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학자 출신' 윤석헌 원장의 '힘 빠진' 금융혁신
[기자수첩] '학자 출신' 윤석헌 원장의 '힘 빠진' 금융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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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서지연 기자] 혁신.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후 가장 강조한 단어다. 학자 시절부터 금융당국에 쓴소리를 많이 했던 그는 바꾸고 싶었던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취임 1년도 채 되지 않아 금융감독혁신 과제, 내부통제 혁신TF, 보험혁신TF 등을 선보이며 금융혁신에 대한 남다른 의지를 내비쳤다. 

취임 2년차에 접어든 지금. 결과물은 윤 원장의 의지만 못 하다. 남은 임기 안에 제대로 된 혁신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금융사 내부통제 혁신안은 빛도 보지 못하고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금융사 불공정영업 제재와 최고경영자(CEO) 책임 명문화 등 내부통제 혁신안 대부분이 법이나 감독규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인데, 국회나 금융위원회의 반응이 탐탁치 않기 때문이다.

혁신안 42개 중 법 개정이 필요한 안건 14개(33%)는 소관 기관인 금융위와 협의해 법 시행령이나 감독규정을 바꿔야 한다. 특히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을 개정해야 하는 안건이 10개에 달한다.

윤 원장이 특별지시해 만든 보험혁신 TF도 결국 '반쪽짜리'에 그쳤다는 평가다. TF가 권고한 50개의 과제 중 반 이상이 금융위의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결국 알맹이 없는 우선추진 과제만 발표했고, 일각에선 감독분담금만 낭비했다는 날선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저 법규 개정이 필요한 사안 등은 금융위 등 유관부처와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라는 기약없는 계획 뿐이다. 윤 원장의 혁신 의지는 금감원이 독자적으로 제도개선 하는 것은 힘들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준 모양새가 됐다. 

금융위의 동조를 이끌어 내지 못한 건 윤 원장의 '독자적 행동'이 요인으로 꼽힌다. 사전협의 없이 무리하게 제도개선을 시도해 금융위 입장에서는 금감원의 '월권'으로 읽힐 소지가 다분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위는 불편한 심기를 여러차례 드러내기도 했다. 금감원이 운영 중인 TF에 대해 전수조사를 진행하기도 했고, 최종구 위원장은 공식석상에서 "확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혁신에 대해 노력하라"며 경고섞인 메세지를 주기도 했다. 

학자 출신인 윤 원장의 혁신 의지가 오히려 독이 된 꼴이 됐다.

사실 현재의 금융감독체계에선 금감원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감독기구와 정책기구가 한 목소리를 낼 수는 없는 구조다. 대통령 공약사항인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이 흐지부지된 것도 금감원의 힘을 빼는데 일조한다. 금융위와 금감원 이중 구조로 된 현 감독체계는 잡음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민간출신 금감원장을 고집한 건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금감원장 자리를 놓고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발탁으로 충격을 줘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비판과 저항을 감내하며 민간출신을 선택한 배경에는 그간 관료들이 하지 못한 방식으로 금융감독의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하라는 과제를 주문한 셈이다.

이제 윤 원장은 묘수를 찾아야 할 때다. 금융혁신 의지가 확실하다면 한발 물러서 타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제도개선권을 쥐고 있는 금융위를 설득하는 것 또한 혁신의 시작이다.

번번히 금융위에 가로막혀 혁신이 동력을 잃는다면 문 대통령의 과감한 외부 발탁 인사는 결국 실패한 인사가 돼 버리는 것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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