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홍승희 기자] ‘짐세’라는 사라진 단어가 있다. 지금은 사용되지도 않고 국어사전에도 오르지 않는 표현이지만 설명되기로는 선천과 후천의 틈새를 뜻한다.

바꿔 말하면 기후변화가 극심하고 사회적 변동 또한 요동치는 변혁의 시대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요즘 전 지구적 기후변화나 한국 사회의 격동을 바라보면 아마도 이런 시대를 의미하는 단어로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시대로 가는 틈새의 혼란과 혼돈이 켜켜이 쌓여가며 한국사회를 요동치게 하는 모습이야 말로 짐세의 현상인 듯 하지 않은가.

그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위계에 의한 성폭력 문제, 피감기관 돈과 푼돈 모아 쌓인 정치자금을 제 주머닛돈과 구분하지 못한 채 그 피감기관을 감독하고 개혁하려 덤비는 행위, 협정 내용에도 담긴 노동운동 보장 문제를 수용하지 못하고 한`EU 포럼 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한국 경영자 대표들,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면서도 회사 차원에서 노조 와해를 시도한 조직적 증거가 드러난 국내 대표기업, 그런 기업들을 모방하며 유독 한국에만 오면 노동자를 공깃돌처럼 여기는 외자기업들 등이 바로 그런 짐세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주체로 보인다.

그렇다고 표면에 드러난 그들만의 문제일리는 물론 없다. 그들 말대로 관행처럼 습관처럼 해오던 일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바로 이 시대가 그런 잘못된 관행, 습관 등을 바로 잡아나가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를 키워주고 있다. 촛불민심이 원하는 것을 왜 하필 그 민심을 이끌었음직한 이들부터 적용하는지 억울할 수도 있겠다. 당사자들로서는.

그러나 혁명의 시기에는 바로 그들의 입지가 가장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지 않은가. 프랑스 혁명시기 혁명가들 사이의 이념논쟁, 조직투쟁의 과정에서 많은 혁명가들이 단두대 아래 사라져 갔고 러시아 혁명 기간 중에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졌었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서로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가. 그들이 모두 도덕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만 민주주의를 지켰다고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투쟁과 혁명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고 이제 커가야 한다. 그러자면 끊임없이 다듬어주고 보듬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을이면 전지가위에 잘려나가는 가지들처럼 역사는 또 그렇게 골라내기를 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해 나가는 일들이 어느 특정인 하나를 끌어내리고 몰락시키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역사의 발전이 너무 더뎌진다. 우리 사회가 가진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는 과정에서는 가장 부패한 자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덜 부패한 자들이 먼저 쳐내질 수 있다. 그들이 더 도덕적 기대를 받았으므로.

물론 국정운영을 소꿉놀이와 구분하지 못한 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이 되어서도 사업가로서의 개인을 벗어던지지 못한 전직 대통령의 경우는 덜 부패한 게 아니라 그들의 자리가 가장 높고 큰 영향력을 가졌었기에 더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경우겠다.

지금 정부 인사를 물고 뜯는 야당이야 어차피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건건찝찔한 건더기만 있으면 침소봉대하며 달려들 테지만 그렇다고 정부 여당이 그걸 비난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야당이 여론을 뒤흔들고자 할수록 정부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말고 더 도덕적 잣대를 엄정히 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 추락하는 이들이 오랫동안 권력의 변두리에만 있었던 탓에 그들이 쥔 권력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변두리 시절의 정서로 행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 제1 야당이 어떤 게 야당다운 것인지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무조건 발목 붙들고 늘어지자고 덤비는 것만큼이나 정부 여당 또한 제대로 지금의 힘과 권력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 늘 성찰하고 스스로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들은 진보 정권에 더 엄격한 도덕적 요구를 할 수 있고 또 촛불민심이 세운 현 정부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하게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런 민심이 등 돌리지 않게 하려면 인사 검증에 있어서도 더 도덕적 검증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흙탕물 속에서 홀로 깨끗한 연꽃만 등용할 수도 없으니 참으로 답답하긴 하겠지만 국민들이 진보정권에 원하는 것은 ‘답습’ 대신 ‘개혁’이고 ‘개척’임을 늘 명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