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돈·권력과의 고리 끊기가 사법개혁의 시작
[기자수첩] 돈·권력과의 고리 끊기가 사법개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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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우리 헌법의 근간이 되는 삼권분립이 위태롭다. 국가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견제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원리인 삼권분립원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거래라는 '사법농단'으로 철저히 짓밟혔다.

우리 사회는 법 앞에 평등하다 가르치지만 실제로는 법 앞에 평등은 사라졌고 권력에 의한 불평등만 뿌리내리고 있다. 피로 이뤄낸 민주주의 이념마저 흔들린다.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180여 건 중 10%가 조금 넘는 20여 건에 대해서만 발부하고 나머지는 기각했다. 그것도 사법농단이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법원행정처 등 핵심장소를 특정한 영장 대부분을 기각했다. 대신 수사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재판거래 대상으로 지목된 관련 정부부처와 현직 판사들의 집무실 등에는 영장이 발부됐다.

어느 기관보다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하는 사법기관이 '제 식구 감싸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에 대한민국은 여전히 법과 권력의 유착으로 움직이는 갈 길 먼 세상이라는 데 헛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사법농단'이나 '국정농단'은 내란죄로 다스려도 부족함이 없다. '박근혜-최순실'이 만든 권력 입맛에 양승태 대법원장이 움직였고 박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 씨는 국헌을 짓밟았다.

그러나 민심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성난 민심은 정권을 몰아냈고, 그 자리에 '촛불 정부'란 이름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문 정부는 한국정치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고, 박 전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하지만 문 정권이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려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혐의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유죄를 받아야 한다. 뇌물죄는 준 쪽과 받은 쪽이 있어야 성립하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 유죄판결을 위해선 이 부회장이 뇌물을 줬다는 게 인정돼야 한다.

국정농단의 핵심이기도 한 삼성그룹의 뇌물수수 혐의를 두고 1심법원과 2심법원은 법리를 달리 적용했다. 1심 법원은 이 부회장이 경영승계를 대가로 한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면서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2심법원은 이 부분을 무죄로 선고했고 판단은 대법원으로 옮겨갔다.

최근 법원은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면서, 이 부회장의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다. 삼성은 박 전 대통령의 2심 법원 판단에 상당히 불만을 표한다. 국가가 하라는 투자도 했고 일자리 창출도 약속했는데 다시 이 부회장이 법정구속 될 판이기 때문. 어찌 됐건 이 부회장의 뇌물죄 유죄는 박 전 대통령 구속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만일 사법부가 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법리만 따진다면 명백한 증거 없이 정황증거만 존재하는 삼성의 뇌물 수수 혐의는 애초에 무죄를 선고받아야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부회장이 무죄라는 것은 아니다. 묵시적이든 아니든 경영 승계 대가로 건넨 뇌물은 비난받아야 마땅한 사실이다.

어쨌든 명백한 증거 없이 이 부회장에게 뇌물죄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면 문 정부는 이를 '정치적 승리'로 여길 것이고 국민은 법치가 살아 있다고 손뼉을 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또 하나의 '사법농단'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정치개혁보다 먼저 손봐야 하는 '개혁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는 법언처럼 정의를 실현하는 기관이 정치와 권력의 도구가 되는 정의롭지 못한 기관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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