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과 핵폐기물 ③-끝] 법 사각지대에 놓인 사용후핵연료
[미래한국과 핵폐기물 ③-끝] 법 사각지대에 놓인 사용후핵연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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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원전 건식저장, '관련시설'? '관계시설'? 
"용어와 제도부터 명확하게 개정해야"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사진=김혜경 기자)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사진=김혜경 기자)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고선량의 방사선을 내뿜는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 운영 국가들이 풀어야할 공통의 숙제다. 연탄을 태우면 연탄재가 남듯이 발전에 사용하고 남은 우라늄 연료 다발이 사용후핵연료다. 연료로서 수명을 다한 연탄재는 쓰레기로 분류된다. 원자로에서 인출돼 습식 저장고에 들어간 사용후핵연료도 당연히 방사성폐기물이 아닐까. 흔히 연소된 우라늄 다발을 고준위방폐물로 지칭하지만 각 원전 내 쌓여있는 폐연료봉들은 '아직은' 폐기물이 아니다. 원자력진흥위원회의 허가가 있어야만 사용후핵연료는 폐기물의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원자력안전법 등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행법상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법적 개념이 모호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월성 건식저장시설을 둘러싼 관계시설·관련시설 논란, 임시저장·중간저장 등의 개념부터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론화 재검토위원회가 발족돼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될 경우 제도적 보완 문제도 수면 위로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 "현행법상 사용후핵연료는 방폐물로 포섭 불가"

사용후핵연료가 법적으로 고준위방폐물이 되려면 원자력안전법 제2조 18호와 제35조 4항에 의거, 산업통상자원부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원자력안전위원회 등과 협의해 원자력진흥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폐기하기로 결정'해야 한다. 진흥위의 허가가 없다면 엄밀한 의미에서의 폐기물은 아닌 셈이다. 사용 후 남은 핵연료라는 뜻에는 처분해야할 쓰레기가 아닌 파이로프로세싱 등 재처리를 통한 자원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업자가 사용후핵연료를 부채가 아닌 것으로 분류해 자산을 부풀릴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원안법 제2조 18호에는 방사성폐기물이란 방사성물질 또는 그에 따라 오염된 물질로서 폐기물의 대상이 되는 물질로 정의하고 있다. 중·저준위방폐물의 경우 진흥위의 심의 없이 폐기물로 분류되지만 사용후핵연료는 제35조 4항에 따라 폐기하기로 결정해야만 18호에서 언급하는 방폐물이 되는 셈이다. 

또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제2조 4호에 명시된 '처리'란 '방사성폐기물의 저장·처분·재활용 등을 위해 방사성폐기물을 물리적·화학적 방법으로 다루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원안법 제2조 14호의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제외된다. 사용후핵연료의 개념을 대략 파악할 수 있는 곳은 원안법 시행령 제2조 10호다. 해당 규정에 따르면 원자로의 연료로 사용된 핵연료물질이나 그 밖의 방법으로 핵분열시킨 핵연료물질을 지칭한다. 

전문가들은 원안법 2조에 사용후핵연료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정의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처분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사용후핵연료가 방폐물로 포섭되지 않아 안전한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김종천 한국법제연구원 에너지법제연구실장은 "현재 원안법상 사용후핵연료를 고준위방폐물로 명명할 수 있는지는 불명확하기 때문에 특별법 등을 통해 명확한 개념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면서 "향후 원전 해체폐기물 가운데 고준위에 포함되는 일부 폐기물이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진행된 고준위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 회의에서도 사용후핵연료 관련 용어의 통일 필요성을 인지한 바 있다. 10차 회의에 참여한 주민 일부는 "법적으로 사용후핵연료가 폐기물도 아닌데 처분을 논의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반응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공론화 과정에서 원안위 등 관련 기관의 공감대 형성 여부가 중요할 것으로 준비단은 판단했다. 

한편 현재는 사용후핵연료가 진흥위의 심의를 거쳐야만 법적 방폐물 지위를 부여받지만 개정 이전의 제도는 좀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연소된 우라늄을 꺼내 수조에 넣으면 그 자체가 폐기물이었던 내용이 2012~2013년께 진흥위 심의·의결 주도로 변경된 것.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염두에 두고 개정이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말도 일각에서 나온다. 

