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 4호기와 증기발생기③-끝] 이물질 신호는 있었지만 '망치'인지는 몰랐다?
[한빛 4호기와 증기발생기③-끝] 이물질 신호는 있었지만 '망치'인지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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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운 좋았던' 영광지역 주민들 
(사진=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사진=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격납건물 철판부식과 콘크리트 공극, 증기발생기 내 망치 형태의 이물질까지. 한빛 4호기의 총체적 안전 관리 부실에 대해 영광 지역 주민들은 지난 20여 년간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난해 여름 한빛 4호기가 다시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자 지역사회는 들끓고 있다. 

광주·전남 시민사회단체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한빛원전의 위험요인과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민감사를 청구한다는 계획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원자력안전기술원(KINS; 킨스),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해 논란이 되기 전부터 증기발생기 내부에 이물질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에 이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앞서 1997년 12월 규제기관은 한빛 4호기 첫 정기검사 당시 증기발생기 내부에서 이물질을 발견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국정 감사를 앞두고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당 기관에서 제출받은 자료로 알려지게 됐다. 잔류 물질 신호는 있었지만 해당 물체가 망치 형태의 금속 물질인지 여부는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 지역 주민들은 '운이 좋았기' 때문에 원전 옆에서 생활이 가능했던 셈이 된다. 1996년 1월 한빛 4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한 이후, 20여 년 동안 증기발생기 내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 이물질 신호 최초 검출은 20년 전인 1997년 

지난해 8월 17일 망치 이물질 관련 언론 보도 후 김성수 의원실에서 입수한 원안위 원자력안전과 문건에는 "이물질 크기가 유입경로의 최외각 간극보다 크므로 운전 중 유입될 수 없으며 1997년 12월 1차 계획예방정비(OH) 당시 잔류물질 신호가 검출됐음을 볼 때 제작 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1년이 지난 현재 사업자인 한수원은 해당 증기발생기 제작사인 두산중공업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국내 모든 원전은 정기적으로 예방 정비를 실시한다. 검사 항목 중 증기발생기 세관의 손상 여부는 통상 세관 내부에서는 '와전류 탐상검사(ECT)'로, 외부에서는 FOSAR 육안검사로 점검해 건전성을 확인한다. ECT는 1mm 크기의 8400여개 관으로 이뤄진 증기발생기 내부를 고·중·저 주파수를 이용한 탐지로 세관 균열과 마모 등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이물질 검사도 실시된다. 내부에 이물질이 있다면 잔류물질 신호가 검출되고 킨스는 해당 물질에 대한 건전성 평가를 진행한다. 평가 결과로 제거 여부 판단 등을 확인하고 원안위에 보고한다. 그렇다면 원안위 설명대로 1997년 첫 정기 검사 때 잔류물질 신호가 검출됐음에도 왜 망치 이물질은 지난해 7월이 돼서야 발견됐을까. 

2015년 이전까지는 중·고주파 위주의 검사만을 수행했다는 것이 규제기관의 입장이다. 중·고주파는 세관 상태 검사와 함께 상대적으로 세관과 가까운 곳에 있는 이물질을 탐지한다. 반면 저주파는 세관과 거리가 있는 이물질을 탐지한다. 20년 전 잔류 물질의 저주파 신호는 잡혔지만 상세 평가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해당 물체가 망치 형태의 금속 물질인지 여부는 파악이 되지 않았다는 것. 

그 후 증기발생기 결함 문제가 빈번해지면서 킨스는 ECT 검사 시 저주파를 포함시키는 등 이물질 검출 검사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한다. 그동안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원자력규제회의 등에서는 한빛 4호기를 포함한 한국 표준형 원전 증기발생기의 균열, 마모 등 결함 개선 관련 문제가 제기돼왔다. 

2005년 9월 원자력연구원의 '원전증기발생기 2차측 건전성 확보' 보고서에 따르면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 모델 증기발생기에서 발생하는 손상들 중 관판상단(TTS) 2차측 원주균열이 가장 위협적인 것으로, 2001년 한빛 4호기 5차 정비에서 35개, 한울 3호기 3차 정비에는 6개 세관에서 발견된 바 있다. 

규제 기준 강화가 이뤄진 후 지난해 한빛 4호기 16차 OH 때 망치 형태의 이물질 존재가 확인됐다. 민병주 유니스트 기계항공및원자력공학부 교수는 "지난해 이물질 존재 여부 확인은 강화된 신호 평가 지침을 신규로 적용해 최초로 확인된 것이라고 알고 있다"면서 "망치형 이물질 발견으로 1997년 당시의 데이터를 다시 분석해 보니 같은 위치에 신호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2015년 ECT 신호 평가 지침 강화와 내시경 검사 등을 도입한 결과 잔류 물질의 형태를 확인했다고 하는데 당연히 갖춰야 할 안전장치를 여태껏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최근 정비 때 증기발생기 내부가 엉망이라는 걸 인지한 것"이라면서 "기술이 없어 대응을 못한 것이 아니라 기술은 있지만 손 놓고 있다가 세관 문제가 빈번해지니 대처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 세관 손상 가능성은?···원안위·킨스·한수원 "고정돼 있어 문제없다"

한빛 4호기 증기발생기 망치 이물질 발견 건과 관련해 한수원과 규제기관이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은폐가 아닌 절차대로 보고 과정을 거쳤다는 부분이고 두 번째는 망치 형태의 이물질이 고정돼 있어 세관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성에는 문제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후 지역사회와 시민단체는 망치 이물질로 인한 세관 파손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고온·고압의 물이 세관을 따라 흐르고 있는 증기발생기 내부에서 망치 형태의 큰 금속물체가 내부에서 돌아다닐 경우 세관 여러 개가 한꺼번에 파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세관이 손상을 입을 경우 빠른 시간 내 많은 양의 냉각수가 빠져나간다. 

