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선과 경계인 이야기
[홍승희 칼럼] 선과 경계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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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판문점 인근 GP에서 휴전선 부근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보이는 풍광은 양측의 긴장서린 경계와 무관한 듯 평화롭게만 보였다. 물론 강 건너 보이는 휴전선의 낡은 철조망이 그 풍경을 거스르는 듯 보이긴 했지만.

자연은 무심한 듯 그렇게 평화로운 모습을 보이지만 인간의 욕망은 언제든 그 자연 위에 선을 긋고 또 포화를 퍼부으며 무수한 피를 흘려댈 수 있다. 이미 우리 역사에서도 나이든 세대들이 잊지 못하는 비극적 전쟁이 있었고 아직은 그 전쟁이 채 끝나지 못한 휴전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종전협정을 얘기하지만 한편에선 여전한 불신으로 더 날을 세우기도 한다. 또한 휴전선언의 한 쪽 주체인 미국의 동의없이 휴전협정이 종전협정으로 바뀔 수도 없다. 지금 하노이에서는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그 회담의 진행여부에 따라 우리가 휴전협정이라 부르는 정전협정에서 종전협정까지 이어질 수도 있지만 아직 한반도는 남북의 전쟁 상황이 잠시 멎은 상태일 뿐 끝난 상황은 아닌 것이다.

최근 정전협정과 더불어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돼 있는 인도`파키스탄 국경에서 다시 전운이 감돈다는 뉴스가 나온다. 인도 공군기 12대가 통제선(LoC)을 넘어 들어가 공습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인도 쪽에서는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에서 반군에 의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 이후 갈등수위가 높아지고 있던 상황에서 테러리스트들의 캠프에 1톤에 달하는 폭탄을 집중 투하함으로써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다. 당연히 파키스탄 정부는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인도를 비난하고 있지만 인도는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 모두 핵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 지역에 이미 수십만의 균대가 대치상황인데 더해 이번 폭격으로 파키스탄 정부는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하는 등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본디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할 당시부터 분쟁지역이었던 카슈미르에서의 폭탄테러는 이번 공습의 빌미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총선을 앞둔 인도 집권당이 만들어낸 정치적 이슈일 뿐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지만 어떻든 양국의 군에는 긴장감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 인도 공군의 공습을 둘러싼 분석에서도 나타나듯 정권 입장에서 군인들은 장기판 위의 일개 말에 불과하지만 그 많은 군인들은 저마다의 삶이 있고 가족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역사 속에서 그들의 삶은 존중받지 못했고 그 가족들의 평화로운 소망 역시 하찮게 외면당했다.

이런 상황은 어찌 보면 우리가 정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바꾸고 남북한 간 평화체제를 만들어가려는 현 정부의 노력에 대해 비웃고 불신을 보이는 보수 세력들의 태도에서도 확연히 살아있다. 물론 그간 남북한 간 긴 갈등과 잦은 충돌로 인한 이유 있는 불신이기는 하지만 미래보다는 과거에 집착함으로써 앞으로의 전쟁 가능성을 줄여나가려는 노력을 폄훼하는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신념 속에 국민 개개인, 병사 개개인의 삶과 꿈은 포함되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역사와 현실에서 늘 선을 긋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세상은 오직 네 편과 내편만 존재한다. 물론 독립투사이자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선생 같은 분들도 세상엔 아(我)와 피아(彼我)만 존재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단재 선생께서 민족 해방을 위해 힘겹게 싸우던 당시의 상황논리로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권력기반이 불안한 이들일수록 그 아와 피아의 경계에 선 이들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 결과 70~80년대에는 진영논리의 틈새에 낀 경계인들이 정권의 탄압에 신음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지금은 이념적 경계가 아닌 기술과 윤리의 경계, 기성 학문과 새로운 이론 간 경계에 선 새로운 유형의 경계인들이 등장하며 종종 위태로운 길 위를 걷고 있다. 그리고 조급하고 성마른 세상은 이들의 설자리를 끊임없이 위협하며 벼랑으로 내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쟁은 눈에 보이는 전선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포용을 거부하는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다양한 형태로 내려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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