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부끄러운 한국의 얼굴
[홍승희 칼럼] 부끄러운 한국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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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떤 이웃의 얘기를 들으며 참으로 답답한 우리의 또 하나의 얼굴을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살짜리를 맏이로 두 살터울 세 아들을 둔 그 여성은 셋째 아들을 낳고 두 달이 되자마자 시아버지로부터 돈벌이에 나서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수입보다 육아비가 더 들겠다고 웃던 그 여성이 전한 또 다른 얘기가 더 귀에 오래 남았다. 자신들은 캠퍼스커플로 일찍 결혼했지만 나이 마흔이 되도록 결혼하지 못했던 맏 시숙이 지난해 집안 주선으로 동남아 여성과 혼인하고 곧바로 임신까지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어도 서툰 이 외국인 며느리에게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먹고 싶은 음식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게 하는 시부모를 보며 경악했다고 그 여성은 분개했다. 하다못해 통닭이 먹고 싶다는데도, 입덧 탓인지 낯선 한국 식문화 탓인지 음식을 못 먹는 며느리에게 그 지역 특산물인 귤이 썩어 나가는데도 그조차 제대로 못 먹게 하더라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변명은 맏며느리 길들이기라지만 작은 며느리 눈에는 외국인 며느리에 대한 명백한 학대로 보여 가까운 또래 이웃에게 자기 시어머니가 진짜 나쁜 사람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어린 아들 셋을 기르느라 본인도 힘들지만 본인보다 나이도 어린 맏동서가 마음에 걸려 먹고 싶은 거라도 사먹게 매달 10만원씩을 보내기로 했단다.

동남아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이 도망갔다거나 도망가려 한다는 불신을 보이는 한국인 가족들의 불만이 인터넷 상에서 종종 떠돈다. 하지만 위의 사례를 보자면 그들 여성들이 도망가는 것은 그야말로 살기 위한 탈주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에게 가혹하기는 이들 결혼이주여성들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학대사례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말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23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20%를 넘어서는 28만명이 외국인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비전문취업자이고 이보다 많은 35만 명의 미등록체류자들이 있다.

이들은 대개 인권보장을 받지 못하고 학대당하는 이주노동자 그룹에 속한다. 그들이 겪는 참상은 과연 대한민국이 문명국인지를 의심케 하는 수준이다.

물론 모든 이주노동자 고용주들이 그들을 학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약자들에게 가혹한 고용주들은 소수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당하는 학대 사례는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 사회의 낯부끄러운 현실에 어쩔 수 없이 눈길이 가게 한다. 한국인들이 취업을 꺼리는 기피업종에 주로 몰려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이미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7%를 넘어서며 한국 경제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결혼이민자들과 난민들도 거의 대부분 취업활동에 나서는 것을 고려하면 200만 명 가량이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들이 일시에 한국사회를 떠난다면 한국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준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이들 이주노동자들은 기본적인 의료혜택도 못 받고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되기도 한다. 그들의 주거수준도 열악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간혹 보이는 뉴스영상에서 쉽사리 알아보게 된다.

대부분의 고용기업들이 낙후된 상태이다 보니 체불임금도 종종 문제로 떠오른다. 그들의 노동권은 제대로 보장받을 장치가 미비하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맺어진 노동계약이라면 당연히 그에 따른 보장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단지 가난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에 대한 착취와 학대를 당연시하는 문화가 은근히 퍼져 있다.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 해서 노동력을 일방적으로 착취하고 인권을 짓밟아도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권리와 의무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따라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게 더 힘이 있다는 이유로 상대의 권리를 짓밟는 추한 한국인의 모습은 누가 뭐라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60~70년대 노동운동의 불길을 일으켰던 구로공단 어린 여공들의 모습을 오늘날 이주노동자들에게서 다시 보는 심정은 참담함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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