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압수수색 사진촬영 가로막는 검찰
[기자수첩] 압수수색 사진촬영 가로막는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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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알 권리. 오용과 남용이 빈번한 개념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익 추구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알 권리를 끌어다 쓰는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시민들이 국내 언론에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 알 권리가 '정의에 대한 욕구'로 치환되는 것을 시민들은 경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권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즉 '무엇을' 알 권리인지 개념을 확장시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언론이라면 이 '무엇'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의혹들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한진그룹 총수일가에 대해 검·경과 관세청, 공정거래위원회까지 기관을 불문하고 칼을 겨누고 있다. 지난주는 이들에게 악몽이었다. 조세포탈 혐의를 수사 중인 검찰이 한진빌딩과 관련업체 20여 곳을 대상으로 이틀 연속 압수수색을 벌였기 때문이다. 검찰은 총수일가 금융 계좌 일부에서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하고 승계를 위한 비자금 축적으로 이용됐는지 여부도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 

압색이 진행되는 날이면 독자들이 기대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기관 로고가 박힌 박스를 포함한 들고 나오기도 벅찬 양의 압수품들이다. 수사관들이 압수품이 든 박스를 나르는 현장 사진은 사정기관이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그러나 압수수색 기사에 이 같은 사진이 없다면 독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지난 24일 오전 서울남부지검 형사 6부(김종오 부장검사)는 서울 중구 소공동 한진그룹 본사 등 10여 곳에 수사관 30여 명을 보내 동시 압수수색했다. 압색이 마무리됐을 오후 5시께 각종 매체에는 압수수색을 끝냈다는 현장이 담긴 사진들이 오르내렸다. 검찰 로고가 박힌 파란색 박스와 일반 박스를 겹겹이 포개어 수레 위에 올려두거나 압수품을 차량으로 옮겨 싣는 모습들이다.

반면 다음 날인 25일 검찰이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공동대표로 있는 미호인터네셔널 등 한진그룹 관계사 10여 곳을 압색할 때는 현장 사진이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전날 한진빌딩 압색의 연장선상인데도 말이다. 왜일까. 최소 1곳은 이유가 있었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미호인터네셔널을 압색한 검찰 관계자들은 확보한 압수품을 옮기는 과정에서 기자의 사진 촬영을 가로막았다. 

이날 오전 9시 30분께 기자가 해당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앞을 방문했을 때 남부지검 관계자 6~7명은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한 달 전부터 불거진 '통행세 의혹'에 회사가 문을 걸어 잠궜기 때문에 호출한 직원이 와서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신분을 밝힌 기자가 "여기 직원이냐 혹은 최소 관련자냐"라고 묻자 검찰 관계자는 "그냥 갈 길 가시라"면서 소속을 밝히길 꺼려했다. 기자가 남부지검에서 나온 것을 알게 된 건 수사관 중 한 명이 들고 있던 서류봉투 때문이었다.

검찰은 1시간 30분에 걸친 압수수색을 마무리한 후 건물 밖으로 압수품 박스 2개를 들고 나오면서 기자의 카메라를 종이 등으로 가렸다. 대기된 차량에 박스를 싣고 나서도 한참 동안 실랑이가 이어졌다. 기자가 "도대체 왜 이걸 못 찍게 막는 것이냐. 이해가 안 된다"고 항의하자 수사관들은 "기사는 어쩔 수 없지만 사진은 안 된다"고 끊임없이 제지했다. 압수수색 현장에 있었던 언론인은 기자 혼자였고, 검찰 측의 방해로 남길 수 있었던 사진은 압색 진행 중인 사무실에 불이 켜진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전부였다.

당시 남부지검 측은 "압색 담당 수사관들과 상황 공유가 되지 않아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해명할 뿐이었다. 이날 압수수색은 검찰청 출입 기자들에게도 사전에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과 압수수색 결과 소득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언론에 현장 사진이 노출되는 것이 부담될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만약 전자의 이유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언론은 공개된 것만 취재해야 하는가. 

앞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2016년 10월 26일. 미르재단을 압색한 후 압수품 박스를 들고 나온 검찰에게 세간의 의혹이 쏟아졌다. 압수품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박스가 텅 빈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성인 남성 2명이 들 수 없을 정도의 박스들을 번쩍 들고 나온다거나 카메라 플래시가 박스에 투영돼 텅텅 빈 것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 같은 모습이 담긴 사진이 인터넷이 퍼지자 누리꾼들은 "공기 1㎥ 압색한 검찰", "이젠 검찰이 쓰레기 청소까지 해준다", "역시 투명한 검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참을 수 없는 압색의 가벼움'이라는 제목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이 사진 촬영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검찰이 미호인터네셔널을 압수수색하기 약 3주 전부터 해당 건물 소유주인 태일통상의 대표와 임원 등 관련 직원들은 지속적으로 사무실에 드나들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1층부터 4층까지 건물 전체를 태일통상과 미호인터네셔널이 공동으로 사용한 사실도 밝혀졌다. 시간은 충분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증거인멸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날 오전 기자는 압수수색 전 수사관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던졌다. "아니 이제 와서 압수수색하면 뭐 합니까. 사무실 드나들면서 증거인멸 다 했을 수도 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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