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해체 최대 변수 '사용후핵연료', 어떡하나 
원전 해체 최대 변수 '사용후핵연료',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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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연료봉 처분 못하면 해체도 지연 불가피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사진=김혜경 기자)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사진=김혜경 기자)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고리 1호기에 이어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이 결정되면서 원전 2기가 해체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노후 원전 10기의 수명 연장을 추가로 중단시킬 계획인 가운데 원자로 정지 선언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1기당 7515억원(한국수력원자력 추산) 정도의 막대한 해체 비용이 투입된다는 사실과 고선량 방사선을 내뿜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원전 운영의 '아킬레스 건'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후핵연료 인출과 냉각은 본격 해체가 시작되기 전 이뤄진다. 폐연료봉이 원전 내 저장고에서 반출된 후에야 작업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저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해체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영구 처분장이 없다. 박근혜 정부 당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지만 비민주적인 절차와 미흡한 결과 도출로 논란만 빚었다. 지난 5월 재검토 준비단이 발족돼 논의 중인 가운데 본격 공론화가 진행될 경우 중간저장시설 활용과 발전소 내 임시 저장, 영구 처분장 결정 등 산적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 박근혜 정부 당시 '졸속' 진행된 공론화위원회···"대국민 사기극"

사용후핵연료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남은 폐연료봉을 말한다. 자연 상태에서 채광한 천연우라늄은 '우라늄235'와 '우라늄238'로 구성돼 있는데 우라늄235의 비중에 따라 핵무기용과 발전용 우라늄이 구분된다. 핵무기용은 우라늄235의 비중을 90% 이상 농축시키고, 발전용 우라늄의 경우는 3~5% 정도의 비율로 높여서 사용한다. 국내의 경우 고리·한빛·한울 경수로에서는 3~5% 농축우라늄을, 중수로인 월성 원전에서는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한다. 

원자로에 장전된 핵연료는 약 1~2년 정도 핵분열 반응을 진행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고, 증기가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것이 원자력발전소의 원리다. 원자로에서 꺼낸 사용후핵연료는 사용 전과 달리 높은 붕괴열과 함께 고(高) 선량의 방사선을 내뿜는다. 각 원전 내 설치된 10m 깊이에 이르는 콘크리트·강철로 된 붕산수 저장고에 담겨 냉각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최소 5년 이상 냉각시켜 방사선 준위를 낮춘 후 건식저장시설 혹은 중간저장시설 등 다른 곳으로 옮겨져야 한다. 

중수로 월성의 경우 경수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폐연로봉의 방사선 준위가 낮기 때문에 일정 시간 수조에 보관한 후 원전 내 설치된 건식저장시설로 옮겨진다. 문제는 이 같은 과정이 수십 년 단위에 불과한 임시 보관이라는 점이다. 한수원에 따르면 월성 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와 캐니스터 설계 수명은 약 50년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최소 10만 년 이상 생태계와 격리시킬 수 있는 안전한 밀폐 시설을 따로 건설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는 최종 처분장은 물론, 중간저장시설도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도 페연료봉 저장 수조의 냉각재가 누출돼 문제가 됐던 것처럼 습식 저장 방식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도 처분장과 안전한 보관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18년 현재 전 세계에서 고준위 영구처분장이 결정된 곳은 핀란드의 온칼로 방폐장이 유일하다. 수도 헬싱키에서 북서쪽으로 300km 떨어진 온칼로는 1972년부터 건설이 시작돼 2020년께 완공될 예정이다. 이외 스웨덴·독일의 경우는 부지를 확보했거나 선정 절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3년 10월 박근혜 정부 당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동안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공론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했지만 지난 정부 들어서야 관련 기구가 만들어 진 것. 그러나 위원 구성의 편파성과 형식적인 질의응답, 논의되지 않은 재처리 연구 진행, 중간저장시설·최종처분장 일괄 해결 등 시급성만을 강조하는 정부 태도에 시작부터 논란이 일었다. 

