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유치원 소동과 원장의 자격
[홍승희 칼럼] 유치원 소동과 원장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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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건의 주범 중 하나인 최순실씨가 유치원장이었다는 사실이 처음 보도됐을 때는 다소 의아하긴 했지만 언제 자격증을 땄나보다 하고 무심히 넘겼었다. 그런데 사립유치원 비리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들어보니 유치원장의 자격이라는 것이 다소 황당했다.

유치원 할 만한 건물만 갖고 있으면 굳이 유아교육 전공자가 아니어도, 또 별다른 경력이 없어도 단기 연수를 거쳐 원장을 할 수 있다는 소릴 들었다. 원감은 경력이 필요해도 원장은 굳이 그런 경력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어린이집 원장은 오히려 경력이 요구된다는 데 왜 유치원만 유독 예외가 인정된 것인지 의아하다.

별다른 자격조건 없이 재력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유치원장을 할 수 있다 보니 이들이 교육이 아니라 사업 목적으로 유치원장이 되고 사립유치원은 '사유재산'이니 그 재산보전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보니 요즘 연일 쏟아지는 사립유치원장들의 비리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엄청나다. 비리유치원 명단을 공개한다, 어린이집도 비리조사를 한다는 등 정부의 움직임도 바빠졌지만 그동안 어쩌다 교육부가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만큼은 '을'의 위치로 전락해버린 모양새다.

정부 지원은 냉큼 받아 챙기면서 사유재산권 보호를 요구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에도 그동안은 속수무책이었던 이유가 뭘까. 유아교육이 이제까지는 사회적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이유는 정규교육 과정이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해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긴 하다. 쥐꼬리만한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들도 관청의 회계감사를 받는데 사립유치원들만 유독 감시 밖에 있었다는 것이.

사립 교육기관이 유치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건만 유독 사립유치원에 대해서만 교육부가 그간 끌려 다닌 모양새여서 더욱 의구심이 든다. 사립 중고등학교, 사립대학교들 중에도 물론 재단들이 여러 비리와 횡포로 말썽을 일으키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하지만 지금 사립유치원장들이 보여주는 식의 막무가내까지는 아니다.

지금처럼 사립유치원장들이 큰소리를 치고 정부를 겁박하는 이유는 유아교육 전담기관 중 사립의 비중이 너무 커서다. 교육의 공적 기능을 외면하고 사유재산이라는 인식만으로 마구잡이식 운영을 할 수 있게 만든 책임은 역대 정권에서 누적되어 온 것이다.

유치원의 국공립 비중을 높이기 위한 시도가 과거에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사립유치원들은 똘똘 뭉쳐 아이들을 인질삼아 부모들을 불안하게 하며 정부를 겁박해 무산시켜 왔다. 그때마다 정부가 한발 물러선 경험은 사립유치원들을 더욱 오만하게 만들었다.

과거와 달리 이제 유치원이든 어린이집이든 취학전 유아교육단계는 거의 정규 교육 과정화 하고 있다. 게다가 여성취업률의 증가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도 조기교육기관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따라서 유치원 교육을 더 이상 사립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는 유아교육의 기본은 국공립으로 삼고 일부의 사립유치원들이 함께 하는 수준으로 공교육화한다는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최근 소동을 겪으면서 정부와 여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유치원의 국공립 비중을 2022년까지 40%대로 늘려나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젊은 부모들은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불만을 터트린다. 보육지원사업의 중심을 공교육화에 두고 좀 더 시간을 당길 방안이 마련돼야 지금의 불안한 상황이 잦아들 수 있을 듯하다.

교육시설 문제는 공동화 지역 초등학교 교실의 전용, 턱없이 커져가는 지자체 각종 건물 활용 등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싶다. 또 다른 사립유치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내 탁아소를 운용하는 대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그 내부에 유아교육시설 지원사업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립유치원이 아예 부정될 필요는 물론 없다. 공교육이 가지는 경직성을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교육방법들이 실험되고 실천될 수 있는 장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골간이 돼서는 곤란하다.

유아교육을 공교육의 출발점으로 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마침 사립유치원들의 횡포를 목격한 시민사회의 공감도 확보된 지금이야말로 인식 전환의 적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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