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국무총리가 필요한 일
[홍승희 칼럼] 국무총리가 필요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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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에서 국무총리가 조명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마치 과거의 전통적인 가정에서 남편은 집안을 대표해 바깥일을 하며 제 얼굴을 알리는 데 비해 집안을 안정시키고 이끌어 나가는 아내들은 그 존재 자체가 드러나는 일이 없었던 것처럼 내각을 챙기고 정부를 안정시켜가는 국무총리의 존재는 늘 그림자 취급을 당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제는 국무총리가 좀 더 국내 정치 일선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대통령이 남북문제나 국제정치 무대에서 할 일이 넘치는 요즘 같은 때는 더욱 더 국내 정치의 부담을 국무총리가 적극적으로 분담하는 모습이 아쉽다.

남북관계가 진전돼 갈수록 한국의 국제정치적 입지 또한 넓어져 갈 것이니 앞으로도 국제 정치무대에서 대통령의 할 일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도 대통령의 외교 행보는 더 늘어나야만 한다. 정치와 경제가 한묶음으로 움직여 가는 게 이즈음의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니까.

물론 중간선거 급의 보궐선거를 앞둔 야당들은 어떻게든 대통령의 치솟는 인기에 제동을 걸기 위해 발버둥 치겠고 어떻게든 대통령과 만나야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므로 국무총리를 찬밥 대접할 가능성은 많다. 그럼에도 국무총리가 나서서 국회와의 교섭을 늘려 가면 야당의 떼쓰기도 다소 완화될 수는 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데 서툰 필자가 요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배워가는 일 중의 하나는 관심을 못 받아서 혹은 잘못을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어서 등등의 이유로 떼쓰는 이들은 혼자만 힘들고 혼자만 외롭고 아프다고 느끼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하소연과 푸념을 그저 잘 들어주기만 해도 꽤 위로를 받는 듯하다. 그러고 나면 격했던 감정이 다소는 가라앉고 안정을 보이기도 한다. 괜스레 훈수 따위를 둘 필요는 없다. 오히려 서툰 설득은 화만 돋울 뿐이니까.

대통령의 뜻을 들고 비서실장이 여기저기 드나드는 것은 종종 대통령을 코너로 몰기만 한다. 대통령의 수족이고 복심이어야 할 비서실장보다는 상대적으로 한발 거리를 둔 정치동업자이자 행정책임자로서 국내정치 전면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첨예한 칼날을 거두게 하기 더 적합하지 않겠는가. 시선 분산 효과도 있을 테고.

게다가 지금 야당들이 주장하는 개헌 방향을 생각해봐도 국무총리가 이 시점에서 좀 더 적극적인 정치행보를 시작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국내 정치가 국제정치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깎아먹지 않도록 하면서 국무총리의 활동무대를 내각을 넘어 국내 정치 전반으로 넓혀나가는 게 여러모로 국가발전을 도모하는 길이 될 듯하다.

국무총리가 정치일선에 나서는 일을 꺼릴 법적 이유는 없어 보인다. 다만 대통령 대신 칼 맞고 싶지 않은 보신주의 때문이 아니라면.

물론 국제정치보다 국내 정치에 더 관심 많은 대통령이라면 국무총리가 나대는 걸 꺼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문재인 정부에서라면 그런 문제는 좀 덜 해 보이는 데 그게 단지 국외자, 관찰자의 시각만은 아니지 싶다.

물론 그렇다고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뜻과 기대를 외면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정부의 지향하는 바를 공유하는 바탕 위에서 국무총리가 좀 더 정치력을 드러내 보여도 좋겠다는 제안일 뿐이다.

한국은 지금 당장 통일까지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앞으로 대외 관계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또 보다 많은 역할을 요구받게 될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우리가 수고하는 것에 비해 손에 쥐어지는 성과는 적을 수도 있는 과도기를 겪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 무대에서 입지를 넓혀가야만 지금처럼 출구가 막혀버린 듯 답답해 보이는 경제 현실을 돌파하고 나갈 동력도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입으로는 열심히 글로벌 경영을 외치고 있는 재벌기업들도 국제적 흐름에 늘 뒤 쫒아가기 급급할 뿐 흐름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돈이 있어도 투자할 데가 없다는 한탄만 늘어놓는다. 빠르게 흐르는 기술발전 시계는 외면한 채 후진적 갑질 논란의 파문만 일으킨다, 앞으로 대통령은 그런 미성숙한 기업들을 세계적 기술경쟁의 장으로 떠밀어 넣는 역할도 해야만 한다. 한국경제의 발전단계가 현재 그렇게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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