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항 칼럼] 위기발생 원인-자만과 오만
[김진항 칼럼] 위기발생 원인-자만과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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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항 안전모니터봉사단중앙회 회장(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예비역 육군소장)
김진항 안전모니터봉사단중앙회 회장(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예비역 육군소장)

'교병필패(驕兵必敗)'란 고사성어가 있다. '교만한 군대는 반드시 진다'는 뜻이다. 이를 잘 설명해주는 게 《십팔사략(十八史略)》에서 볼 수 있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이다. 이 말은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 왕 양공(襄公)이 적을 불쌍히 여겨 공자목이(公子目夷) 장군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가 오히려 초나라에 패한 것을 세상 사람들이 비웃었다는 일에서 유래한다. 

양공은 초나라와 싸우기 위해 강 맞은편에 먼저 진을 쳤다. 전투 준비도 마쳤다. 초나라 군사가 강을 건너자, 송나라 장군 공자목이가 양공에게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양공은 "그건 정정당당한 싸움이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참다운 패자가 될 수 있지 않은가"라면서 듣지 않았다. 

강을 건너온 초나라 군사가 진용을 가다듬고 있을 때, 또다시 공자목이가 "적이 미처 진용을 가다듬기 전에 치면 적을 지리멸렬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건의했다. 그래도 양공은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라고 맞받았다. 자만에 빠져 지혜로운 장군의 말을 외면한 것이다. 

결국 송나라는 크게 패했다. 양공은 이 싸움에서 부상을 입어 이듬해 죽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나눠 가질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두고 경쟁할 때, 승리를 대신할 것은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승리만하는 게 옳다. 그래야 나라를 구하고 국민의 생존을 지킬 수 있다. 주어진 유리한 경쟁의 틀을 걷어차 버리고 의로움을 과시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험에 빠뜨리는 짓은 어리석다. 송나라 양공은 자만과 오만 탓에 목숨까지 잃었다. 

우리나라에도 '나무에 잘 오르는 사람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수영 잘 하는 사람은 물에 빠져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잘한다고 자만하거나 오만하지 말라는 경구다. 초보 운전자보다 운전 경력이 많은 사람의 교통사고 확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다. 이것 역시 자만과 오만의 결과다. 자만과 오만은 부주의를 불러오고, 부주의는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이 자만하거나 오만한 자세로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면 변화에 뒤처지고 만다. "3대 가는 부자 없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서양에서도 "100년 가는 기업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나아가는 속도가 그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위기다. 

위기는 전진하는 속도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줄어들기 시작하는 순간 시작된다. 그러나 성공에 도취된 최고경영자(CEO)는 위기의 시작을 알아채지 못한다. 중력은 조직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그 조직 구성원의 타성, 경쟁자, 사회의 변화, 성공 아이템의 라이프사이클 등이다. 

독일 문구기업 파버카스텔은 성공의 덫에 걸리지 않고 250년을 넘겼다. 캐비닛 제조업자 카스파르 파버가 1761년 창업한 파버카스텔은 문구기업으로 변신해 연필의 표준을 만들었다.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장애물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며 성장한 기업이기도 하다. 중력의 힘이 전진 속도를 늦출 때마다 파버카스텔은 기존 연필에 새로운 라이프사이클을 만들어줬다. 

연필을 '문자를 적는 도구'라고 정의한 라이프사이클에서 성장의 한계에 도달하자 파버카스텔은 '생각을 여는 창'으로 연필 정의를 바꿨다. 새로운 라이프사이클을 부여한 셈이다. 연필을 생각을 여는 창으로 정의하자, 필기감이 신경을 거스르지 않게 연필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제기됐다. 연필심이 부러져 생각의 맥이 끊어지는 일을 막아야 했다. 물론 연필을 필기도구로 정의하더라도 부드럽고 단단한 느낌을 주는 게 좋다. 하지만 생각을 여는 창으로 정의하자 더 좋은 연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커졌다. 

2000년 파버카스텔은은 책상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게 만든 육각형 모델에서 벗어나 삼각형 단면을 갖되 표면에 돌기를 붙여 쉽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만든 연필 '그립 2001'을 선보였다. 최근엔 '쓴다'는 연필의 본질을 확장해 마스카라 같은 화장품을 출시했다.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새로운 라이프 사이클을 부여하면서 기업의 성장 동력을 유지하는 셈이다. 

보잘 것 없는 능력을 믿고 자만하거나 오만을 부리면 위기를 맞게 된다. 반대로 세상의 변화를 읽고 겸손한 자세로 대응하면 새로운 라이프사이클을 만들어 장수할 수 있다. 최근 국내 정치나 경제 영역에서 발생한 위기는 대부분 자만과 오만의 결과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보수세력의 궤멸은 2016년 총선 공천과정에서 권력자들이 휘두른 자만과 오만에서 시작됐고, 대한항공의 위기는 철없는 두 딸의 오만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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