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 4호기 '부실시공' 인정한 한수원···의혹은 '산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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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업계 '니탓 내탓' 공방···공극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
가동 전 콘크리트 공극 현상 이미 인지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 원전 (사진=연합뉴스)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 원전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콘크리트 격납건물에서 연이은 공극(빈틈) 발견으로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한빛 원자력발전소 4호기. 1987년 사업에 착수해 1989년 12월 건설 허가를 취득한 한빛 4호기는 태생부터 양면성이 공존했다.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신규 건설된 발전소라는 대외적인 위치와 미국 팔로버디 원전 CE80 모델을 복제함으로써 한국 표준 원전의 시초가 됐다는 국내 상황이 맞물리면서 탄생했다.

1994년 과학기술처 국정감사에서는 한빛 원전 안전성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다. 600건의 설계변경과 3000건 이상의 하자발생 여부에 대한 질타와 함께 부실시공 문제가 불거졌다. 20년이 훨씬 지난 올해도 한빛 4호기는 국감장에 등판했다. 국감은 마무리됐지만 공극 발생 원인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관련 기관과 업체들의 책임 떠넘기기 공방은 향후 정확한 원인 규명에 있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국감서 책임 떠넘긴 한국전력기술·현대건설

지난달 12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 대한 국감에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과거 부실 시공된 부분이 있었다"면서 "작업 관리·감독 면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당시 국감장에서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매설판 보강재' 설계 변경 관련 한국전력기술의 승인 결과 자료를 공개했다. 매설판 보강재는 격납건물 콘크리트 내부에 수평으로 설치된 L자 모양의 판으로, 격납건물 철판(라이너플레이트·CLP) 뒤틀림 방지 용도로 쓰인다. 

발주처인 한국전력(현재는 한수원)은 당초 계획과 달리 매설판 보강재를 제거하지 않고 타설하겠다고 요청했고 전력기술은 이를 하루 만에 승인했다는 것. 1800개의 보강재를 그대로 둔 채 콘크리트를 타설함으로써 공극이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이배수 전력기술 사장은 "각각 기관들은 설계 변경에 대한 의견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반면 박동욱 현대건설 사장은 "설계에 따라 철저히 시공했다"면서 변경 전 설계 내용은 모른다고 언급했다. 

설계 혹은 시공 문제인지 둘 다 문제인지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한수원 측은 "한빛 3·4호기만 이 같은 타설 방식을 적용했기 때문에 공극 발생 원인으로 추정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가능한 8cm 크기를 넘어서 30cm 이상의 공극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봤을 때 매설판 보강재가 공극 발생의 핵심 원인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매설판 보강재를 제거하지 않은 설계가 공극 발생과 어느 정도 관련은 있겠지만 결정적인 요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면서 "보강재가 있으면 콘크리트를 더 잘게 다지거나 필요한 공기(공사기간)를 더 요구했어야 한다. 보강재 때문에 부실하게 콘크리트가 타설됐다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원전업계 종사자는 매설판 보강재가 핵심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하면서도 또 다른 결함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관계자는 "보강재가 포함된 상태로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 경우는 빈번했다"면서 "라이너플레이트(CLP)를 조립하는 과정에서 용접을 하면 잔류응력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 상태에서 크레인으로 CLP를 들면 휘어진다. 수직도가 맞지 않은 상태에서 첫 번째 단에 또 다른 단을 올려 용접을 하면 응력이 늘어나고, 콘크리트 타설 후 공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감 종료 후 설계사와 시공사의 입장을 다시 들어봤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원전 건설은 감독과 인허가 절차 등이 까다롭다는 것을 강조하며 시방서와 설계대로 시공했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가동 중 발생한 문제인지 설계 문제인지 정확한 원인 관련해서는 한수원 등이 파악 중이니 결과가 나오는 대로 협조할 것"이라면서 "한수원 측의 '부실 시공 인정' 언급은 발주처가 공정 관리 책임과 과실을 인정하겠다는 뜻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김성수 의원실
자료=김성수 의원실

