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갑질 上] '표준품셈' 공개 꺼리는 '깜깜이' 하도급대금
[현대重 갑질 上] '표준품셈' 공개 꺼리는 '깜깜이' 하도급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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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문서 제출 명령에도 영업비밀 이유로 비공개"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서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는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인 경부산업이 전선 설치 작업을 했던 물량과 지급받은 금액이 표기돼있다. 해당 계약서를 토대로 추 의원이 단가를 계산해보니 미터당 최소 1330원에서 최고 360만원까지 2700배나 차이가 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김혜경 기자)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서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는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인 경부산업이 전선 설치 작업을 했던 물량과 지급받은 금액이 표기돼있다. 해당 계약서를 토대로 추 의원이 단가를 계산해보니 미터당 최소 1330원에서 최고 360만원까지 2700배나 차이가 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김혜경 기자)

[서울파이낸스 김혜경·주진희 기자] 수년간 이어진 현대중공업의 하도급 갑질 의혹을 두고 경쟁당국의 고강도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직권조사에 착수한 이후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전수조사' 진행 여부를 밝힘으로써 공정위의 칼끝이 현대중공업을 겨누고 있다.

조선 3사의 하청업체들은 지속적으로 피해 구제를 호소해왔다. 특히 현대중공업의 경우 '표준품셈' 등 기성금(공사대금) 책정 기준을 전혀 공개하지 않아 불공정거래의 전형적인 사례로 지적됐다. 원청이 자의적으로 대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대표적인 갑질 행위인 '단가 후려치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 현대중공업은 영업 비밀을 이유로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표준품셈이란 공사대금 책정에 기준이 되는 가격이다. 노무·자재량 등 각 부문 공사에서의 단위당 자원투입량을 뜻한다. 하청은 원청이 제공한 일감을 수행한 뒤 계약서상 명시된 날짜에 대금을 지급받는다. 통상 공사대금은 표준품셈표상 지수에 의해 산출된 공수(예상 공수)에 임률 단가를 곱해 산정하게 된다. 공수란 특정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원과 시간을 계산해 도출한 규모다. 임률 단가는 매년 단체협약을 통해 정해지므로 고정값이지만 예상공수는 변동한다. 예상공수는 개별계약에서 '물량'으로 표시되기도 한다.

표준품셈을 알아야 산출 가능하기 때문에 원청은 하청에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대금 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대금 결정 근거 자료를 공개하지 않거나 원대금에 비해 낮은 예산을 책정해 대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실제 투입공수와 달리 예산공수를 원청이 일방적으로 결정함으로써 하청은 적자를 감수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현대중공업은 표준품셈 자체를 대외비로 분류하고 있다. 한익길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갑질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단 한 번도 본사는 하청업체에게 표준품셈을 보여 준 적이 없다"면서 "대외비라는 이유로 절대 공개 안 한다"고 말했다. 피해대책위에서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서치원 변호사도 "앞서 민사소송 단계에서도 법원은 문서 제출을 명령했지만 원청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표준품셈표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측도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업체는 어떨까. 우선 삼성중공업의 경우 해양사업부는 품셈표를 공개하지 않지만 조선사업부의 경우 하청업체의 요청이 있을 시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영수 삼성중공업 피해대책위 위원장은 "조선 부문에서 20년을 근무했는데 계약 시 품셈표를 요청할 경우 원청에서 제공할 때도 있었다"면서 "다만 해양에서는 원청 내부적으로는 공유하지만 하청에는 공개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협력사와 계약할 때 공사 특성에 맞게 예산을 측정하고 견적을 받는 형태로 이뤄진다"면서 "양사 협의 하에 견적을 맞추기 때문에 현장에서 '품셈'이라는 용어를 쓰는 건 드물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위법 여부를 판단할 때 표준계약서와 연관지어 볼 필요도 있다"면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계약서상 표준품셈에 따라 대금을 결정한다고 표기돼 있다가 최근 품셈이라는 용어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조선업이라는 업종 자체가 규모가 크기 때문에 투명하게 운영할 수밖에 없다"면서 "편법으로 계약을 맺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품셈 비공개로 견적서도 원청 지시대로 작성할 수밖에 없다. 하청이 시공의뢰서를 참고해 견적서를 만들어야 하지만 임의로 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인 대한기업 김도협 대표는 "ERP라는 계약시스템에 견적서를 올리면 개별계약서가 나오는데 정상적인 방식이라면 어떤 물체를 만들기 위해 하청업체가 100만원이 들어간다고 판단한다면 100만원을 입력해야한다"면서 "그러나 현실은 본사에서 유선상으로 금액을 통보하면 그대로 입력을 해야만 견적서를 완성할 수 있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이어 "실제 지급된 대금이 적은 경우가 빈번해 하청들은 추가기성에 목을 멜 수밖에 없고, 추가기성을 미끼로 원청 관리자들이 하청에 개입하고 경쟁을 부추긴다"고 덧붙였다. 

서 변호사는 "현대중공업 내부 직원들 말을 들어보면 품셈표는 있는 것 같은데 2011년까지 사용하다가 수정된 품셈을 적용했다는 말도 있는 등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청이 품셈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부당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어떤 근거로 대금을 산정하는지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이로 대표 박병규 변호사는 "원청이 하청에 일방적인 단가를 강요한다는 측면에서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금지 중 부당한 가격결정(제3조의2 제1항 제1호)'과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중 '자기거래상 지위 부당이용(제23조 제1항 제4호)'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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