해 박창완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을 신임 사외이사로 추전했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석해 의결권과 발언권 등을 행사하며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다.

동중정(動中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우리은행 노조 역시 지주사 체제가 자리 잡으면 치열한 기세 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은행 노사는 지난해 별 잡음없이 임단협을 마무리하며 지주사 전환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우리금융지주 경영이 안정 궤도에 진입한 다음엔 본격적인 수 싸움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미 우리은행 노사의 대립은 예고된 측면이 있다. 우리은행 노조가 2017년 말 우리사주조합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향후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주주제안'으로 변경한 것이 그 방증이다. 현재까지 우리은행 우리사주조합 지분율은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6.39%다.

다만 노조의 이 같은 강성 행보에 대한 금융권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노사 관계가 잘 형성되기 위해서는 노조 역시 견제와 균형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사 의사결정 체계에서 노조 요구가 무시를 당하거나, 금융 근로자의 권리가 침해하는 일이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고 본다"며 "노조를 등에 엎고 임명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하게 되면 정상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왜곡시킬 가능성도 높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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