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항 칼럼] 위기발생 원인-무리수
[김진항 칼럼] 위기발생 원인-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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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항 안전모니터봉사단중앙회 회장(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예비역 육군소장)
김진항 안전모니터봉사단중앙회 회장(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예비역 육군소장)

'무리(無理)'의 사전적 의미는 도리(道理)나 이치(理致)에 맞지 않거나 정도(正道)에서 지나치게 벗어남이다.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하니 문제가 생기고 사고로 표출된다. 그 사고에 대한 관리가 부실할 경우 위기로 이어진다. 

무리가 위기를 만드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 시스템을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리는 왜곡(歪曲)을 부르고 왜곡은 위기를 낳는다. 

세종시로 간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국회와 청와대에 오가느라 시간을 대부분 고속도로에서 보낸다는 비판이 일자, 화상회의를 대안으로 내놨다. 세종시 화상회의 할당제다. 

업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화상회의 시스템을 이용하자는 것은 정보기술(IT) 시대 우리나라에서 당연히 있어야 하고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 화상회의를 공무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공무원들은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껄끄럽게 생각한다. 

그 싫어하는 화상회의를 세종시 이전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상부에서 강제로 월 몇 회로 할당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당장 화상회의 할당제 숫자를 채우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할당제를 충족하기 위한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의는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기 위함인데, 화상회의를 위한 회의나 하게 되니 근본 목적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정해진 화상회의 숫자 채우기 회의만 하고 있으니 목적과 수단이 완전히 바뀐 왜곡 현상의 전형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중앙정부 업무 수행체계에 위기를 발생시킨다. 

이런 일들은 국가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나 가정, 개인에게도 흔히 일어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수는 반드시 왜곡을 부르게 된다. 시험을 치는 것은 공부를 잘했는지 점검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공부를 잘하게 하는 수단 기능을 한다. 그런데 시험 점수에 지나친 관심을 갖게 되면, 공부는 하지 않고 그 점수 따는 방법에만 골몰하게 된다. 내용은 모르면서 그저 답을 쓰기 위해 외우기만 한다든지 아니면 커닝을 해서라도 점수를 올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게 된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높은 시험 점수만을 강요하면 반드시 일어나는 현상이다. 부모의 무리한 점수 요구는 필연적으로 왜곡된 시험행태를 부르고, 왜곡된 아이의 학교생활은 상급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지는 위기를 맞거나, 더 심하면 거짓말을 하고, 부정한 짓을 하는 습관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위기로 나타난다. 

회사에서도 하부조직에 무리한 성과를 요구하면 당장의 불편을 모면하고자 부정한 방법을 쓰거나 허위보고를 일삼게 된다. 그것이 누적되면 반드시 경영위기를 초래한다. 이러한 현상은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경직된 조직에서 더 심하다. 특히, 한번 실패하면 재기하기 힘든 문화를 가진 조직에 잘 나타난다. 

무리수는 반드시 본질을 왜곡시킨다. 사람은 먹어야 사는데, 맛있는 것을 너무 많이 먹으면 비만해지고, 비만이 온갖 병으로 이어져 비싼 약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키는 것은 인격도야를 위해서인데 부모가 점수 타령을 하면서 들들 볶으니까 점수를 따는 기술만 배우고 마침내 성적표를 조작하는 사태로 커진다. 얼마 전 한 영재(英才)가 미국의 여러 명문대학교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게 그 좋은 사례다. 

현대 생활에서 돈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돈에 욕심을 부리다가 삶을 망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돈이 필요한 이유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인데 더 많은 돈을 벌려가 삶 자체를 망가지게 한다. 경제인이 탈세하고 뇌물주고, 정치인이 이권에 개입하다가 결국은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것을 자주 본다. 

파출소별 범인 검거 경쟁을 시키면 그 숫자를 채우기 위해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권위주의시절 사회를 정화하겠다고 우범자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여 '삼청교육대' 라는 것을 만들어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람을 교화시키겠다고 좋은 의도로 시작했으나 실적 올리기에 골몰한 현장에서는 전혀 엉뚱한 사람을 잡아가는 바람에 두고두고 문제로 남았다. 국가나, 기업이나, 가정이나, 개인 할 것 없이 무리수는 반드시 왜곡을 낳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실적주의를 내세우면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달성할지 모르나 반드시 폐해(弊害)가 나타난다.

2010년 2월 아키오 도요타 자동차 사장은 미국 연방하원 청문회에서 가속페달 결함을 인정하고 미국 소비자들에게 총 12억달러(약 1조4000억 원) 보상을 약속했다. 세계 각국에서 팔린 1000만대에 대한 리콜도 단행했다. 당시 세계 1위(판매량 기준)이던 도요타는 연간 1000만대(936만대) 생산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원가절감을 위한 무리한 성과주의 탓에 부품 결함을 방조하다가 리콜 사태를 맞았다. 

같은 맥락에서 폴크스바겐(VW) 사태는 '제2 도요타' 사태로 불린다. 세계 1위로서 연산 1000만대를 앞두고 대규모 리콜로 주저앉은 탓이다. 폴크스바겐은 2015년 상반기 504만대를 팔아 도요타를 2만대 차이로 누르고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만에, 1937년 창사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 1등에 매달린 무리수를 둔 인천국제공항도 보안문제로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서비스 분야 세계 1등을 유지하려는 국토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무리한 업무 지시는 보안 분야 업무를 소홀하게 만들었다. 

인천공항은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10년째 1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 평가의 주요 지표가 승객 출입국 시간 단축이다. 이 지표 점수를 올리는 것이 인천공항의 중점 목표였다. 베트남인이 자동출입국심사대를 강제로 열고 나오는 과정에서도 이를 지켜봐야 할 출입국 심사요원은 입국장에 승객들이 몰리자 자리를 비우고 이를 조정하는 일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공항의 보안이 이처럼 허술한 것은 서비스 평가 지표에만 극단적으로 목을 맨 무리수의 결과다. 모든 시스템에서 무리수를 두는 것은 당장에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그 결과는 위기로 나타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숙취나 교통사고도 모두 무리수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술자리를 가지는 것은 다반사지만 무리하게 과음하고 나면 다음 날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것이 누적되면 조직 내에서 결코 좋을 평가를 받지 못한다. 조기 퇴직하는 단초가 된다. 천천히 나타나는 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과음은 폭력이나 음주운전으로 이어진다. 당장 위기로 나타난다. 처벌을 받거나 벌금을 물어야 하며 심하면 인격적 위기로 발전할 수도 있다. 

교통법규 준수하면서 좀 천천히 운전하면 좋은데 조금 빨리 가겠다고 무리하게 끼어들거나 과속하면 필연적으로 사고를 낸다. 교통사고는 다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냥 다치면 자기 자신의 위기 상황이지만, 죽으면 가정의 위기를 만든다. 무리하게 빨리 간다고 해도 시간 상 큰 이익도 없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이다. 

자연의 속도에 따라 무리하지 말고 순리를 따라 사는 것이 전략적 삶이다. 그렇게 되면 위기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무리 아닌 순리를 머리에 새겨야 한다. 그것이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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