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통령과 만나자던 24살 비정규직 청년의 절규
[기자수첩] 대통령과 만나자던 24살 비정규직 청년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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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촛불을 등에 업고 탄생한 정권이어서 그랬다. 무엇이든 박근혜 정부보다 나은 정책을 내놔야 했고, 국민의 지지를 계속 얻어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찾아가는 대통령 1편'이라는 꽤 그럴싸한 타이틀을 걸고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주창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5월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겼다.

의지만 확고했다면 대통령으로서 당장 할 수 있었다. 공공부문의 사용자는 정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파리 목숨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슴 속 희망을 키웠다. 그렇게 일 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다. 정규직은 오를 수 없는 사다리였을 뿐이다.

2년 전 비정규직 노동자가 홀로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도중 열차에 치여 사망하자 정치권은 여야 모두 비정규직 처우 개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토해내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 여러 법안을 쏟아냈지만 국회 문턱을 넘은 건 없다. 정치인들에게 청년 목숨은 표심을 잡는 도구에 불과했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꽃다운 청춘을 채 펴보지도 못하고 숨진 태안발전소 24살 비정규직 청년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비정규직의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외쳐도 돌아오지 않은 메아리처럼 이 절규는 그가 남긴 유일한 유서가 됐다.

청년이 사망한 날 라디오 광고에선 안전보건공단의 '조심 조심 코리아' 공익 광고가 흘러나왔다. 이 광고는 위험기계에 안전장치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안전보건공단은 8년 전 '조심조심 코리아' 안전문화 캠페인 슬로건 선포식 열고 범국민 캠페인을 펼쳤다. 당시 노민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안전 앞에 겸손하는 문화가 조성되기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2012년 경남 창원 두산걸설 작업장 추락사, 2015년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질소 누출 3명 사망, 같은 해 한화케미칼 울산 공장 폐수처리장 저장조 폭발 6명 사망, 2016년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5명 사망 등 위험의 외주화로 비정규직들은 죽어 나갔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수수방관만 했고 단발적인 재발 방지 공수표만 남발했다.

원청은 '우리 직원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고 일거리를 받아야 하는 하청업체는 원청업체 눈치에 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악순환은 뫼비우스 띠처럼 계속됐다. 이번 사고로 여당은 비정규직 노동자 희생을 막기 위한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국회처리를 촉구했고 노동부는 특별감독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의 생명·안전 분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에도 정규직 전환 실적은 미미하다. 물론 비정규의 정규화에 사회적 합의와 비용 등 선행돼야 하는 면도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지키지도 못하는 정책 남발은 간접살인과 다를 바 없다.

또다시 구의역 사고 때처럼 정부·여당은 보여주기식 대처에만 힘을 쏟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2년 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재발 방지의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면 이런 참사는 막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국민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정책을 지향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비정규직과 소통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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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 2018-12-14 15:08:23
소통의 필요성 정말 절감합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일하기 좋은 대한민국이 되길 바랍니다!!

최호성 2018-12-14 15:08:14
윤은식 기자님
비정규직을 국민들을 생각하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이기동 2018-12-14 15:05:38
비정규직과 소통할 생각이 있으신지 정말 궁금하던 참이였습니다.
북한만 챙기지 마시고 우리나라 비정규직들도 챙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