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돌발' 행동으로 속내 드러낸 한전·한수원
[기자수첩] '돌발' 행동으로 속내 드러낸 한전·한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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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연일 기록을 갱신하는 폭염만큼 지난 한 주를 뜨겁게 달궜던 탈(脫)원전 논쟁. 해마다 여름철 단골 기사 거리였던 정부의 대국민 '블랙아웃' 위협은 찾아볼 수 없는 반면 에너지 전환 정책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더위만큼 격렬해지고 있다. 친(親)원전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때다 싶어' 핵분열 연쇄 반응(핵발전소에서 열에너지가 생성되는 방법)처럼 폭주하고 있는 모양새다. 

핵연료인 우라늄235가 분열을 하려면 중성자가 필요하다. 중성자가 원자핵과 충돌하면 분열과 동시에 중성자가 튀어나오고, 다시 다른 원자핵과 부딪히는 방법으로 무한 반복된다. 최근 에너지 공기업들의 '돌발' 행동이 마치 중성자 역할과 흡사하다. 의도 여부를 떠나 탈 원전 정책을 우회 비판한 뉘앙스로 비춰진다는 점에서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작은 한국전력이었다. 지난 6월 김종갑 한전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원전 가동률 저하로 지난 4분기와 1분기 적자"라고 언급했다. 과거에도 한전은 흑자와 적자를 반복해왔다. '원전 르네상스'를 선포한 이명박 정부 때는 5년 동안 천문학적 액수의 적자를 내기도 했다. 원전 축소는 복합적 요인의 일부분인데도 불구하고 김 사장의 발언으로 에너지전환 정책이 마치 모든 문제의 근원인 마냥 왜곡돼 퍼져나갔다. 산업부는 "인과 관계 오류"라면서 해명 자료를 냈고, 한전 측에서도 "가동률 저하가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원전 가동률 하락이 절대적인 요인인 것마냥 주장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여름철 늘어난 전력수요로 인해 원전 정비 계획을 앞당긴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논란이 일었다. 이번에도 탈 원전으로 전력위기가 발생해 부랴부랴 원전을 찾는다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계획예방정비 일정은 한수원이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원자력안전위원회 소관이다. 문제가 커지자 한수원 상황대응팀은 해명 자료를 배포하고 나섰다. 동일한 부서에서 자료와 해명을 동시에 낸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내부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추측부터 오보를 가장해 본심을 흘린 것이라는 분석까지 각종 말들이 뒤따랐다. 정재훈 사장이 SNS에 "폭염으로 정부와 한수원이 허겁지겁 원전을 추가 가동했다고 오버를 한다. 참 답답하다"는 글을 올려 논란은 더 일었다. 한수원 내부에서 흘러나온 말이 문제가 됐음에도 정작 사장은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계획예방정비 기간을 의도적으로 늘려 원전 가동률을 떨어뜨렸다거나 전력 수급을 위해 급히 조정했다는 주장들은 오히려 이전 정부였다면 일반적인 사안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달라진 건 현 정부가 탈 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 일각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니 '나쁜 정책'이라 규정 짓고, 결과에 일련의 상황들을 끼워 맞추고 있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비 목적으로 원자로를 멈추는 일은 일반적이다. '오버홀(OverHaul)', 줄여서 '오에이치(OH)'라고 불리는 계획예방정비는 현행법에 따라 미리 계획이 수립된다. 원자력안전법 시행규칙 19조 제2항에 따르면 정기검사는 발전용원자로의 경우 최초로 상업 운전을 개시한 후 또는 검사를 받은 후 20개월 이내에 실시해야 한다. 

통상 전력 수요가 많은 여름, 겨울보다 사용량이 줄어드는 봄, 가을에 계획예방정비가 집중 실시된다. 전력 수요가 많은 계절에 고장이 발생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가동 중단된 상태에서 하절기가 다가왔을 때 순차적으로 원자로를 돌리는 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해당 기간에는 정비만 하는 것이 아닌 핵연료 장전과 사용후핵연료 인출도 이뤄진다. 18개월마다 돌아오는 정기 검사는 핵연료 교환 주기와 맞물린다. 핵연료는 일단 원자로에 장전되면 한 주기가 끝날 때까지는 인출되지 않는다. 경수로의 경우 해당 기간에 핵연료의 3분의 1을 새 연료로 교환한다. 중수로의 경우 매일 1~2개의 압력관을 대상으로 핵연료 교환이 수행된다. 

올해 1분기 기준 원전 가동률이 56.4%를 기록한 것은 사실이다. 전년 동기(75.2%) 대비 하락했지만 정책의 정당성을 위해 고의로 가동률을 떨어뜨렸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가동률이 낮은 근본적인 이유는 일부 원전이 안전성 문제로 정밀 검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빛 원전의 경우 증기발생기 내 이물질, 격납건물 콘크리트 공극, 철판 부식 등의 문제로 이미 '건강검진' 차원의 예방정비 범위를 넘어서 수술을 받아야 할 판이다. 지난해 5월부터 진행된 한빛 4호기의 계획예방정비는 오는 10~11월이 돼서야 종료될 예정이다. 정상적인 정비 기간을 40~180일 정도라고 봤을 때 무려 1년 6개월이나 소요되는 것이다. 

앞서 박근혜 정부 때는 여름철 전력 수요를 예상하고도 일부 원전 정비 일정을 사전 계획 시 조정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현재 일각의 주장대로라면 특정 정책을 목적으로 고의로 가동률을 조작한 것이 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탈 원전의 '탈(脫)'자도 꺼내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신고리 5·6호기 등 신규 원전 설비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얻기 위해 가동 중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 원전 속도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느린 편이다. 정부는 이행 기간을 최소 60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존 원전을 정지시키는 것이 아닌 신규 원전을 짓지 않고 노후 원전만 줄이겠다는 점이 핵심이다. 현 정부 출범 후 폐쇄 결정된 건 월성 1호기뿐이다. 고리 1호기 폐쇄는 박근혜 정부 때 결정됐다. 현재 건설 중인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4·5·6호기가 완공되면 국내 원전 수는 오히려 늘어난다. '탈 원전'이 아닌 '에너지 전환'이라는 정책명이 현 정부 기조와 근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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