망치 이물질의 움직임 여부는 현재로써 파악이 불가능하다. 증기발생기 조기 교체로 규제기관의 건전성 평가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김성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중순 '망치 발견' 논란이 일기 전인 7월 25일 원안위는 한수원에 망치 제거 구두 지시를 내렸다. 당시 킨스는 OH 정비내역을 토대로 유동 가능성 등 건전성 평가를 진행 중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물질이 발견되면 킨스가 건전성 평가를 수행하고, 평가 결과에 따라 원안위가 이물질 제거 혹은 교체 등 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이 경우 건전성 평가가 진행 중인데도 규제기관의 지시가 있었고, 한수원은 26일 영광 원전 지역감시기구에 망치를 '금회 검출 이물질'로 보고한 후 12월로 예정된 증기발생기를 2개월 당겨 조기 교체할 것을 8월 초 발표한다. 교체 결정에 따라 구 증기발생기 건전성 평가는 중단되게 된다.

킨스 관계자는 "16차 OH는 현재 진행중이며 한수원은 6월 초 종료된 ECT에서 확인된 이물질에 대한 육안검사를 7월 9일부터 10일까지 수행했고, 망치형 이물질임을 확인했다"면서 "세관 건전성 평가는 한수원이 수행해 조치 방안을 결정하고, 킨스는 이물질 영향 평가와 조치 계획 및 이행의 적절성을 검토한다"고 말했다. 

원안위에서는 이물질 유입 원인분석과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도록 해당 이물질의 인출을 요구했다고 킨스 측은 전했다. 

민 교수는 “개인적으로 세관건전성 평가보다는 안전성과 경제성 평가부터 우선 실시한 후 교체를 하고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면 건전성 평가를 하는 것이 순서에 맞다고 본다”면서 “교체를 하는 것으로 결정했으므로 건전성 평가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킨스에 따르면 증기발생기 2차측 유동해석을 통한 이물질 위치 유속 분석 결과, 망치의 움직임에 의한 세관 영향은 없는 것으로 검토됐다. 1997년 잔류 물질 신호 위치와 지난해 발견 당시 위치가 동일하기 때문에 망치가 움직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 망치에 의한 결함으로 누설이 있었다면 방사선 탐지에 의해 확인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킨스 관계자는 "해당 부위 유체의 최대 속도는 △수직방향 1.554 m/s △원주방향 0.114 m/s △반경방향 0.239 m/s로 나타났다"면서 "이물질이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힘과 비교했을 때 유동방향에 따라 최소 1/174배, 최대 1/2.4배 정도로 작아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킨스가 김 의원실에 전한 구두 답변에도 망치형 이물질이 발견된 관지지판의 유속이 1m/s 이하이기 때문에 망치를 밀 수 없는 유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망치가 움직였을 경우 세관 반 개 정도 간격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이 예상된다고도 덧붙였다. 

한 소장은 "1mm짜리 관 반 개 정도 간격의 움직임이 예상된다는 건 막대한 힘은 아닐지라도 망치형 이물질이 세관에 어느 정도 충격을 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라면서 "유속이 1m/s 정도면 공기로 환산했을 때 초속 100m 이상의 속도인데 이물질이 발견된 주변 유속이 실제 1m/s보다 빨랐다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망치형 이물질과 함께 제거가 불가능했던 폭 7mm·길이 10.5mm의 계란형 금속조각이 사실 기술적인 면에서 위험성이 더 크다"면서 "만약 20년간 관판상단에서 위아래가 아닌 옆으로 돌면서 움직여 마모됐다면 여러 개의 세관을 건드렸을 가능성도 있는데 망치가 있던 관지지판보다 관판상단의 유속이 10m/s 정도로 훨씬 빠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공식 발표처럼 세관에 별다른 결함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과 조기 교체로 주민들의 불안함이 어느 정도 진정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운이 좋지 않았더라면' 중대 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과 망치 이물질을 제대로 평가할 기회가 사전에 차단됐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주경채 한빛원전범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증기발생기 교체로 당장의 안전에는 영향이 없을지라도 세관 손상 가능성 등 원인 분석을 놓치고 간다는 건 문제가 있다"면서 "킨스가 진행했던 건전성 평가 관련 자료들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전문가들 "안전의식과 독립적인 전문 인력 확보가 중요"

전문가들은 제도의 결점을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립적인 전문 인력의 확보와 안전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4년 5월 원자력안전법의 개정으로 설계부터 부품 출하까지의 전 과정에 대한 포괄검사는 이뤄지고 있다. 90년대 제작검사보다는 범위가 확대됐으며 안전기술원 내 전담조직이 신설되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민 교수는 "탈원전 시대 원전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서는 기기점검, 평가지침 등도 중요하지만 전문인력 확보와 운영인력의 안전의식, 처우개선 등이 더 중요하다"면서 "기술적 결함 이전에 인적 오류에 의한 문제로 사고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인적 오류를 줄이기 위한 개선에 더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소장 또한 "입회 감독한다고 해도 중요시점에만 방문해 보는 것이지 감독자가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다"면서 "특히 한국의 경우 사업자가 작업요원을 고용해 관리감독을 하는 구조인데 한수원이 고용주 위치에 있는 이상 감독인력이 제대로 된 지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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