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항 칼럼] 위기관리 '유형'
[김진항 칼럼] 위기관리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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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항 안전모니터봉사단중앙회 회장(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예비역 육군소장)
김진항 안전모니터봉사단중앙회 회장(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예비역 육군소장)

위기관리 유형을 분류하면, 매뉴얼 제작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위기관리 유형 분류 원칙은 배타성과 수준유지다. 이 원칙을 적용해 분류할 경우 △관리목표 △관리시기 △관리범위 △유기체 성격 △위기 발생 방식 △위기 조성 행위자 유무 △위기 해소 방식 등 7가지로 나눌 수 있다. 

◇ 관리목표=위기관리 목표는 '전화위복'과 '원상복구'로 나뉜다. 전화위복이란 목표를 이루려면 위기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적극적 관리는 위기를 변화의 계기로 보고, 새로운 장을 만들어 위기발생 이전보다 나은 상태를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원상복구는 소극적 위기관리 목표다. 핵심적 가치에 처한 위험 제거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 위기관리의 본령이기도 하다. 전통적 위기관리는 국가 간 전쟁 발발 위험을 막는 것으로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당연히 신중하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 관리시기=위기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사전적 관리와 사후적 관리로 나눌 수 있다. 사전적 관리란 위기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제반활동을 일컫는다. 다른 말로 예방적 관리라 할 수도 있다. 사후적 관리는 대응적 관리와 상응한다. 

사전적 관리는 위기 발생을 예견하고, 그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활동이므로 전략적이다. 반면 사후적 관리는 발생한 위기에 대응해 긴박한 현장 중심이어서 전술적이다. 많은 이들이 사전적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기 쉽지 않다. 

사전적 관리를 잘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당연하다고 여겨서 들어간 비용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관리자도 있다. 사후적 관리는 대체로 물적 피해 회복에 한정된다. 위기를 통해 구성원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와 사회적 시스템 손상은 복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전적 관리는 물적·심리적·사회적 피해를 원천 차단할 수 있어 가치가 크다. 실제로 사전적 관리가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표면적으로 부각되지 않아 대접을 받지 못한다. 앞으로 사전적 관리가 더 큰 성과를 낸다는 연구를 축적해, 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모든 위기관리 주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 관리범위=광의적 관리와 협의적 관리로 구분할 수 있다. 광의적 관리란 위기관리 개념을 폭 넓게 해석한 것으로, 사전적 관리나 예방적 관리까지 포함한다. 협의적 관리는 최초 위기관리 형태다. 사후적·대응적 관리와 같은 뜻이기도 하다. 광의적 관리는 적극적 관리와 상응하고, 협의적 관리는 소극적 관리와 상응한다.

◇ 유기체의 성격=위기에 처한 유기체(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이다. 국제사회에서 절대주권을 핵심적 가치로 관리하는 국가위기관리, 국가 이외의 조직인 기업, 공공기관, 비정부기구(NGO) 등 모든 조직을 유기체로 하는 조직위기관리, 모든 사람이 1차적으로 소속하는 가정위기관리나 개인위기관리 등 위기에 처한 유기체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어떤 사고나 재난이 발생해 위기로 발전할 경우 각각의 유기체가 처하는 상황은 다르다. 유기체별 위기관리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해당되는 위기인가를 정확하게 판단해 관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 위기 발생 방식=위기는 천천히 영향을 미치는 만성적 위기와 급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급성적 위기로 나눌 수 있다. 위기의 성격에 따라 관리 방법도 달라야 한다. 특히 만성적 위기는 유기체 성장의 둔화로 나타나는데, 그 원인을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개인이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만성적 위기 조짐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는 환경 변화에 둔감하거나 변화를 알았어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무시하기 때문이다. 

