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출금리 사기 '은행 갑질'과 최종구의 실언
[기자수첩] 대출금리 사기 '은행 갑질'과 최종구의 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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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금융감독원이 지난 21일 발표한 9개 은행(KB국민·신한·KEB하나·우리·NH농협·IBK기업·SC제일·한국씨티·부산은행) 대출금리 산정체계 검사 결과를 두고 금융권이 연일 들썩이고 있다.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제멋대로 산정해 이자를 더 받아낸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들 은행 중 일부는 고객들의 소득 정보를 실제보다 적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처리해 이자를 올려 받았다. 전산시스템을 통해 자동으로 금리를 산정토록 해놓고도 임의로 최고금리를 물린 은행도 있었다. 이자를 깎아 달라고 했더니(금리인하요구권) 기존에 받던 우대금리를 슬그머니 축소한 사례도 발견됐다. 은행들의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자장사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고객이 맡긴 돈으로 영업을 하는 만큼 어느 직종보다 강한 도덕성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은행업권에서 도덕적 해이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데 대해 금융소비자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한 표정이 역력하다. 겉으로는 '고객과 함께하는 은행', '미래를 함께하는 따뜻한 금융' 등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소비자를 철저히 무시하고 기만했다는 데 대한 배신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모양새다. 

여기에 지난해 은행권이 올린 막대한 이자이익과 사상최대 실적, 그리고 성과급 잔치의 배경에 대출금리 '사기'가 한 몫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금융소비자들은 공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토론방에는 은행들을 비판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사기친 은행들을 철저하게 밝혀 일벌백계해야 한다', '은행들이 자기 배만 불릴 때 서민들 자영업자들 등골이 휜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혈세로 살려놓으니 갑질만 하려한다'며 비판일색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 수장이 부적절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는 점은 심히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2일 기자들을 만나 "은행 개별창구에서 발생한 일이어서 기관 징계까지 가지 않을 것 같다"며 "고의적으로 (금리를 조작)한 은행 직원에 대해서는 제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게 내규를 위반한 것이라 제재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했다. 대출금리 조작이 은행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별 직원의 일탈행위라고 금융위원장이 나서서 선을 그어준 셈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금융권의 '돈잔치'를 지적하며 "금융권이 과도한 탐욕과 도덕적 해이를 버려야 한다"고 질타한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적어도 SD(김석동의 별칭) 때는 구두(口頭) 경고장이라도 날렸단 얘기다.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는 금융당국이 철퇴를 휘둘러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두둔하고 나서는 것을 보니, 은행들의 도덕성이 이 모양 이 꼴로 떨어진 것도 놀랍지 않을 지경이다. 금융당국에 묻고 싶다. 스스로 기득권이 된 은행이 채용비리에 대출금리 조작까지 벌이는 지경까지 온 데 금융당국의 책임이 정말 없으며,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이 금융사들의 도덕적 해이임을 벌써 잊었냐고. 

금리조작, 사기는 국민을 상대로 하는 '금융 갑질'로 생산적 금융, 포용적 금융 등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 기반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적폐 대상이다. 가계대출이 1400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대출을 받은 금융소비자는 가뜩이나 금리가 오르고 있어 허탈, 좌절감과 함께 분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금융당국 수장은 전문성, 판단력과 함께 무엇보다 국민을 생각하는 따뜻한 가슴이 있어야 한다. 실언이라고 하기에는 은행권 채용비리와 금리인상, 경제상황 등을 감안할 때 납득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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