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요동치는 여의도·용산 집값…재건축 미뤄진 단지는 '찬밥'
[르포] 요동치는 여의도·용산 집값…재건축 미뤄진 단지는 '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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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신길·마포까지 들썩…매물 자취 감추고 '묻지마 투자' 등장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이진희 기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이진희 기자)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매입하겠다는 손님이 줄을 서는데도 물건이 없어요. 여의도·용산 일대 개발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빠르게 소진되기도 했지만, 집주인들이 내놨던 걸 도로 거둬들였어요. 값을 얼마나 올릴지 간을 보겠다는 거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여의도·용산 통합 개발' 계획 발표 이후 해당 지역은 물론, 인근의 신길동·마포 지역 부동산 시장은 수요자에게 소문난 '핫 플레이스'다.

생각지 못한 개발 호재는 그간 정부의 집값 안정화 기조에 잔뜩 움츠리고 있던 투자자들의 발길을 다시금 이끌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4월 양도세 중과 이후 끊겼던 거래가 다시 살아나면서 일명 '묻지마 투자'까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등포구 여의도동 일대 공인중개업소. (사진=이진희 기자)
영등포구 여의도동 일대 공인중개업소. (사진=이진희 기자)

◇ 여의도·용산 일대 아파트 "부르는 게 값"

8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일대. 환하게 불이 켜진 공인중개업소들은 저마다 손님맞이에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기록적인 폭염에도 중개업소에 모여있는 이들과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 벨소리는 달아오른 투자열기를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이날 만난 중개업자들은 지난 7월 한 달간 오랜만에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입을 모았다. 박 시장이 여의도·용산 통합개발 계획을 언급하자마자 문의전화가 끊이질 않았다는 것.

앞서 박 시장은 지난 7월 10일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수상하고자 방문한 싱가포르 기자간담회에서 "여의도를 통째로 재개발하고, 서울역과 용산역 사이 철로를 지하화해 지상은 마이스(MICE) 단지와 쇼핑센터, 공원 등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매물을 내놓은 집주인들은 단번에 호가를 1억~2억원씩 올리기도 했다. 개발 소식이 들린지 한 달가량 지난 현재는 값이 이미 오를대로 올라있다. 올 4월 12억5000만원에 거래됐던 '공작아파트'의 전용 91.97㎡는 현재 호가가 13억5000만원이다. 인근 '시범아파트'는 전용 79.24㎡의 경우 지난달 초 11억5000만원에 거래를 마쳤으나, 현재는 13억원에 시세가 형성됐다. 

용산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박 시장이 여의도와 더불어 서울역~용산역 구간 개발의 청사진을 밝힌 후, 이촌동 왕궁아파트 전용 102㎡의 몸값은 16억원까지 치솟았다. 지난 5월 같은 면적의 거래가가 13억8000만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가파른 상승세다.

용산구 이촌동 Y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평수는 상관없으니 매물이 나오는대로 연락을 달라는 사람도 있다"며 "다만 집주인들이 호가를 더 높이거나 나중에 팔겠다고 하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한 거래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여의도, 용산을 중심으로 다시 살아난 투자 불씨가 주변 부동산 시장 분위기까지 바꿔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지역과 가까운 신길동과 마포구의 일부 단지는 최근 신고가를 경신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온다.

실제 마포구 염리동의 '마포자이' 전용 84㎡는 최근 12억원에 팔리면서 종전 최고가(10억7500만원·7월)를 넘어섰다. 직전 최고가가 지난 3월 9억7000만원이었던 영등포구 신길동 '래미안에스티움' 전용 84.97㎡는 시세가 10억~10억6000만원에 형성돼 있어 최고가 경신을 눈앞에 뒀다. 

영등포구 여의도동 공작아파트. (사진=이진희 기자)
영등포구 여의도동 공작아파트. (사진=이진희 기자)

◇ "재건축은 언제?"…시범·공작·왕궁아파트 '불만'

집값이 뛴다고 해서 집주인들의 표정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여의도·용산 통합개발 문제를 놓고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서다. 

앞서 국토부는 박 시장의 '여의도 통개발' 발언에 대해 "정비사업적으로도 고려할 부분이 많다"면서 "중앙정부와 협의해 함께 하지 않으면 현실성이 없다"고 날을 세웠다.

집값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가운데, 여의도 일대 부동산시장 과열을 부추기는 서울시의 행보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 3일엔 국토부와 서울시가 부동산 시장관리협의체 첫 회의를 열고 주요 개발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서로 공유·관리하기로 했으나, 양 기관의 불협화음을 바라보는 일부 단지 사이에선 혼란스러운 분위기도 감지된다.

특히 개별적으로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던 여의도 시범·공작아파트와 용산 왕궁아파트 주민들의 불만이 속속 나오고 있다. 여의도·용산 통개발 마스터플랜에 맞춰 정비계획을 추진하라는 서울시의 요청에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이들 단지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됐지만, 여의도 마스터플랜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류된 바 있다.

이날 만난 공작아파트 입주민 박 모(53·여)씨는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도 않은 마스터플랜과의 정합성을 맞추라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이러다 괜히 재건축만 늦어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입주민들의 우려처럼 이달 이후 마스터플랜이 발표되면 이에 맞춰 기존 정비계획안을 크게 손봐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추진 중인 재건축 일정은 대거 미뤄지게 된다.

영등포구 여의도동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7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 일대는 개발 얘기만 나오면 값이 뛴다"면서도 "입주민들이나 중개업자들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재건축이 가시화됐던 단지들은 추진 일정이 미뤄지면서 기대보단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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