2016년 7월 정부가 내놓은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 권고안에는 △지하연구시설(URL) 건설·실증연구 △건식저장시설 확충 △고준위방폐장 부지선정(2028년) △중간저장시설 확립(2035년) △영구처분장 건설(2055년) 등이 포함됐다. 시한의 적절성,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합의되지 않은 사안을 확정짓는 정부 태도에 비민주적이란 지적이 이어졌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2016년도 권고안을 보면 중간저장시설과 최종 처분장 건설 시기 확정 등 마치 여태껏 공론화가 잘 이뤄져서 결론이 도출된 것처럼 적시돼 있다"면서 "당시 공론화위원회는 어떤 결과도 내놓지 못했는데 합의를 본 것처럼 둔갑시킨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016년 공론화위 결과를 토대로 한수원 등은 사업 계획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수원 홈페이지에 게재된 '고리1호기 영구정지 및 해체 질의응답' 자료에는 최소 5년 습식 저장조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식힌 후 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로 이송 예정이라는 내용과 함께 고리본부 건식저장고 설치 계획도 포함돼있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2024년까지 고리 원전 내 건식저장고를 설치하겠다는 내용과 관련해서는 아직 사업기본계획 수립 전"이라고 설명했다. 

또 해당 자료에는 사용후핵연료가 원자력환경공단이 원전부지 외부에 운영할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로 옮겨서 처분된다는 내용도 있다. 건식저장시설 운영 주체는 한수원으로 원전 부지 내 건설되고, 중간저장시설의 경우 원전 밖에 설치돼 환경공단이 운영한다는 점이 다르다. 

원자력환경공단 관계자는 "2016년 공론화위원회 권고로 지난 정부에서 도출한 로드맵에 포함된 내용"이라면서 "현재 공론화위 재검토 준비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해당 내용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중단됐다"고 말했다. 

이어 "중간저장시설 등이 향후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합의 도출 방식에서부터 국민 동의를 얻어야 하니까 해당 절차를 다시 밟기 위해 재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전면 재검토에 들어간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

지난 5월 사용후핵연료 정책 재검토 준비단이 발족됐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이미 포함된 내용이다. 오는 8월까지 재검토 추진기구 구성방식과 의제선정 등 재검토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과정을 진행한다. 

이후 2019년 상반기 고준위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설치해 실행계획을 확정하고, 대정부 권고안을 마련한 후 하반기에 정책을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재검토 추진 배경은 지난 공론화위 권고안이 민주적이지 않고 미흡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임시건식저장과 중간저장, 최종처분 등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소장은 "해당 시설들을 분리해서 봐야 하는데 지난 정부 공론화위와 한수원이 제대로 된 합의 없이 한꺼번에 처리하고 넘어가려다 보니 문제가 된 것"이라면서 "정권이 바뀌고 난 후 원전 내 건식저장시설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됐는데 결국 자신들 발에 걸려 넘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한수원은 건식저장고를 중간저장시설 비슷하게 말을 돌리는 것 같다"면서 "본부별 건식저장시설을 만들겠다는 건 최종처분장 결정이 나지 않으면 발전소가 처분장이 될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정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와 함께 엮여 논란이 된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고속로' 등 핵연료재처리 연구 사안은 이번 재검토 과정에서는 분리해서 진행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자력연구개발과 관계자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 재검토 준비단과 재처리 연구는 별개로 진행되는 것"이라면서 "예산이 책정된 2020년까지는 단순 R&D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폐연료봉 처분 방식 관련, 직접 처분 혹은 재처리를 하느냐와 관련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독일의 경우에도 직접 처분 방식을 선택하고 있지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재처리 관련 연구는 하고 있다"면서 "국민과의 합의로 정책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부분과 연구 타당성을 토대로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연구원 역할이기 때문에 별도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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