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 4호기와 증기발생기②] '안전 담보'로 거래한 저가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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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도 무상보증 10년···원전 핵심 부품은 2년
막대한 교체 비용 고스란히 국민 혈세로 충당
(사진=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사진=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지난해 7월 격납건물 철판부식과 콘크리트 공극 등 총체적 안전 관리 부실이 여과 없이 드러난 한빛 4호기. 전두환 군사정권 하의 부실시공과 비리 의혹이 20여 년 만에 다시 재조명됐다. 핵심 설비인 증기발생기에서 망치 형태의 금속 이물질까지 발견되면서 국정 감사에서는 질타가 이어졌다. 

당시 사업자와 규제기관은 망치 이물질이 제작 때부터 20여 년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1년이 지난 현재 한국수력원자력은 "제작 공정 분석 결과 제작 시 유입됐다고 확인된다"면서 제작사인 두산중공업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한수원은 제작사에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계약 시 맺은 배상책임보증기간이 초과됐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안전보다는 비용 절감에 집중했던 한수원과 가벼운 책임을 원하는 두산중공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 하자 발견에도 동일 제작사에 교체를 맡겼다는 지적이 이어진 가운데 부품비를 포함해 조기 교체에 추가되는 제반 비용도 공기업이 떠안게 되는 셈이다.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원전 특성을 고려한 보증기간 설정과 손해배상을 강력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세탁기·에어컨보다 짧은 '원전 부품' 무상보증기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한빛 4호기와 관련된 지난해 국감 시정 요구 사항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불량품을 납품한 제작사에 대해 손해배상 요구 없이 다시 제작을 맡기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 두 번째는 조기교체 비용에 대해 한수원이 두산중공업과 협의해 구체적인 결과를 도출하고, 향후 계약 시 원전의 고위험성과 안전성을 고려해 하자보증기간을 설정해야 한다는 요구다. 

망치 이물질이 발견됐음에도 한수원은 또 다시 두산중공업에 교체용 증기발생기 제작을 맡겼다. 한국 표준형 원전인 OPR-1000 증기발생기를 만드는 국내 업체는 두산중공업이 유일하다. 해당 모델은 논란이 된 한빛 4호기뿐만 아니라 3·5·6호기를 포함해 △한울 3~6호기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2호기 등에 설치됐다. 

국내 원전 부품별 보증기간은 상이하지만 통상 증기발생기는 계약 시 2년 기한으로 설정된다. 두산중공업이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한빛 3·4호기 원자로 설비 공급계약'에 따르면 한빛 4호기 증기발생기 최초 계약 시 설비 하자보증기간은 1996년 1월 1일부터 1997년 12월 31일까지다. 

(사진=김성수 의원실)
(사진=김성수 의원실)

보증기간이 지난 후 결함이 발견되면 비용을 지불하고 부품을 교체하거나 수리를 해야 한다. 증기발생기 1기의 가격은 1500억원대로 알려진다. 한수원 설비개선실이 김성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두산중공업의 요구로 증기발생기 조기교체에 따른 추가 비용 91억원을 지급했다. 오는 10월 한빛 4호기 증기발생기 조기 교체가 예정된 가운데 한수원은 추가 비용을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등에도 지불해야 한다.

한수원 관계자는 "현재 증기발생기 제작은 이미 완료했기 때문에 두산중공업 측에 지급할 추가 비용은 없고, 조기 교체로 인한 장비 비용과 인건비 등이 소요되기 때문에 시공사에 주는 부분은 있다"면서 "일각에서 제기된 금액은 가정된 부분일 뿐 실제 투입되는 비용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통상 원전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들의 하자보증기간이 2년 정도 된다는 것"이라면서 "특정 부품의 보증기간은 모델마다 다르기 때문에 계약서를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계약 시 정한 하자보증기간 만료로 제작사 책임이 종료되거나 고의적인 불법행위를 제외하고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 적극적인 법적 대응이 필요함에도 소극적으로 일관하는 사업자 태도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부품 교체 비용에 따른 손해뿐만 아니라 원전 가동 정치에 따른 전기 판매 손실액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기구 더민주 의원이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12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고장부품 하자처리내역'에 따르면 총 45건의 원전 고장 정지 중 제작 결함 17건을 포함해 총 26건이 불량부품 납품업체 책임으로 분류된 고장으로 나타났다.

한수원 손실액은 부품 교체 비용 14억원을 포함, 원전 정지 기간 동안 발전소를 가동했다면 발전 정산금 상당액인 5204억원 등 총 5218억원이다. 이 중 사업자가 배상 일부를 받은 건수는 총 11건이다. 금액은 95억원으로 손실액 대비 1.8%에 불과했다. 

◇ 해외서는 최소 10년···국내는 왜?

일각에서는 보증기간이 늘어날 시 제작비도 증가하므로 사업자가 저가에 납품을 받기 위해 2년 시한으로 계약을 맺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일반적인 원전 설계 수명 40년에 비해 증기발생기 보증기간은 상대적으로 짧다는 것. 결국 안전 대신 비용 절감을 선택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의 경우 증기발생기 보증기간은 평균 10~20년으로 책정돼있다. 지난 2012년 1월 미국 샌 오노프레 원전 3호기의 증기발생기에서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원전 사업자 측은 제작사인 미쓰비시중공업과 20년 하자 보증계약을 맺어 4500만달러(한화 약 52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바 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증기발생기 보존 프로그램이라는 부분에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는데 핵심 부품 단가를 저렴하게 책정하기 위해 2년 기한으로 정했다고 본다"면서 "원전이 저렴하다는 주장에 보증기간을 짧게 정한 영향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소장은 "제작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전제로 계약을 맺었을 것이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손해배상 청구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다만 주민들 입장에서 다른 업체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제작사와 사업자 측은 "업체 간 임의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제도나 공사 기간 등을 고려해 적정선에서 보증 기간을 정하는 것"이라면서 "원전 부품뿐만 아니라 타 업종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앞서 1996년 11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원자력안전기술원 등은 한빛 4호기의 첫 정기검사 당시 증기발생기 내부에서 이물질을 발견했다. 와전류 탐상 검사(ECT) 결과, 저주파에 있었던 잔류 물질 신호는 잡혔지만 해당 물체가 망치 형태의 금속 물질인지 여부는 파악이 되지 않았다는 것.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김성수 의원이 해당 기관에서 제출받은 자료로 알려지게 됐다. 한빛 4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지 1여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제작사에 문제를 제기했다면 추가 비용이 필요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해당 사안에 대한 제도적 개선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국가 중요 위험시설에 한해 하자담보책임 기간 연장과 불법 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된 특별법 발의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한 법무법인으로부터 받은 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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