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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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주현 기자] 묘한 감정이었다. 이른 아침 출근길 달팽이를 만난 뒤였다. 새벽까지 비가 내렸는지 버스정류장으로 이어진 보도블록은 물기가 촉촉했다. 보도블록 위를 지나며 달팽이를 여럿 만났다. 

되도록 빨리 버스를 타겠다는 요량에 서둘러 걷고 싶었으나,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환하게 밝기 전 보도블록 위에 크고 작은 달팽이가 즐비했다. 빨리 걸으면서 피하기 쉽지 않았다. 지뢰밭을 지나듯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을 수밖에 없어 짜증이 났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달팽이여서 반가웠다. 틈새가 있는 보도블록 대신 검정 아스팔트가 나타나자 더 이상 달팽이는 보이지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가수 패닉의 '달팽이'란 노래가 떠올랐다. 버스 안에서 전화기를 꺼내들고 이적이 지은 노랫말을 찾아봤다.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란 대목이 인상 깊었다.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대한민국 처지 같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깜냥이 못된다고 여기면서도 최근 대한민국 상황을 되짚어봤다. 두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과 한 차례 북미정상회담 결과 한반도는 평화 분위기에 휩싸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상상조차 어려웠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동안 악재가 많았다.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북한의 반발과 전쟁위험,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중국의 보복 등. 대한민국 힘은커녕 국제사회 공조로도 해결하기 어려워 보였다. 

이제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다. 6·25전쟁 이래 오랫동안 이어진 정전 상태를 영구적 평화체제로 바꿀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물론 앞으로 갈 길이 멀 것이다. 게다가 그 길이 순탄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이다. 달팽이처럼 느리더라도 그동안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 떠나야 하는 셈이다.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체제가 정착되면 대한민국 경제에도 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 땅을 지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게 수월해진다. 특히 소비재 생산이나 유통 관련 업계 기대감이 높다. 다른 업계도 실보다 득이 훨씬 더 많아 보인다.   

대중음악평론가 한동윤은 노래 '달팽이'가 "꿈을 쥔 이들의 역설적 희망"이라고 봤다. 그는 인터넷 블로그 '소울라운지'에서 "남들은 다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토대로 가능성에 대해 노래한다. 얼마나 걸릴지, 얼마나 힘들지 모르는 길고 험난한 과정일지라도 이상을 향해 나아가서 반드시 이루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핵심이다"라고 썼다. 

비 온 뒤 물기 머금은 땅으로 내려온 달팽이는 위기에 빠지기 십상이다. 새, 쥐, 개미 등 달팽이 천적은 많다. 작은 달팽이 입장에선 함부로 걷거나 뛰어다니는 인간도 무서운 존재다. 그러나 땅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결코 '넓고 거친 세상 끝 바다'로 갈 수 없다.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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