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법적 양심과 법 감정
[홍승희 칼럼] 법적 양심과 법 감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0여 년 전 당시 중학생이었던 필자는 그 무렵 있었던 사건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산골마을 어느 부인이 병든 남편을 살리겠답시고 자신의 자식을 삶아 먹였다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검찰이 그 부인의 남편을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을 감안해 불기소처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 더해 어렸던 필자를 더 충격에 빠트린 것은 그런 검찰의 결정이 말도 안 된다는 내 비판에 어른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검찰의 결정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사회의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일반적 인식이 검찰의 그런 처분을 낳은 셈이고 또 그런 처분을 사회가 용인했다는 것이 어린 중학생에게는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중첩된 충격은 이후 어른들에 대한 불신, 부모들의 자식사랑에 대한 회의 등 다양한 부정적 정서를 필자에게 선물했다. 그래서 필자 스스로 자식을 낳고 기르기 전까지는 모성애니 부성애니 하는 것들을 부정하기도 했었다.

하기는 요즘 사건사고들을 보면 그때의 감정이 치우치긴 했을지 몰라도 아예 근거없는 불신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가족이 가족을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이용해 강간·살인을 저지르는 등 흉악한 범죄들이 자주 벌어지는 세태가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인간 본성이라는 것에 회의를 갖게 하기에는 충분하니 말이다.

어쨌든 법이 어떻게 해석되느냐는 문제에 불변하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사법기관들이나 기성세대들이 늘 염두에 둬야 하는 문제는 아닐까 싶다. 물론 입법단계에 법도 마찬가지이지만.

흔히 언론에서 특정 사건의 판결을 두고 국민적 '법 감정'과 어긋난다는 표현들을 종종 쓴다. 이게 시대가 변하고 사회환경이 변하면서 국민대중이 갖게 되는 가치관의 변화가 입법과정에서나 법적 판단에 있어서나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국민적 정서는 어떻든 법률 위반은 아니라는 자신감이 심판대에 선 사회지도층들 입에서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한적 없다는 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법과 윤리의 불일치가 심할수록 그런 변명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법농단 사건에서도 관련자들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단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런 확신을 갖고 피해자 의식을 가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윤리보다 법적 테두리를 더 우선시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법률 그 자체보다 그 법의 해석이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물론 해석의 비중이 너무 커지면 그 또한 법의 자의적 운용이 늘어나며 법치주의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어서 역시 경계할 대목이기는 하다. 과거 독재정부들이 흔히 해오던 일이 탄압을 위해 새로운 악법을 만들어내는 것 못지않게 기존 법조항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럴 때 우리는 법 정신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법률 전문가들이 ‘조항’에 얽매일 때 대중적 정서는 사회적 정의로서의 법의 정신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 정서가 법 감정이라는 비전문적 용어로 등장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법농단 사태를 보면서 관련자들이 무슨 변명을 늘어놓든 집권자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리고 또 그런 의견을 개진하는 판사들에게 사법부 수장이 거침없이 인사 불이익을 줌으로써 사법권의 독립을 스스로 포기한 행위를 대중은 납득하고 용인하기 어렵다. 그보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그처럼 사법권의 독립을 스스로 포기하도록 사법부 전체에 종용했던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법부 내부에서나 정치권 일각에서 내세우는 사법부의 존엄과 위신이다. 이미 사법부의 존엄을 해친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어떻게 사법부의 존엄을 지키는 일인지 법에 무지한 대중의 한사람으로서 필자 또한 이해하기 참으로 어렵다.

필자도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이어서 전해듣기만 한 일이지만 예전에 수십명의 미혼여성들로부터 지금은 사라진 법이지만 혼인빙자간음죄로 고발을 당한 희대의 바람둥이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 권모 판사가 내린 판결이 또한 인구에 회자되었다고 들었다. 그 때 그 판사 왈 “스스로 보호하지 않는 정조를 국가가 지켜줄 책임은 없다”는 것으로 그 바람둥이는 무죄방면됐다고 들었다. 그 판결을 사법농단 관련자들을 변호하는 이들에게 되돌려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