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염 덮친 건설현장 '비상등'···안전수칙은 '권고', 공기 맞추기 '강행'
[르포] 폭염 덮친 건설현장 '비상등'···안전수칙은 '권고', 공기 맞추기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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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신축아파트 공사현장. 근로자가 팔토시를 낀 채로 현장에 들어가고 있다. (사진=이진희 기자)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신축아파트 공사현장. 근로자가 팔토시를 낀 채로 현장에 들어가고 있다. (사진=이진희 기자)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사상 최악의 폭염에도 공사를 멈출 수 없는 건설현장은 연일 비상이다. 정부가 정한 폭염 안전수칙이 있지만, 강제성이 없는 '권고' 수준인 데다 대다수가 하도급으로 시행되는 건설현장에서는 이마저도 무용지물이다.

특히 '공사기간 사수'가 중요한 업계에선 형편상 재해 예방이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많아, 건설근로자들의 안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낮 최고기온이 37도까지 오르던 30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한 건설현장. 불볕더위 속에서 아파트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높은 안전펜스 안에는 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혀줄 수 있는 물이 바닥에 흥건하게 뿌려져 있으나 근로자들의 비지땀을 줄이기엔 역부족이다.

규모가 작은 공사장 옆에는 안전펜스를 침대 삼아 휴식을 취하는 몇몇 인부들도 눈에 띈다. 이들은 그늘이 있는 곳이 휴게소라고 답했다. 작은 휴게소가 마련돼 있는 큰 건설현장과는 달리 비교적 자그마한 현장은 휴식공간이 따로 없다는 얘기다. 

현장에서 만난 최 모(43)씨는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잠시 쉬려고 나왔다"며 "나가는 현장마다 다르지만 작은 곳은 쉴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아 자재 위에서 쉬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영등포구 신길동 한 공사현장 옆 길에서 근로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이진희 기자)
영등포구 신길동 한 공사현장 옆 길에서 근로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이진희 기자)

◇쉴 공간 마땅치 않아···휴식시간은 '글쎄'

실제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많은 건설 노동자들이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목수·철근·해체·타설 등 토목건축 현장 노동자 230명 중 '건설현장에서 쉴 때는 햇볕이 차단된 곳에서 쉰다'는 응답은 26.3%에 그쳤다. 나머지 73.7%는 '아무 데서나 쉰다'고 답했다.

휴식공간이 있어도 근로자들에게 주어진 휴식시간은 1시간 당 10~15분 정도다. 정해진 공사 기간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계약 위약금 지불, 금융 이자 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옥외작업자 안전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강제성이 없는 대책은 '공염불'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일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되는 '폭염경보' 단계에서는 실외 작업 중지를 '권고'하고 있다. LH는 무더위쉼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폭염주의보' 발령 시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 중 휴식시간(시간당 10~15분)을 3회 이상 지정하게끔 운영하고 있다.

그나마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가이드에 따르면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사업장은 △폭염경보 땐 1시간에 15분, 폭염주의보 땐 1시간에 10분 휴식시간 제공 △시원한 음료수 제공 △현장 그늘막 설치 등을 해야한다. 해당 가이드가 지켜지지 않으면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징역 5년 이하 혹은 벌금 5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현장노동자들은 가이드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가장 더운 시간대인 오후 2~5시 사이 긴급작업 제외한 작업이 중단된 적이 있냐'는 질문에 10명 중 8명이 중단 없이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면서 "정부가 실질적인 관리 감독을 통해 건설 노동자가 쉴 때 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포2재건축현장의 김진규 현장소장이 근로자들에게 얼음물을 배달하고 있다. (사진=삼성물산)
개포2재건축현장의 김진규 현장소장이 근로자들에게 얼음물을 배달하고 있다. (사진=삼성물산)

◇대형건설사 '더위사냥' 나서···얼음물 배달에 의료진까지

꺾일 줄 모르는 불볕더위에 건설사들도 제 식구 챙기기에 나섰다. 현장 근로자들을 위해 여름 보조용품, 음료 등을 지급하며 현장관리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삼성물산은 현장 이벤트로 '아이스 데이(Ice Day)'를 운영하고 있다. 기상청에서 폭염주의보 이상의 경보를 발표한 날, 현장별로 얼음물과 아이스크림을 배달하는 행사다. 

강남구 개포2재건축현장에는 지난 2016년부터 현장 내 얼음물 배달 서비스인 '더위 보이'를 도입했다. 이외에도 근로자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현장별로 휴게실과 그늘막·샤워실·음수대 설치, 안전용품 지급, 위생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폭염주의보나 폭염경보 등이 발령될 경우 혹서기 근무지침을 적용 중"이라면서 "작업시간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은 모든 현장에 식수와 얼음, 염화나트륨 등을 비치하고, 휴게시설을 별도로 설치해 근로자들이 쉴 수 있도록 했다. '무더위 휴식 시간제'를 통해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에 중점적으로 쉬도록 하고, 고강도 야외작업은 피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GS건설은 37도 이상일 때 옥외 작업을 전면 중단하고, 한화건설 역시 의료진을 현장에 배치시켜 온열질환 환자 발생을 막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하도급 업체 현장을 일일이 감독하긴 어렵지만, 가능하면 모든 현장에서 폭염 시 적절한 휴식을 취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수박이나 아이스크림 등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상시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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