국감 당시 의원실에 제출된 현대건설의 서면 답변에는 보강재를 언급하면서도 '작업자가 꼼꼼히 타설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여러 원인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라면서 "만약 설계 결함이 아니라면 시공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책임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언급한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설계사인 전력기술은 정상적인 콘크리트 타설이 이뤄진다는 전제 하에 설계 변경을 승인했다는 입장이다. 전력기술 관계자는 "콘크리트 타설만 제대로 된다면 매설판 보강재 유무는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면서 "시공 문제인지 다른 요인인지 자체 판단을 내리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사 내용마다 다르겠지만 설계 변경과 관련된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시공사와 설계사, 발주처 간 서로 합의가 이뤄져야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한빛 3·4호기를 제외한 다른 원전 격납건물에도 보강재 관련 설계 변경이 됐냐는 질문에는 답변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발주처는 현재 시공사에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수원 관계자는 "현대건설에 도의적 책임을 포함한 어떤 대책을 제시할지에 대한 답변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 한전 사장은 UAE 격납건물 공극을 어떻게 알았을까
 

지난달 16일 산업통상자원벤처기업위원회 국감에 출석한 김종갑 한전 사장은 "문제가 되고 있는 격납건물 콘크리트 공극과 관련해 UAE 수출원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견돼 공극을 다시 메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전에 따르면 UAE 바라카 원전 1·2·3·4호기 중 3호기에서 공극이 발견됐으며 현재 보수 공사를 완료한 상태다. 수출 원전은 국내 신고리 3·4·5·6호기와 동일한 APR1400 모델이다. 

현재 한빛 4호기의 공극들은 타격법 등을 통해 빈 곳을 찾아낸 후 내부 철판을 뜯어내고 나서야 발견되고 있다. 그렇다면 김 사장이 보고받은 바라카 원전 공극은 어떻게 확인한 것일까. 한 소장은 "철판 팽창 혹은 구멍 때문에 해당 부분을 뜯어내 발견한 것이 아닌 콘크리트 타설 후에 바로 확인이 가능했다는 것"이라면서 "예를 들면 1m 공간에 콘크리트를 채워 넣고 하루 동안 굳는 과정을 거친 후 살펴보니 빈 곳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메웠다는 의미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UAE의 경우 검사 단계에서 발견돼 보강을 했을 것"이라면서 "공인검사관들이 까다롭게 조사한 본 영향도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20년 전 한빛 원전 건설 당시에는 공극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을까. 원자력안전기술원(킨스)이 시공 마지막 단계에서 작성한 '한빛 3·4호기 사용 전 검사보고서'에는 원자로 격납시설 콘크리트 관련 지적 사항만 10건이 넘는다. 앞서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해당 문서를 킨스로부터 입수해 공개한 바 있다. 가동 전부터 이미 문제를 인지한 셈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3·4호기 격납건물에서 공통으로 지적된 내용은 △기초 슬래브(콘크리트 구조물) 타설방법에 따른 온도영향 평가 미실시 △기초 슬래브 하루 콘크리트 균열 조절용 철근 미배치 △콘크리트 재료 특성시험 미실시 △벽체 연결철근의 부적절한 배치 △포스트텐션닝 계통 텐돈 덕트 정착 상태 불량 등이다. 

'공극'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된 부분은 3호기의 경우 '격납건물 라이너 플레이트 후면 콘크리트 공극(void)' 지적 사항에서 '격납건물 라이너플레이트에 대한 점검결과 기기 출입구 또는 관통부 주변에 일정규모 이상의 콘크리트 공극으로 추정되는 위치가 다수 확인됐다'고 기재돼있다. 앞서 4호기의 기기출입구 좌측 하단부 2곳에서도 공극이 발견된 바 있다.

4호기는 '강재의 간격' 지적 사항에서 '격납건물 벽체 철근 배치 중 관통부 주변 등에 밀집돼 (중략) 현 상태에서의 시공 시 공극 현상 등 문제가 발생해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서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이라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3·4호기 격납건물 외 기타 원자로 안전 시설의 콘크리트에도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핵연료 건물 배관 콘크리트 타설 시간이 실제 작업 시간보다 기록 상 20~40분 당겨져 기재되거나 다짐방법의 미 준수 등이 확인됐음에도 발주처(한전)의 품질 점검 결과에는 만족된 것으로 기술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문제들은 시정 조치로 종결된 상태다. 그렇다면 20여 년 전 지적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공극들이 왜 다시 발견되는 것일까. 한빛 4호기 CLP 1~8단에 이어 9~15단 확대 점검과 함께 3호기도 본격 점검에 들어갈 경우 현재 확인된 것보다 심각한 상태의 공극이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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