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4000억弗 시대 열렸다…기대반 우려반
외환보유액 4000억弗 시대 열렸다…기대반 우려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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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거진 외환보유액 '적정' 규모 논쟁
"다다익선…외환·금융위기 대비 위한 '비상금'"
"유지비가 더 문제…물가상승 부작용도 걱정"
표=한국은행
표=한국은행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사상 처음으로 4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세계 9위 규모다. 외환보유액이 바닥나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1997년 11월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외환보유액이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쓸 수 있는 국가 비상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인 안정감이 확연하다. 

그러나 사상 최대치 달성에 따른 적정 외환보유액 논쟁이 재점화될 조짐을 보인다. 외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소규모 개방경제인 국내 경제 상황을 비춰볼 때 외환보유액 곳간이라도 넉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지나치게 외환보유액을 쌓다 보면 도리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사상 첫 4000억달러 돌파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003억달러다. 이는 한 달 전보다 13억2000만달러 늘어난 것으로, 한은이 1971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다. 또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7년말 204억달러에 비하면 20배가량 급증한 수준이다. 2001년 9월 1000억달러, 2005년 2월 2000억달러, 2011년 4월 3000억달러를 돌파한 외환보유액 규모는 7년2개월 만에 4000억달러를 넘겼다. 

6월 말 기준 보유외환을 형태별로 보면 전체의 91.9%인 3679억1000만달러가 국채, 정부기관채, 회사채 등 유가증권으로 구성돼 있었다. 우리나라가 해외 중앙은행이나 주요 글로벌은행에 보관해둔 현금성 예치금이 224억2000만달러(5.6%)로 그 뒤를 이었다. 이외에 매입 당시 장부가격으로 표시하는 금 보유액이 47억9000만달러(1.2%), IMF 특별인출권(SDR·회원국이 달러를 IMF에 내고 대신 SDR를 받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달러 등으로 인출해가는 권리)이 32억6000만달러(0.8%), IMF포지션(회원국이 출자금 납입에 따라 수시로 인출할 수 있는 권리)이 19억1000만달러(0.5%)를 각각 기록했다.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외환보유액 최다국은 △중국(3조1106억달러) △일본(1조2545억달러) △스위스(8004억달러) △사우디아라비아(5066억달러) △대만(4573억달러) △러시아(4566억달러) △홍콩(4322억달러) △인도(4124억달러) △한국 △브라질(3825억달러) 등 순을 보였다. 한국은 지난해 5월 이후 꾸준히 9위에 머물고 있다. 

◇강(强) 달러에도 늘어난 외환보유액, 왜?

한은은 지난달 외환보유액이 증가한 배경에 대해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 호주달러화 등의 약세에 따라 이들 통화표시 자산의 미 달러화 환산액이 감소했음에도 외화자산 운용수익이 더 늘어나면서 외환보유액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6월 한 달간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 호주달러화 가치는 전월 말 대비 각각 0.9%, 1.6%, 1.6%, 3.0% 절하됐다. 반대로 주요 6개국 통화 대상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 지수는 6월 말 94.5로 전월말보다 0.5% 상승했다. 

통상 달러가 강세면 기타통화 외화자산 달러 환산액이 줄어 외환보유액도 줄어들지만 최근에는 이례적으로 강달러 국면에서도 외환보유액이 늘고있다. 한은은 보유외환 운용수익을 외환보유액 증가 이유로 꼽았지만 이 변수의 영향력은 매월 거의 일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때문에 금융권 안팎에서는 한은이 적정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개입하며 외환보유액을 모은 것으로 풀이한다. 한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달러를 포함한 주요 환율이 급격히 오르거나 내리면 시장에 개입한다. 환율이 너무 가파르게 하락하면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경기가 위축되고, 반대로 지나치게 상승하면 물가가 불안해지고 국부(國富)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나서다.

한은 관계자가 "외환보유액 증가는 여러가지 정책변수에 따른 것"이라며 말을 아낀 것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정부와 외환당국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항상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며 외환시장 개입사실에 대해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 개입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외환보유액 더 늘려야 하나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초로 4000억달러를 돌파하자 그 규모가 적절한지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은은 2015년 개정된 IMF 기준에 따라 추산한 올해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이 3814억~5721억달러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외환보유액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 강화, 주요국 긴축기조와 신흥국 불안, 내외금리 역전 등을 이유로 당분간 확대 기조를 유지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금융시장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는 논리다. 수출 위주의 소규모 개방경제인 국내 경제 특성을 감안하면 비상금인 외환보유액이라도 넉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안정적인 외환보유액은 국가 신인도를 높이는데 기여한다는 이점이 있다.

앞서 한국경제연구원은 주요국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져온 글로벌 저금리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신흥국에 유입된 외국인 자본도 빠져나가는 추세라는 점에서 한국도 외환위기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한경연은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이 4400억달러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외환보유액이 현재 400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약 400억원이 모자라는 셈이다. 

반대로 외환보유액 추가 확대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쪽에서는 IMF 기준으로 볼 때 적정 범위 내인 상황에서 효용보다 비용이 더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은은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위해 달러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풀린 원화로 인한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원화를 흡수한다. 이 경우 통안증권의 금리보다 외환보유액 운용 수익률이 낮으면 역마진이 발생해 결국 보유비용만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한은이 주로 미국채권 등 비교적 수익률이 낮은 안전자산에 외환보유액을 투자하기 때문에 이는 결과적으로 물가상승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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