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전기차가 건널 늪은 아직 넓다
[홍승희 칼럼] 전기차가 건널 늪은 아직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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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만난 형제들 중 차를 새로 샀어야 하는 동생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전기차 문제로 얘기가 번졌다. 마침 정부에서도 전기차 지원책을 들고 나온 시점이어서 새로 바꿀 차를 전기차로 진지하게 고려한다는 동생에게 하이브리드를 갖고 있는 또 다른 동생은 아직 전기차를 사기는 시기상조라는 주장을 폈다.

그 주장의 요지는 밧데리 충전에 발생할 수 있는 현실적 문제들이 해소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아파트 등 집합주택 거주자들에게 전기차는 자칫하면 심각한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환경부는 2022년까지 전기차 급속충전기 1만기를 확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역적 분포가 적절하다는 전제 하에서 그 수준이 충분한지는 비전문가인 필자로서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주유기 숫자보다는 월등히 많아져야 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가 급속충전시설을 대폭 늘리도록 지원하겠다지만 아무래도 지금처럼 기름을 넣는 데 비해 충전시간은 월등히 길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주유기 숫자와 비슷하면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남녀 인구가 비슷하니 소요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무시하고 남녀 화장실을 동수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하다.

아직은 근무시간이 매우 긴 한국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퇴근 후 아침 출근 전까지 집에서 충전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당장 모든 아파트에서 충전 가능하지도 않다는 문제갸 있다. 또 있다 해도 몇백가구 이상인 아파트에 한곳 정도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충전할 경우 비용 산정 기준도 마련되지 않아 자칫 충전 차량이 늘어날 경우 주민들 간에 새로운 분쟁을 낳을 소지도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즈음이라면 특히 그런 분쟁은 심각한 양상으로 번질 수도 있어서 미리 대책이 마련돼야만 한다.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산업은 한발 뒤처졌다. 자동차시장 진출이 늦었던 중국이 정부 주도로 전기차 분야에서는 매우 발 빠른 대처를 함으로써 이 분야에서는 빠르게 한국을 따돌린다는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도 이미 출하량 기준 세계 1위 기업이 중국의 CATL, 3위 기업이 역시 중국 기업인 BYD다.

2위 기업은 일본의 파나소닉, 그 뒤를 한국의 LG화학과 삼성SDS가 따라가고 있다.

물론 아직은 늦지 않았고 앞으로의 잠재력도 큰 시장이니 실망할 단계는 아니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유럽연합이 배기가스 배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서야 겨우 한국 자동차 산업은 전기차에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유럽연합은 2021년까지 자동차 한 대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95g/km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그 한발 늦음의 대가가 결코 적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것이다.

한국이 지금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이라고 큰소리 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터넷 대중화를 선도적으로 이끈 과감한 선제적 투자와 발 빠른 인프라 구축이라는 역사가 있다. 인터넷 초기 도입 당시 과연 한국에서 인터넷 수요가 제대로 일겠느냐는 비관적 전망도 많은 시점에서의 선제적 투자가 가져온 알찬 열매인 것이다.

그보다 더 앞서 있었던 선제적 투자는 아마도 고속도로의 건설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국내에 차량도 많지 않은 현실에서 고속도로가 웬말이냐는 비난도 많았지만 이후 늘어난 물동량으로 그 실효성은 완전히 입증됐고 또한 덩달아 한국 자동차산업을 키우는 밑바탕이 됐다.

한국은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강대국들과 비교하면 기본적으로 경제단위 자체가 작은 나라다. 따라서 늘 한발 앞선 발빠른 시장판단과 그에 따른 다소 모험적일 수도 있는 과감한 선제적 투자가 있어야만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과거의 후발 개도국 시절과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야 할 고비를 앞둔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경쟁 수단으로는 빠른 시장 읽기와 남보다 앞선 시장진출 거기 더해 이제는 소비자의 허를 찌르는 참신하고 창의적인 상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선도하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근 10년간 몸을 한껏 움츠렸던 한국 재계가 이제는 도약하지 않으면 도태될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우린 지금 그런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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