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산업은행을 구조조정하라
[데스크 칼럼] 산업은행을 구조조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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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형체는 여러 가지다. 실체를 알 수 없어 누군가에게 공포를 줄 수도 있고 이해 못할 형태로 다가온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을 보면 그 괴물은 우리가 만들었으며 결국 우리가 감내·극복해야 할 몫이다.

한국 경제에서 구조조정 이슈는 늘 괴물과 같은 존재였다. 왜 망가진 기업을 살려두냐고 그 피해는 오히려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없앤다는 비판이 팽배했다.

대마불사의 신화도 IMF 환란으로 깨지는 듯 했지만 그 신화를 오히려 꿋꿋이 지키려고 했던 게 산업은행이다. 더 이상 경쟁력이 없는 곳은 사라지게 하고 새 순이 돋아나게 해야 하는데 산업은행이 인위적으로 불필요 기업들의 생존을 연명해 오히려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아이러니가 있어 왔다.

최근 현대중공업에 매각하기로 한 대우조선해양 건을 두고 뒷말이 많다. 조선산업 경쟁력을 위해서란 게 산업은행의 공식적 입장이지만 두 기업의 합이 1위라는 이유로 경쟁력 회복이 될 지 미덥지 않은 시선도 있다. 산은은 대우조선 지분(55.7%) 전량을 현대중공업에 현물 출자하는 방식으로 매각을 추진 중이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주인이 된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쏟아 부은 돈만 무려 10조원이다. 공적자금 회수는 커녕 조선업이 어려워지면서 그간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급기야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매각을 선언하면서 공적자금 회수보다 조선산업 경쟁력 증대가 우선임을 강조한다.

그간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안간힘을 써온 스탠스와는 사뭇 다르다. 모순이 느껴지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 원칙이 어디 있는지 헷갈린다. 이래서 '밀실' 결정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몸통은 누구일까.

시장 전문가들은 대우조선 매각 효과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합병에 따른 시너지보다는 대우조선이 현대중공업의 하청 업체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점 외에도 대우조선의 영업력이 저하되고 대우조선의 기술력 등에 신뢰를 보낸 해외 발주사들의 이탈 등도 우려한다.

더욱이 독과점 논란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경쟁당국으로부터 담합 논란 소지도 있다. LNG선과 VL탱커는 양사 합산 점유율이 60% 가량 된다. 담합 논란이 나올 개연성은 충분하다.

양측 노조도 합병에 호의적이지 않다. 대우조선 노조는 파업을 선언했다. 당장이 아니어도 향후 효율화 과정에서 구조조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으로 일자리를 불안해 한다. 특히 대우조선 노조는 물론 정성립 사장과 사전 협의도 없이 갑작스레 매각을 진행한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협력사들까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향후 일감이 더 줄까 걱정한다.

이런 판단을 한 산업은행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투자의 마중물을 넣겠다 하면서 최근 사모펀드를 통해 오히려 중소기업을 부도의 극한 상황에 몰게 했다는 논란도 낳고 있다. 과거부터 공공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국책은행의 정체성 혼란을 가져온 예적금 판매 등도 여전하다.

이처럼 산업은행은 실체를 종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제는 타인이 아닌 스스로를 구조조정해야하는 괴물이 돼 버린 느낌이다. 과거 10여년 전에도 산업은행을 놓고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에 대해 논의가 이뤄진 적이 있다. 재정건전성을 해하며 밑바진 독에 물붇기 식으로 공적자금을 훼손해야 하는지, 소매금융 영역의 예적금 업무 등 상업성을 갖고 가야 하는 지 등이다.

당시 유지창 산업은행 총재도 국책은행의 역할론에 대해 내부 논의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실제 정부 발주의 연구 용역도 진행됐다. 시중은행 영역 확장에 따른 국책은행에 대한 정체성 논란 외에도 감사원은 아예 기능 소멸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지금도 변함이 없는 윤리의식 문제는 그 때도 도마 위에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논의들은 쏙 들어가고 과거의 악습이 그대로 남아 미흡한 구조조정과 공적자금의 낭비 등이 지금도 진행형이다. 단지 바뀐 것은 산업은행 수장의 호칭 ‘총재’가 ‘회장’이 된 것이다.

100% 정부 지분 소유의 산업은행이 더 이상 괴물로 진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공공성 회복을 전제로 한 산업은행의 국책은행 역할 개편론이 다시 심도 있게 논의돼야 한다. 이를테면 산업은행의 공적 기능을 수출입은행에 넘기고 상업기능은 없애야 한다. 산업은행이 주장했듯이 경쟁력을 위한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의 ‘합’(合)처럼 말이다.

김무종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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