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종의 세상보기] 함흥냉면, 동해선 그리고 통일
[김무종의 세상보기] 함흥냉면, 동해선 그리고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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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는 설악산, 앞으로는 동해 바다가 펼쳐 있는 필자의 고향은 함경도 출신의 이북 실향민들이 많이 모여 산다. 소위 아바이마을이라고 원빈과 송혜교가 출연해 공전의 히트를 친 드라마 가을동화에도 주인공 은서네집으로 나오는 해안가 마을이다. 이곳 주민들은 주로 갯배를 타고 시내를 오고 간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속초관광수산시장(옛 중앙시장)에서도 도보로 갯배까지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1999929일 김대중 대통령은 아바이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다.

정작 필자는 어릴 적 그곳이 아바이마을인지도 몰랐다. 그저 학교에 가는 날이면 그 동네 사는 친구가 갯배를 타고 건너 우리 집에 들러 함께 자전거로 통학하곤 했다.

가자미 회를 양념해 얹은 매운 맛의 함흥냉면은 필자에겐 일상의 음식이었다. 유래가 무엇인지, 북에서 만들어진 음식인지를 어린 당시에는 몰랐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간 동네 식당에서, 어린 입맛에는 맵기 그지 없지만 중독성이 있어 시원하고 단맛 나는 배와 따듯하고 진한 육수로 혀의 얼얼한 기운을 달래며 즐기곤 했다. 그 냉면이 고향에 이북 출신의 실향민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널려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어릴 적 냉면은 함흥냉면이 전부인 줄 알았다. 다른 냉면이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 올라와서다. 대학가 분식집에서 시킨 냉면이 당연히 함흥냉면인 줄 알고 주문했지만 낯선 냉면이 나와 당혹해 했던 기억이 난다. 겨자 소스 등을 넣어 먹는 지금의 물냉면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더욱 관심을 받고 있는 평양냉면도 태생은 함흥냉면과 마찬가지로 북한이지만 필자는 서울서 처음 접했다. 지금은 평양냉면의 풍미를 알고 있지만 처음 대할 때는 심심하고 밍밍해 입맛에 전혀 맞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함흥냉면에 길들여진 탓일 것이다.

평양냉면은 4ㆍ27 남북정상회담의 또다른 성과이다. 시민들은 초여름 날씨가 다가오며 남북 교류와 통일의 기대감에 더해 너도나도 평양냉면을 찾았다. 무엇보다 고단한 일상 속에 평화라는 분위기가 감칠맛 역할을 했으리라.

평양냉면이 널리 회자되면서 함흥냉면을 즐기는 아바이마을 등지의 실향민들이 더욱 생각난다. 이들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으로 북에 두고 온 가족과 지인을 만날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 속의 기대감을 갖고 있다. 앞으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고저남은 소원이라면 두고 온 이북의 고향 땅을 한번 밟아 보고 혈연을 찾아보는 것이다.

지난 2010113일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금강산에 열렸을 때, 아바이마을 실향민으로는 처음으로 김동율 할아버지가 61년만에 딸 김옥화씨와 외손자를 상봉했다.

남북 정상의 만남에서 남북을 잇는 철도 얘기가 나왔다. 강릉에서 속초를 지나 제진(고성)까지 끊긴 동해선 철로가 이어지리라는 기대감이 피고 있다. 이로써 부산부터 남북을 잇는다면 언젠가는 시베리아, 중국, 몽골을 이어 저 멀리 유럽까지도 이어지리라. 상상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김무종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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