◇ 월성원전 건식저장 둘러싼 법적 해석 논란

원자로에서 연소된 우라늄은 격납건물 내 수조로 옮겨서 장기간 동안 붕괴열을 식히게 된다. 다만 경주 월성원전에는 다른 지역 발전소에는 없는 사일로, 맥스터 등 건식저장시설이 있다. 농축우라늄을 연로로 쓰는 경수로와는 달리 월성 원전은 천연우라늄을 사용하는 중수로다. 사용후핵연료가 상대적으로 방사능 준위가 낮기 때문에 격납건물 내 수조에 습식 형태로 일정 기간 보관한 후 육상의 건식저장시설로 옮겨진다. 

사일로는 원통형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2010년 4월에 포화됐고, 이후부터는 건물 모양의 맥스터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최근까지 경주지역은 맥스터 추가 건설을 두고 지역 주민들과 사업자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문제는 건식시설이 임시저장 혹은 중간저장의 형태인지, 또 관련시설인지 관계시설인지 현행법상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법적 해석 논란이 발생하고 있는 상태다. 

중·저준위방폐물 처분 시설을 유치한 지역에는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방폐물 처분 시설과 관련시설로 정의된 구조물을 건설할 수 없다.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18조에 따라 경주 지역에는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로 정의된 구조물 건설 자체가 금지된다. 그렇다면 육상에 위치한 월성 건식저장시설은 불법 시설일까. 문제는 ‘사용후핵연료의 관련 시설’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는 것이다. 건식저장이 제도상 관련시설로 정의될 경우 월성의 건식시설은 법적으로 위배된다. 

사업자인 한수원 등은 건식저장이 단지 임시저장의 연장이기 때문에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이 아닌 원안법상 관계시설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원안법 제2조 10호에 따르면 관계시설이란 '원자로의 안전에 관계되는 시설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원안법 시행령 제9조에는 관계시설이란 '핵연료물질의 취급·저장시설 혹은 발전소 안에 위치한 방사성폐기물 처리·배출·저장실 등을 말한다'고 나와있다.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사일로와 맥스터는 관계 시설이며, 습식 저장처럼 발전소 내 구조물이기 때문에 중간 저장이 아닌 임시저장이라는 것이다. 

시민·환경단체와 경주 지역 주민들은 이 같은 논리가 말장난식 해석이라는 주장이다. 기술적으로 사일로, 맥스터는 중간저장시설과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임시저장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점과 중·저준위 특별법 제18조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시설이 유치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당초 정부가 약속한 내용과 충돌하기 때문에 지역민들은 빠른 시일 내 건식시설을 옮겨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중·저준위 특별법과 원안법의 상충으로 향후 발전소 내 건식저장시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김 실장은 "현행 제도상으로는 사일로나 맥스터가 중간저장에 해당되는지 모호하지만 운영 형식으로만 본다면 중간저장시설"이라면서 "향후 중간저장시설을 만들 경우 비슷한 형태로 건설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관계·관련 시설에 대한 개념을 법 개정을 통해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용후핵연료 관리 주체도 기존 원자력환경공단에 맡길 것인지 혹은 기술공사를 별도 설립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한데 새로운 기관과 담당 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면서 "건식시설의 경우 현재는 소내에 있지만 향후 중간저장시설로 지정돼 다른 기관으로 업무가 넘어가면 원전 부지 제한구역과의 충돌 문제도 발생한다. 이 같은 내용도 법적 쟁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지난 2016년 공론화위는 임시저장고, 중간시설 건설에 대한 별도 논의도 없이 당연히 짓는다는 전제로 공론화가 진행됐고 일방적인 최종안이 도출됐다"면서 "현재도 임시저장 등 저장시설 증설 여부는 중요한 공론화 의제이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참여 범위를 어디까지 정할 것인지부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원전환경과 관계자는 "중간저장, 최종처분 등은 공론화의 가장 큰 줄기이므로 하위 쟁점으로 어떤 것이 설정되느냐가 논의 대상이 될 것"이라면서 "향후 공론화 추진기구에서 어느 선까지 공론화를 진행할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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