만성적 위기를 현명하게 관리하려면 전략적 혜안을 가지고 세상의 변화를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예방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위기 발생을 차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명한 CEO는 만성적 위기 징조가 보이기 전에 전략적 조치를 취한다. 삼성은 '프랑크프르트' 선언을 통해 만성적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한 사례이며 구글에 넘어간 노키아와 굴지의 필름회사였던 코닥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 실패한 사례다. 특히 당쟁만을 일삼으면서 국방력을 소홀히 한 결과, 임진왜란을 초래한 조선의 역사는 만성적 위기관리 실패의 대표적 경우다. 

급성적 위기관리는 생존의 가치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당장 몰아닥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비상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전통적 안보상황과 대규모 재난에 의한 위기가 여기에 속하며 위기관리의 전형이다.  
 
◇ 위기 조성 행위자 유무=위기 조성 행위자의 의도는 위기관리에서 아주 중요하다. 위기 조성 행위자 유무에 따라 위기관리 형태가 달라진다. 위기 조성 행위자의 의도가 있는 경우, 위기관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위기 조성 행위자와 협상이 중요한 수단이 되고,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다. 상대가 있다는 것은 고도의 전략이 요구되는 위기여서 관리자의 능력이 가장 큰 변수다. 

전쟁이나 인질사건, 시위, 파업 같은 사회적 재난은 위기를 조성하는 행위자가 있어 유기체의 핵심적 가치를 위협하는 경우다. 이런 위협에 의해 조성되는 위기의 관리 목적은 원인을 제거하거나 발전을 억제하는 것이고, 협상이나 거래를 통해 위기 조성 행위자 의지를 꺾어 위협을 제거하는 게 관리 방법이다. 

자연재난이나 대형사고 같은 인적 재난을 포함해 전염병이나 가축질병처럼 위기 조성 행위자가 없는 경우에는 협상 상대도 없으므로 대증요법으로 대응한다.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위기 조성 행위주체 의도 유무에 따라 구분하면 대응 방법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를 요약하면 아래 <표>와 같다.     

(표) 행위주체 의도 유무에 의한 위기관리
(표) 행위주체 의도 유무에 의한 위기관리

◇ 위기 해소 방식=위기를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느냐에 따라 분류하면 교섭적 관리, 수습적 관리, 적응적 관리로 나눌 수 있다. 교섭적 관리는 위협의 근원이 상충되는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 간 또는 정치집단 간 발생한 위기를 관리하는 형태이자, 위기 조장 주체가 있는 경우다. 상대가 있는 위기이므로 협상을 통해 당사자 간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한다. 위기관리 성공 요체는 협상력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나 고려 성종 때 거란의 침입을 협상으로 해결하고 강동 6주를 할양받은 서희 장군의 위기관리 방식이다. 

수습적 관리는 다른 국가의 실수와 오판 또는 무의식적 행위로 인해 발생한 우발적 사건을 비롯해 자연재난, 인적재난 또는 대형사고 등에 적용된다. 핵심은 조속하고 효과적인 사태 수습이다. 원상회복이나 전화위복 계기로 삼아 원래보다 발전되거나 개선된 상태를 지향하는 경우도 있다. 위기 조성 주체가 있어도 교섭적 관리 방식으로 해소가 불가능하면 적극적 관리 차원에서 상대를 굴복시켜 위기 근원을 제거하는 수습활동이 필요하다. 전쟁은 국가 간 위기를 수습하는 가장 적극적 방식이다. 북한의 도끼 만행에 대해 우리 특전사가 미루나무를 절단해버린 것도 위기 수습 방법이었다. 

적응적 관리는 위기의 발단이 주변 환경의 갑작스런 변화에 기인한 경우 적용하는 방식이다. 위협의 근원은 상황변화다. 새로운 무기체계 개발이나 도입, 지역 또는 세계적 세력분포나 판도 변화, 주요 동맹국의 변화, 인접국가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질서의 급작스런 변화가 이에 해당한다. 기업의 경우 신기술 발전이나 사회 패러다임 변화로 인해 조직의 핵심 가치가 위협 받는 모든 경우가 해당된다. 이런 변화는 조기적응이 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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