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민노총의 선택
[홍승희 칼럼] 민노총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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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가 첫발을 뗐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빠졌다. 아직은 불참 확정이라기보다 유보 혹은 유예상태라고 하니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첫 시작부터 모양새가 좀 빠진다.

과거 참여정부에서 시작했던 노사정위원회와 흔히 비교되는 경사노위이지만 일단 정부의 간여보다는 사용자단체와 노동자단체의 직접적 대화와 타협에 더 무게를 둔 구조다. 그런데 노동자단체의 양대 축 중 하나인 민주노총이 빠지니 일단 김이 좀 빠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이 아직 참여를 유보한 이유는 당면한 투쟁과제 때문이라고 한다. 탄력근로제가 문제라는 것이다.

양비론을 탐탁찮아 하는 필자이지만 솔직히 이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양비론이 아니라 양시론으로 맞고 싶다. 정부의 고민이나 재계의 요구도 현실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로서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민주노총의 주장 역시 이해할 만하기 때문이다.

세상 어느 정책이며 법이 완전할 수 있을까. 분명 좋은 의도로 만든 법도 악용하려 드는 자들 손에선 언제든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니 우려가 현실이 되는 일이 없다’ ‘없을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답할 배짱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걱정과 우려는 무조건 못 믿겠다는 전제 위에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대화와 타협을 바라는 이들에겐 실망스럽다. 그동안의 해온 바가 있으니 사용자 집단을 향한 불신이 근거 없는 소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그 불신의 연장선상에서만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다.

그런 불신의 연장선상에 선 대표적인 이들이 지금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남북대화를 불안하게 보고 걱정하고 시위하는 이들이다. 남북대화 역시 과거의 일을 일단 역사로 돌리고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 보려는 노력이지만 우리 사회 한쪽에서는 분명 북한을 어떻게 믿느냐는 불신이 사려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불신을 안고 분단과 전쟁 위협을 끌어안은 채 미래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걸음만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우리가 제자리걸음을 하노라면 주변국들은 휙휙 우리를 제치며 앞으로 달려가는 모양만 보고 있을 뿐인데.

마찬가지다. 물론 같지 않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과거의 일들에 사로잡혀 앞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싶다.

사용자와 노동자는 분명 현실적으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사용자들은 여전히 내가 너희를 먹여 살린다는 지배자 의식을 갖고 있고 법의 운용에서는 돈 있는 자들이 늘 우위에 서기 마련이니까.

힘 있는 사용자 쪽에서 함께기업을 끌고 간다는 의식을 갖지 않는 한 노동자 입장에서는 그런 사용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불신을 갖는 게 당연하다. 여전히 끊이지 않는 갑질이슈들을 보면 더더욱 불신에 공감하게도 된다.

그렇다면 사용자 쪽에서는 그런 불신이 없을까. 우월적 지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용자와 짓밟힌다는 피해자 의식을 갖고 있는 노동자의 대화가 평등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사회가 그 중재자로 나서고 정부가 그 역할을 하고 싶다는 데 대화의 장에 나서는 것이 좀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가는 길이 아닐까.

민주정부가 들어섰다고 한순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조급하게 기대하고 사안마다 실망을 표하기에는 민주정부의 입지가 그리 탄탄하지 못하다.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내디뎌야 역사의 후퇴를 막을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 민주노총의 힘의 바탕이 되는 2차 산업의 현장들은 이제 서서히 쇠퇴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산업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우리사회는 그런 변화를 늦춤으로써 지금 심각한 위험을 맞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운 상태다.

사용자나 노동자나 그 기반은 기업이다. 그 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면 그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사용자나 노동자나 각자도생이다. 그럴 때 누가 더 위험한가. 당연히 노동자다.

그러니 노동자들도 일자리의 미래 못지않게 미래의 일자리에 대한 고민을 전 사회와 더불어 나눠야 한다. 민주노총이 더 고민해야 하는 문제는 이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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