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환율 이야기
[홍승희 칼럼] 환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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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원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환율상승에 걱정하는 소리들이 들리지만 과거 계획경제 시절엔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환율상승을 부추기기도 했다. 수출실적을 올리겠다는 단순한 발상에서였다.

저가 상품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정부 정책을 보며 봉급생활자들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가만히 앉아서 월급 깎이는 걸 감내해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원화 소득은 그대로이지만 달러 베이스 소득은 자동 감소하는 것이니까.

이과 전공자인 필자는 당시 학교 막 졸업한 신출내기로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처지라 환율과 내 개인 소득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기에도 벅찬 처지였다. 하지만 환율이 내 소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부는 내년 3월부터 단계적으로 외환시장 개입내역을 공개해 나가기로 했다. 외환위기를 겪기도 했던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상당한 결단이 필요한 일이지만 OECD회원국 가운데 우리만 유일하게 내역 공개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 환율조작국 의심도 받는 등 국제사회의 압력을 상당히 받고 있어서 피해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이미 외환거래가 기업은 물론 개인들에게도 일정 정도 허용된 마당이니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특별한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야말로 시장기능에 맡겨두는 게 어설픈 개입보다 더 안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므로.

정부의 잦은 환율 개입은 오히려 경제 전반의 선순환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환율이 단지 환율 자체만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무역뿐만 아니라 국제수지를 결정하는 여러 요소에 금융 등 다수의 변수들과 상호 교집합을 이룰 부분이 많은데 단순하게 시장 개입에 나서봐야 혼란을 더 키울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외환시장이 개방되던 초기에 서투른 환 투자에 나섰다가 환차손을 경험한 기업들이 제법 있었고 그 중에는 일부 금융기업들도 포함됐었다. 앞으로도 그런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들이 환율 대응에 애로를 겪을 가능성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한국경제가 규모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성장통일 뿐이었다. 이제는 그런 위험을 정부가 홀로 책임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부의 과도한 책임감이 과거의 외환위기를 초래하는 데 한 몫 했었음을 상기하면 비상상황이 아닌 한 정부 개입은 최소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스스로가 가진 능력과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에 워낙 강대국들만 있다 보니 자꾸 스스로를 작다, 가난하다고 세뇌시키며 위축되려 한다. 그런 열등감이 약소국 국민들 앞에서의 지나친 허세와 차별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직 우리가 선진화되지 못한 대표적 모습이다.

어쩌면 최근의 남북정상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 등의 진행과정에서 일부 보수적 여론이 보여주는 부정적 평가도 우리 사회가 미처 떨쳐버리지 못한 콤플렉스의 발현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의 운전자 역할을 자임했을 때 한국이 그럴 힘이 있느냐며 보수여론들이 보였던 국가적 자기 비하도 마찬가지로 열등감의 발로였다.

각설하고 환율 얘기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외환위기를 겪고 난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상당한 트라우마를 가져왔다. 우리가 기껏 일궜던 경제성장의 결실이 국가부도로 하루아침에 다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사회적 불안감은 필사적으로 금 모으기에 동참하게 만들었었다.

물론 재벌기업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그런 국가적 열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잘 알려진 바가 없지만 일반 국민들은 아이 돌 반지까지 내놓으며 외환위기가 하루빨리 극복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정부와 대기업들이 싸질러 놓은 것들을 왜 우리가 치워야 하느냐는 불만을 토해내면서도 문제해결에 한손 거들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는 않았다. 금붙이 따위는 없던 필자 또한 해외여행 경비 중 남은 백 몇 십 달러인가를 은행에서 바꾸는 것으로 국민적 열망에 동참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의 위기감 때문에 한국 정부는 꾸준히 외환보유고를 늘려왔다. 이번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결정하는 데는 그런 외환보유고가 든든한 밑받침이 됐다. 이번 정부 결정은 적당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은 훨씬 더 정밀해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소득 몇푼보다 훨씬 중요한 내실을 다져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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