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구멍 뚫린 아모레퍼시픽 위기관리시스템
[기자수첩] 구멍 뚫린 아모레퍼시픽 위기관리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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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아모레퍼시픽이 사과와 변명을 반복하며 줄타기하고 있다. 위탁생산하는 일부 화장품에서 중금속 '안티몬'이 초과 검출된 것과 관련해 20일 오전 8시 소비자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불과 10시간 만에 안티몬이 피부에 유입될 확률은 낮다고 설명자료를 보냈다. 부정확한 정보가 과도한 우려를 양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전달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설명자료에서 '캐나다 보건당국' 자료를 인용해 '안티몬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임을 강조했다. 일상생활로도 매일 약 5마이크로그램(㎍) 안티몬을 먹을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화장품의 경우 음식이나 물과 달리 피부에 바르기 때문에 인체에 흡수될 가능성이 작다고도 했다. 안티몬이 약 50㎍ 들어있는 5g짜리 컨실러를 한 달간 다 발라도 하루에 흡수되는 양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허용한 기준치의 0.5% 수준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펼쳤다.

소비자들의 걱정을 잠재우려던 아모레퍼시픽은 도리어 역풍을 맞았다. 누리꾼 사이에선 '반성은 안 하고 변명만 하는 걸 보니 소비자를 우습게 보는 모양이다' '기준은 왜 있고 그걸 지키는 기업들은 뭐냐' '발뺌하지 말고,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안티몬 안전성을 두고 진실게임을 벌이려는 태도로 비쳐 더 많은 원성을 산 모양새다.

아모레퍼시픽의 이른 사과에 반가웠다. "사과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투명하게 모든 잘못을 밝혀야 한다." 최근 만난 위기관리전략 연구가인 김진항 안전모니터봉사단중앙회 회장(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실장)의 충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2년 전 아모레퍼시픽이 '리스크관리사무국'이란 위기관리조직까지 꾸리면서 '안심'에 공을 들인 게 생각나 '역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6시30분 마치 억울함을 토로하듯 배포한 설명자료는 실망감을 불러일으켰다. 안티몬에 대한 논란이 확대 해석돼 다소 억울했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사과를 하고자 했다면, '나'의 해명보단 '너'의 입장에 서서 마음을 다독이는 데 집중해야 했다.

아모레퍼시픽이 말하는 '균형 잡힌 시각'에도 의구심이 든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더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었다. 아모레퍼시픽 설명자료엔 '원칙적으론 안티몬이 화장품 원료로 허용되지 않았단 사실'이 빠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낸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안티몬 및 그 화합물'은 화장품에 쓸 수 없는 원료라고 명시돼 있다. 아모레퍼시픽 설명자료가 '일단 논란을 덮고 보자'는 식의 변명처럼 보이는 이유다.

다만 식약처는 화장품을 만들 때 인위적으로 넣진 않았지만, 제조·보관 과정 중 포장재로부터 이행되거나 비의도적으로 유래됐을 때 10㎍/g 만큼은 허용했다. 이마저도 비의도적이라는 사실이 객관적인 자료로 확인되고, 기술적으로 완전한 제거가 불가능한 경우를 입증해야 한다.

서경배호(號)가 최근 들어 크고 작은 암초로 흔들린다. 위기를 겪으며 내공을 쌓아 '원대한 기업(Great Brand Company)'을 향해 순항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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