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20대 남성들은 왜?
[홍승희 칼럼] 20대 남성들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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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재인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새로운 이슈는 주된 지지층이었던 20대의 남성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들은 이런 현상을 20대 여성들의 높은 지지율과 대비시켜 젠더갈등, 즉 여성과 남성의 갈등으로 몰아가며 호들갑을 떤다. 과연 그런가.

물론 20대 남성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 유권자들이 정부가 지나치게 여성들 편만 든다는 불편한 심경을 토로하기는 한다. 그 때문에 젊은 남성 유권자들이 스스로 세우고 지켜낸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렸다는 호들갑은 사실인가.

그렇다면 왜 하필 20대들에게서만 이런 현상이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 걸까. 언론의 분석이 사실이라면 이런 집중된 현상을 설명하기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그보다는 젊은이들의 취업률이 빠르게 증가하지 못하고 여전히 취업지옥을 경험하는 현실의 막막함, 이미 생활수준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졌지만 그들이 꿈꿀 수 있는 미래는 암담해 보이기만 한 불안감에 의한 조급함이 정부 불신으로 자라는 것은 아닐까.

그런 조급증은 취업준비생들에게 강력한 경쟁자로 입지를 다져가는 여성들이 타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상 아직도 많은 직장에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저임금에 차별받고 있고 또 출산`육아에 따른 경력단절로 절망하고 사라지지 않는 유리천장이 엄존하는 현실은 당장의 경쟁 출발선에선 보이지 않거나 보고 싶지 않은 심정일 테니까.

어떻든 문제는 우리의 경제가 획기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또 단시일 내에 빠르게 개선되기도 어려운 단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의 고민에도 불구하고 현상타개가 쉽지 않을 터라 정부로서도 상당히 고민스러울 것이다.

일단 한국의 경제는 지금 체질개선의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고갈될 위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고속성장시대의 추억에 젖은 기성세대나 여론주도층들은 당시 누렸던 성장의 과실을 다시 손에 쥘 수 있다는 미망에 사로잡혀 개혁의 고삐를 풀라는 압박만 가하고 있고 정치권은 전진보다 제자리 고수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 전체가 체질개선에 매진해도 이미 잃어버린 10년을 거듭 되읊으며 우리보다 먼저 기업 체질개선을 마치고 달리는 속도를 높이려는 일본과 고속성장 후의 연착륙을 미국과의 군비경쟁을 통해 이루려는 중국 곁에서 우리는 자칫 머뭇거리다가는 다시는 되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협상은 그 어떤 과제보다 더 시급한 사안일 수 있다. 한반도의 안정이 한국의 국제신인도에도 유익하지만 또한 북한의 경제 재건에 우리 기업들의 진출 기회가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 또한 크기 때문이다. 남북간 평화체제 구축이 늦어지면 그럴수록 북한의 광물자원에 대한 중국의 독식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서도 이번 기회는 어떻게든 살려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적 위기는 곧바로 사회적 위기로 이어지고 종종 집단적 광기를 부르기도 한다. 1, 2차 대전 독일 국민의 선택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유럽권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면서 그 사회를 지탱하던 사회적 이성이 상당히 흐려지는 불안한 조짐들이 커지는 것을 보게 된다. 배타적 민족주의, 약자에 대한 폭력성 증가 등은 지금 전 세계에 새로운 어둠으로 자라나고 있다.

당장 눈앞의 어려움이 크면 개개인은 그로 인한 불안에 이성이 마비되기 쉽고 이는 사회적 안전장치로서의 집단지성이 약화되며 사회적 광기를 키우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랍권 바깥 사람들에게 무슬림 테러집단에 쏠리는 그들 사회 젊은이들의 광기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또한 그들 개개인들이 어떤 이유로든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두려움에 먹혔다고 본다면 해석 가능한 행동 양태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많은 젊은이들이 답답한 현실, 막막한 미래를 장벽처럼 맞닥뜨리고도 아직 그 정도의 위험한 광기를 보이지 않는 것이 어쩌면 우리 사회가 누리고 있는 축복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기력증에 빠져 미래를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사회가 더 염려하고 걱정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다.

자본의 탐욕이 그런 젊은이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문어 제 다리 뜯어먹는 저주에 걸리도록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때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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