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정위가 모르는 기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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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주진희 기자] "주 기자님은 늘 현대중공업 관련해서만 기사를 쓰시고, 취재를 하시는 건가요? 그쪽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건지 저로선 납득이 안 가서요."

이는 공정거래위원회 제조하도급개선과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의 발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점 및 불공정 거래에 관한 사안을 심의 의결하기 위해 설립된 중앙행정기관이자, 준사법기관이다. 이 기관에 속한 제조하도급개선과는 제조 분야에 관련해 정보를 수집하고 노사관계를 개선키 위한 업무를 하는 부서다. 

이러한 중대한 역할을 하는 기관 담당자의 이 같은 발언은 부당노동행위로 피해 받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알리려는 기자의 귀를 의심케 만들었다.

꽤 오래 전부터 논란이 일었던 불공정거래, 단가 후려치기, 기술탈취 등 하청업체들의 숨통을 죄는 대기업의 횡포는 이미 '관행'이라 칭하며 당연한 것이 돼버렸다. 이른바 '갑질' 사태는 중소기업에게는 생존과 직결된다. 이런 불공정 관행을 감시하고 바로잡는 곳이 공정위임에도 담당자는 오히려 현대중공업을 두둔하는 듯한 말을 했다. 

지난 10월 현대중공업이 하도급업체에게 불공정 거래 등을 지시한 혐의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피해를 입은 기업들은 불응하면 더 큰 피해를 받는 현실이 두려워 매 순간 예스맨이 됐고, 울며 겨자 먹기로 대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몇몇 하청업체들은 억울함과 답답함을 어떻게든 풀기 위해 1인 시위를 하거나 경찰서에 찾아가 고소절차를 밟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원청은 무시했고 안일한 태도를 취하며 하청업체들을 더욱 옥죄기 시작했다.

이 같은 혐의로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은 지난 15일 열렸던 정무위원회 국감에 증인신분으로 출석했다. 이날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현대중공업이 국감 시기에 맞춰 '블랙매직 프로그램'을 이용해 지시했던 모든 사항들을 삭제했다는 협력업체 직원들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그러나 질의가 시작됐을 당시 어떤 의원도 갑질 사태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국정감사의 의미가 불분명해지는 순간이었고, 목적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공정위 관계자의 발언은 경찰에게 범죄행위에 대해 왜 수사하느냐, 판사에게 법을 왜 공부하느냐, 검사에게 잘못된 범죄에 대해 왜 조사하느냐와 같은 말이다. 

우리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21세기에 머물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 만들어낸 경제발전 때문이 아니다. 정당한 인권대우와 복지, 평등을 위해 끝없이 다치고, 아파하며 외쳤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덕분이다. 누군가는 외쳐야했고, 끝나지 않는 이 악순환을 알려야만 했다. 부당한 현실에 처해있는 그들의 소리를 듣고 전하며 늘 사명감을 가지고 움직이는 일. 그것이 바로 언론의 역할이며, 그가 바로 저널리스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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