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조용하지만 강한 LG 만든 구본무 회장, 영면하시길
[데스크 칼럼] 조용하지만 강한 LG 만든 구본무 회장,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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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전수영 기자] 마지막 가는 길도 조용하고 검소하고 단출하다. 생전에 그를 알던 이들이 말한 것처럼 구본무 회장은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다른 이들이 번거로워하는 것을 꽤나 미안해한 것 같다. 자신을 추모하기 위해 보내오는 조화도, 조문객도 가급적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하니 그의 성격을 미뤄 짐작할 수 있겠다.

국내 재계순위 4위의 LG그룹을 이끌던 고(故) 구 회장은 7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일군 업적은 실로 크다. 글로벌 시장에서 백색가전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고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냈다. 여기에 디스플레이 부문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일궜다. 무엇보다 구 회장은 LG를 강한 기업으로 키웠다. 조용하지만 각자의 역할을 완수하는 기업으로 만든 것이다.

특히 구 회장은 우리나라 재벌들이라면 흔하게 겪는 경영승계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다른 기업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경영권 다툼도 아들 구광모 상무에게 힘을 실어주며 장자 상속의 원칙을 지켰다. 볼썽사나운 형제간 이전투구도 구 회장 생전에는 전혀 없었다.

LG는 신제품과 신기술을 제외하고는 집안 문제로 쓸 만한 기사가 거의 나오지 않는 기업이다. 동업을 하던 허씨 일과와의 분리 과정에서도 뒷말이 하나도 나지 않았으며 오너일가의 일탈은 더더욱 찾기 힘들 정도여서 언론인 사이에서 LG는 지금도 '재미없는' 기업에 손꼽힌다.

원칙과 정도를 지킨 구 회장의 모습은 지난해 생중계됐던 청문회에서 더욱 빛났다. 그는 전경련이 설립 취지와 달리 정부와 재계 사이에서 정경유착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전경련은 친목단체로만 유지해야 한다"고 답하며 소신을 드러냈다. 더욱이 정부가 돈을 내라면 내겠냐는 질문에도 "불우이웃 돕는 일은 계속하겠다"며 고개를 숙이고 연신 '잘못했다'고 읍소하는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LG트윈스는 1990년대 초중반 '신바람 야구'로 돌풍을 일으켰다. 운동선수답지 않은 준수한 외모에 키가 더욱 커보이는 스트라이프 무늬의 유니폼은 야구와 동떨어져 있던 여성들을 야구장으로 불러 모았다. 거기에 '유광점퍼'는 LG트윈스 팬들만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구 회장은 몇 년 전까지도 운동장을 찾아 경기를 직관(직접관람)을 하며 야구에 대한 사랑, 팬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몇 년 전 LG그룹 홍보실 임직원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회의실이었는데 가운데 놓인 테이블에 구 회장 젊은 시절의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총수 사진이 테이블에 끼워져 있는 것이 의아해하던 기자에게 한 임원이 "참 좋으신 분이죠. 이때는 젊으셨는데... 다시 한번 그때처럼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라고 말했다. 그 말은 기자를 앞에 두고 하는 멘트가 아닌 함께 고생하고 직원들을 격려하는 총수에 대한 존경이 담겨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임원의 바람은 이제 이뤄질 수 없는 꿈이 됐지만 그에게 구 회장은 아주 훌륭한 인생 선배로 남을 것이다. 기자도 그렇고 그 임원도 기원할 것이다. 구 회장께서 좋은 곳에서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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