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임시정부' 100주년···독립 앞장선 'LG·동화약품·유한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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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LG 창업주, 독립자금 지원···동화약품, 독립운동가 3명 배출
유한양행 창립자 유일한 박사(왼쪽)와 동화약품 초대 사장 민강 선생. (사진=각 사)
유한양행 창립자 유일한 박사(왼쪽)와 동화약품 초대 사장 민강 선생. (사진=각 사)

[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일제 탄압으로 대부분 해체돼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독립운동 기업은 몇 안 되지만 독립운동에 헌신한 창업주의 정신을 이어오는 기업들을 되새기는 것 또한 의미가 남다르다.

연암(蓮庵) 구인회 LG 창업주는 1942년 7월 진주에서 구인상회라는 포목상을 운영하고 있을 때 독립운동가 백산(白山) 안희제 선생의 부탁으로 독립운동 자금 1만원(현재가치로 1억원으로 추정)을 조건 없이 내줬다.

구 창업주는 당시 "나라를 되찾고 겨레를 살리자는 구국의 청에 힘을 보태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돕는 일"이라면서 일제의 삼엄한 감시의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자금을 희사했다.

구 창업주가 민족 독립의 열정이 강했던 것은 부친인 춘강(春崗) 구재서 공의 영향이 컸다. 춘강 공은 1930년 독립운동가 일정 구여순 선생을 통해 상해임시정부 김구 선생에게 독립운동 자금으로 5000원을 지원했다.

LG는 서재필 기념관 개보수 지원, 중경 임시정부청사 복원 지원,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개보수 지원, 독립유공자 주거환경 개선 지원 등을 펼치며 창업주의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도 애국지사 후손이다. 하 부회장의 증조부인 일암(逸庵) 하장환 선생은 독립운동가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과 함께 항일 투쟁을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한 애국지사다.

동화약품 초대 사장 민강 선생은 1909년 청년을 중심으로 대동청년당을 결성할 정도로 적극적인 독립운동 활동을 했다.

'까스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은 명실상부한 '민족기업'으로 인정받는다. 동화약품은 초대 사장인 민강 선생을 포함해 독립운동가 3명을 배출한 기업이기도 하다. 5대 사장 윤창식 선생, 윤광열 명예회장까지 독립운동을 했다.

민강 선생은 1919년 회사에 상해임시정부의 국내 비밀연락처인 연통부(聯通府)를 설치해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윤창식 선생은 민족경제 자립을 위해 비밀조직인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를 조직했다. 윤창식 선생의 아들인 윤광렬 회장도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 중대장으로 맹활약했다.

'기업은 나라와 민족의 것이고 국민의 소유'라는 경영원칙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유일한 박사는 1942년 '재미 한인'으로 구성된 '한인국방경비대' 창설을 주도했고 1945년 미군 전략정보처 'OSS(현재 CIA의 전신)'의 '냅코작전'(재미한인들을 훈련시켜 국내에 침투시키는)에 참가하기도 했다.

일제의 금융침탈에 맞서 세워진 금융기업도 있다. 고종은 일본이 조선 자본을 찬탈하기 위해 은행 설립을 난립하자 이에 맞서기 위해 황실 자금으로 '대한천일은행'을 만들었다. 지금의 우리은행이다. 대한천일은행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독립운동 자금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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