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시작이 좋은 '2018 남북 관계'
[홍승희 칼럼] 시작이 좋은 '2018 남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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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 기자] 꽁꽁 언 땅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반도의 얼음을 녹이기 시작했다. 평창올림픽 북한 대표단에 포함된 특사를 통해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한지 한 달도 안 돼 대북 특사단이 파견됐고 또 기대한 수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에 왔던 북한 특사를 통해 전한 비핵화 로드맵이 북한에 의해 그대로 수용됐다는 점은 누구나가 놀랄 만한 성과다. 북한으로 하여금 왜 미국과의 대화가 꼭 필요한지, 어떻게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야 하는지 그 방법을 제시해 줌으로써 수월하게 북한의 동의를 끌어낸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과는 물론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도 눈길을 끌지만 취임직후부터 북한을 향해 평화의 메시지를 꾸준히 보낸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이 그 밑바탕에 있었음은 이번 우리측 특사단을 만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말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번 특사단이 가져온 성과는 앞으로 헤쳐가야 할 지난한 길에 첫발을 내딛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북한이 비핵화 논의에 나섰다는 점만으로도 그동안 한반도를 짓누르던 전쟁의 위기감이 해소됐다는 사실은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성과다.

고집불통인 북한과 미국이 대화에 나설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인내심이 존중받을 만하다. 처음 남북이 대화를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도 시큰둥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마저 일단은 상황의 진전을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 그 무엇보다 대단한 성과다.

무엇보다 이번 전개과정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가 돋보인다. 북한과 미국이 대화하도록 이끌고 판을 깔아주면서도 그 공을 스스로 차지하려 하지 않는다. 북한이 통큰 합의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압박이 먹혀들었다고 양쪽을 추켜세워 주며 우리는 한 발 떨어져 구경하는 자세를 보인다.

그래서 트럼프는 여전히 자기 자랑하기 바쁘다. 다 스스로가 이룬 성과라고 내세우면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은 싸우는 애들을 양쪽 손으로 끌어당겨 마주 보고 화해하게 만드는 어른 같다. 그런 태도가 미국도 북한도 대화의 장으로 나서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최종적 결실을 보기까지 힘든 과정이 있겠지만 기대할 수 있게 한다.

공을 세워 이름을 내기 위한 게 아니라 싸움을 말리고 대화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상 남과 북이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상처뿐이다. 통일을 이루고 싶어도 전쟁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 한반도를 주시하는 주변 강대국들의 침 흘리는 모습까지 굳이 보지 않더라도 전쟁은 산업화의 결실을 모두 초토화시키고 6.25를 넘어서는 인명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모든 걸 잃은 한반도를 얌전히 구경만 할 이웃들인가.

북한도 폐쇄적인 경제체제로 생존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다. 그 북한을 러시아가 구슬리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한국과의 직통 송유관 건설이 추진되다말고 지난 10년간 묶여버렸다. 러시아 송유관이 북한을 관통해 한국까지 연결되면 러시아는 미국이 북한에 군사행동을 하도록 방관하진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북한에 납득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으로서도 유럽과 경제적으로 더 가까워지기 위해 대륙철도를 부산까지 연결해야 하는 데 지난 10년간 시간만 버렸다. 우리가 대북 창구를 닫으면 북한만 고립되는 게 아니라 우리도 대륙과는 단절된다.

이런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득실 계산보다 정권의 안보가 더 중요했던 지난 정권들로 인해 우리는 남북 간에 최소한의 대화 창구마저 닫아버렸고 그 동안 많은 기대수익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북한은 더 안심하고 핵실험을 거듭했다.

이미 북한이 쉽게 보유한 핵을 폐기하려 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미사일 발사시험을 중단하고 더 이상 개발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세계는 한반도가 훨씬 안전하다고 느낄 테고 우리는 북한을 관통해 대륙과 연결되어 사람도, 물자도 지나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왕래가 잦아지면 전쟁의 위험도 그만큼 줄어들 테고.

올 초부터 기분좋게 시작하는 남북관계의 행복한 결실을 거듭 기대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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